윤 대통령 ‘적반하장’…‘탄핵 민심’ 불 지핀다
‘박근혜 탄핵’ 국민적 열망으로
국회 의결 뒤 헌재서 파면 결정
채 상병 특검법에 ‘적반하장’ 태도
윤 대통령 향한 분노 더욱 커져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접수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 동의자가 지난 3일 1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청원 동의를 하려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서버 용량이 부족한 탓에 상당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국회의장이 서버 증설을 지시했지만,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번 청원 덕분에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사람도 꽤 많다고 합니다. 청원은 지난 6월20일 시작됐고 7월20일에 끝납니다. 최종적으로 몇명이 동의할지 궁금합니다. 7월20일 이후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청원소위원회 심의 등 절차를 거친 뒤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직무상 위헌·위법’이 기본 요건
그러나 대통령 탄핵소추는 청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탄핵소추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의 고유 권한입니다.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에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가 필요합니다.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대통령 이외의 탄핵소추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 발의와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합니다. 현재 정당별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 170, 국민의힘 108, 조국혁신당 12, 개혁신당 3, 진보당 3, 기본소득당 1, 사회민주당 1, 새로운미래 1, 무소속 1석(국회의장)입니다. 국민의힘이 똘똘 뭉쳐서 반대하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에 꽤 익숙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탄핵은 본래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제도입니다. 탄핵은 일반적인 사법 절차나 징계 절차에 따라 소추 또는 징계하기 곤란한 행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법관 등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을 의회가 소추하여 파면하는 절차입니다. 탄핵의 사유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헌법 제65조 제1항)로 국한합니다. 탄핵 대상 공직자는 헌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 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입니다.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은 예를 들어 검사(검찰청법), 경찰청장(경찰법), 방송통신위원장(방통위법), 공수처 처장·차장·검사(공수처법) 등입니다. 탄핵소추는 국회의 권한이지만 탄핵 심판 최종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습니다. 과거 헌법에서는 탄핵재판소(1948년), 탄핵심판위원회(1963년), 헌법위원회(1972년) 등이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탄핵은 정부 수립 이후 오랫동안 유명무실한 제도였습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독재 시대에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감히 안건으로 올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 최초로 탄핵소추를 안건으로 올려 심의한 것은 1985년 12대 총선 이후입니다. 신한민주당 돌풍으로 국회 의석 276석 가운데 야당이 128석(46%)을 확보했습니다. 1985년 9월 유태흥 대법원장이 시국 사범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를 좌천시키는 등 ‘법원 인사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10월18일 신한민주당 의원 102명이 유태흥 대법원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했습니다. 10월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가 이뤄졌습니다. 총투표수 247표, 가 95표, 부 146표, 기권 5표, 무효 1표로 부결됐습니다.
가결 정족수 34표 웃돈 박근혜 탄핵안
그 이후 여러 건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폐기됐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이든 부결이든 의결까지 간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12월에는 김도언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4월에는 김태정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이 부결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습니다. 우리 국회에서 사상 최초로 가결된 탄핵소추안의 대상이 현직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총투표수 195표, 가 193표, 부 2표였습니다. 투표 당시 재적 의원은 271명이었습니다. 가결 정족수는 181표였습니다. 2016년 12월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습니다. 총투표수 299표, 가 234표, 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였습니다. 재적 의원은 300명이었고 가결 정족수는 200표였습니다.
2020년대로 들어서면서 국회의 탄핵소추는 봇물이 터졌습니다. 2020년 7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됐습니다. 2021년 2월 임성근 판사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각하했습니다. 2023년 2월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기각했습니다. 2023년 9월에는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기각했습니다. 2023년 11월에는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헌법재판소 심판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검사 탄핵소추안이 지난 2일 법사위에 회부됐습니다. 법사위 조사를 거친 뒤 본회의에서 의결이 이뤄질 것입니다.
결국 지금까지 국회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으로 실제로 공직에서 쫓겨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강물이 화나면 배를 뒤집어
윤 대통령 탄핵은 어떻게 될까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의결 정족수 때문에 국회 통과가 매우 어렵습니다. 야당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는 지난 2일 ‘평화방송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에서 “탄핵으로 가는 열차의 시동을 걸기 위한 연료가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 대통령 부부의 불법 행위를 입증하는 구체적 근거가 좀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정책조정회의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분노의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이라”며 “이번 해병대원 특검법 수용 여부가 윤석열 정부 국정 기조의 변화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윤 대통령 탄핵이 과연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질문을 좀 바꿔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기각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받아들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법률가들은 두 사람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최고위직 정치인이자 선출직 공직자인 대통령의 탄핵은 위헌·위법 정도보다는 민심의 향배로 좌우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국민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습니다.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탄핵 역풍으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참패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5월14일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반면에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국민 다수가 찬성했습니다. 12월9일 국회 탄핵소추 찬성 234표는 재적 300석의 78%였습니다. 당시 여론조사 탄핵 찬성 의견과 거의 같은 비율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10일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대통령 탄핵도 결국 민심에 달린 것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최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사람들의 발언과 태도를 보면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국방부 장관의 정당한 이첩 보류 지시 명령을 박정훈 수사단장이 어긴 항명 사건이 그 실체이고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인식입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갈등과 대결의 정치가 반복되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극복할 수 없다.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정국 파행에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지난 4일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위헌에 위헌을 더한, 반헌법적 특검법으로 되돌아왔다. 헌정사에 부끄러운 헌법 유린을 개탄한다”고 말했습니다. 적반하장식 태도입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들이 국민의 분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있는 것입니다. 큰일입니다.
불길한 흐름을 감지한 이른바 보수 논객들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지난 4일치 신문에 “‘2016 탄핵’ 때 닮은 꺼림직한 정치 풍경”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총선 패배로 인한 여소야대 국회,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 국정 비선 논란, 여당의 분열 조짐 등이 2016년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마무리하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직후였던 2016년 말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한 일이 있습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윤 대통령이 바로 지금 깊이 새겨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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