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사랑해” 하더니 결국 돈 요구…연구자가 경험한 로맨스 스캠

이진경 2024. 7. 6. 23: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로맨스 스캠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이나 온라인 등에서 피해 사례가 여러 차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 연구자가 실제로 로맨스 스캠 시도자와의 실제 대화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보고서를 작성해 눈길을 끈다. 로맨스 스캠 유형, 특징과 함께 대응 방안을 담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지능정보윤리 이슈리포트 여름호에는 김봉섭 NIA 연구위원의 ‘사랑을 가장한 사기 행위, 로맨스 스캠’ 보고서가 게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이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로 환심을 산 뒤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사이버 범죄의 한 유형이다. 정서적으로 취약한 이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여 돈을 편취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등장으로 실시간 통번역이 가능해 의사소통 문제가 줄면서 이러한 행위가 더욱 자주 일어나고 있다. 

◆적십자에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명문대 졸업 여성…결국 돈 요구

김 연구위원은 글로벌 사이버보안회사 노튼이 규정한 로맨스 스캠 수법과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우선 로맨스 스캠 범죄자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리적으로 먼 거리 또는 먼 나라에 거주한다고 말한다. 주로 해외에 주둔하는 군인, 빈곤국에 나가 있는 국제 의료봉사 요원, 원유시추선, 해외 건설 현장 등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김 연구위원에게 접근했던 스페인 여성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적십자라는 국제기구에서 일한다고 했고, 싱가포르의 일본 여성은 석유 굴착 회사, 아일랜드의 한국계 여성 또한 석유 굴착 회사에서 근무한다고 밝혔다. 

개인 프로필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것도 의심해봐야 한다. 김 연구위원과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맺었던 일본에 거주한다는 일본 여성들은 자영업이 주를 이뤘고, 도쿄대학, 와세다대학 등 일본의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고 프로필에 공개했다.

이들은 단시간에 관계를 진전시킨다. 온라인에서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을 말하거나 결혼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만나기로 한 약속은 지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돈을 요구한다. 한국행 항공권 구매 비용이나 응급수술비용, 이주 비용, 세관통과비용, 비자비용 등 항목은 다양하다. 계좌 이체, 기프트 카드 PIN 번호, 가상화폐 등으로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김 연구위원의 경우 스페인 적십자사에서 일한다고 밝힌 한국계 미국인은 처음에는 퇴직금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김 연구위원의 계좌 번호가 필요하다고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사무실에서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보내주기도 했다. 요청을 거절하자 다음에는 한국을 방문하기 위한 항공권 구입 비용을 요구했다. 전액은 아니고 항공료의 일부 수수료를 부담해 달라고 했다.

싱가포르의 일본인은 처음에 자신의 받은 상금을 받기 위해 김 연구위원의 계좌 번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시도들이 무산되자 마지막으로 기프트 카드를 요구했다. 

◆“여보” “사랑해요♥” “감사해” 다정한 애정표현 

김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직접 받은 메시지들을 공개했다. 

“여보 오늘 아침 기분은 어때요. 내 사랑”, “좋은 아침이야 내 사랑 어젯밤에 잘 잤길 바라” 등 애정표현이 다정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자기야. 나는 단지 당신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있고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감사합니다, 내 삶에 함께 해주셔서, 나를 감동하게 해주시고, 패배감을 느낄 때 격려해 주시고, 슬플 때 위로해 주셔서. 항상 그런 한 사람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믿을 수 있습니다. 사랑해요”와 같이 감성을 건드리는 말도 해준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상대방은 “여보, 한국에서 기부금 받는 일을 니가 맡아서 고아원 지갑 주소로 보내줬으면 좋겠어”, “여보, 고아원 기부금으로 사용할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나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김 연구위원이 메타버스 부동산 거래 제안을 거절하자 “이것은 전혀 같은 투자가 아니다. 범죄인 당신의 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나의 이렇게 좋은 돈벌이 방식을 너에게 알려줄게. 인터넷 사기라고 하셨으니까 넌 정말 날 슬프게 해”라고 했다.

◆로맨스 스팸 위험 신고 기억…돈을 절대 주지 말아야

김 연구위원은  노튼의 제안을 인용해 로맨스 스캠을 피하는 방법을 조언했다.

멀리 떨어져 있고, 급격히 관계가 진행된 뒤 돈을 요구하는 등 로맨스 스캠의 위험신호를 기억해야 한다. 또 자신의 정보를 인터넷 공간에 더 많이 공유할수록 노출될 위험이 커지기에 주의해야 한다. 

온라인 관계는 천천히 진행하고, 사진을 보내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 또는 영상 채팅을 먼저 시도해 하는 것도 방법이다.

만난 적이 없는 사람, 특히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절대 돈을 주지 말고,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면 국가 기관을 안내한다. 의심스럽거나 사기를 당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즉시 연락을 끊고 신고한다. 

김 연구위원은 “로맨스 스캠 범죄는 피해자가 숨는 경우가 많지만, 어느 범죄 보다 피해자의 신고로 범죄의 실체를 밝힐 수 있다”며 “피해자들의 신고를 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장치와 사회적 예방 기능을 작동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외의 경우 로맨스 스캠 범죄 피해자에게 금융 책임을 묻지 않고 가해자에게 그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게 하도록 하는 등의 피해자 구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로맨스 스캠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키우고 피해 구제 제도가 고민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