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뽑았으면 어쩔 뻔' 황성빈 압권의 존재감, 올스타전 찢었다→부상 외인 향한 응원까지... 다 갖춘 올스타전 '숨은 MVP' [인천 현장]
드림 올스타(SSG, 두산, 롯데, KT, 삼성)는 6일 인천SSG랜더스필드에서 펼쳐진 2024 신한은행 SOL 뱅크 KBO 올스타전에서 나눔 올스타(LG, NC, 키움, KIA, 한화)에 2-4로 패했다. 나눔은 올스타전 3년 연속 승리로 2015년 드림-나눔 체제로 올스타전이 개편된 이후 4승 4패 동률을 이뤘다.
2만 2500명의 만원 관중이 시작부터 인천SSG랜더스필드를 가득 채운 가운데 선수들은 작정하고 준비한 퍼포먼스들을 쏟아냈다. 김도영(KIA)은 최근 종영된 인기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인공 류선재를 패러디했고, 절정의 친화력으로 한국 야구팬들의 호감을 산 로니 도슨(키움)은 마라탕 모형을 온몸에 두르고 나와 웃음을 자아냈다. 피자배달부 코스프레로 어릴 적 꿈을 이룬 오스틴 딘(LG)도 있었다.
그 모든 퍼포먼스를 압도한 것이 황성빈의 배달 퍼포먼스였다. 3회 말 황성빈은 '배달의 마황'이라는 글자가 적힌 헬멧을 쓰고 배달 스쿠터와 함께 등장했다. 그 모습에 1루 코치로 서 있던 롯데 김태형 감독도 황당한 웃음과 함께 하이 파이브를 했다. 전광판에는 '안타 배달, 마황 말고 라(이더)황'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등장에 공들인 다수의 선수와 달리 황성빈의 준비성은 차원이 달랐다. 황성빈은 김영규(NC)의 4구째 슬라이더를 공략해 전력 질주로 내야 안타를 만들었다. 자신의 강점인 특유의 근성과 빠른 발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면. 1루에 도달한 황성빈은 준비한 '배달 완료'라는 종이를 당당하게 펼치면서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제부터가 핵심이었다. 황성빈은 올 시즌 초 상대 투수를 자극하는 주루 플레이로 논란이 됐다. 김태형 감독도 자제하길 바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때 그 자신도 힘들게 했던 안 좋은 기억을 웃음으로 승화했다. 롯데 관계자는 "황성빈의 빠르다는 이미지를 살려 신속 배달이라는 의미를 살린 세리머니"라고 설명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마운드 위의 김영규와 팬들은 모두 웃을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황성빈은 다음 이닝 수비를 앞두고 '신속 배달'이라 적힌 중식당 철가방에 로진을 챙겨 넣었다. 이후 마운드로 직접 뛰어가 몸을 풀고 있던 같은 팀 동료 박세웅(롯데)에게 로진을 건넸다. 박세웅이 배달 비용으로 1만 원을 건네고 황성빈은 거스름돈을 꺼내려 하자, 박세웅이 거부했다. 좌익수로 출전했던 황성빈은 철가방을 볼 보이에게 건넨 뒤 수비에 들어갔다. 후에 황성빈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박세웅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합의된 연출이었다.
사실 황성빈은 올스타전에 출전하기 어려웠다. 베스트 12에서 탈락했고 감독 추천 선수에서도 뽑히지 못했다. 하지만 베스트 12에 선정됐던 기예르모 에레디아(33·SSG 랜더스)가 지난달 28일 잠실 두산전 타격 도중 종아리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드림 올스타 외야수 4위였던 황성빈에게도 기회가 왔다. 준비 기간이 절대 짧지 않았음에도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황성빈에게 베스트 퍼포먼스상과 상금 300만 원을 받았다.
올스타전 종료 후 만난 황성빈은 "시간이 부족했던 사실 웃기고 싶은 욕심도 있고 팬분들도 많이 기대하시는 것 같아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며 "웃지 않는 게 포인트였는데 못 참았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웃고 손을 흔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팬들을 위한 퍼포먼스였다. 황성빈은 "우리 구단 SNS 게시물로 팬분들에게 보고 싶은 퍼포먼스가 있냐고 여쭤봤는데 이게 제일 좋다고 판단했다. 친동생도 '이왕 할 거면 제대로 시원하게 웃겨 보라'고 해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배달 완료 퍼포먼스는 안타를 치지 못했으면 힘들었다. 하지만 황성빈의 노력과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다. 그는 "정말 하늘이 도왔다. 심지어 좌완 투수였는데 그렇게 안타 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라면서 "내가 딱 (1루에서) 살 수 있게 타구가 갔고 1루에 있던 오스틴(LG)에게 고맙다고 했다.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힘줘 말했다.
떼놓은 당상인 줄 알았던 그의 베스트 퍼포먼스 수상에 강력한 경쟁자가 경기 막판 등장했다. 인천SSG랜더스필드를 홈구장으로 쓰는 '문학 아이돌' 박지환(19)이었다. 박지환은 최정(37·이상 SSG)을 대신해 등장해 가수 싸이의 뉴페이스 음악에 맞춰 댄스를 했는데 춤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댄스 한 번으로 관중들을 사로잡았고 이후 2안타로 강력한 베스트 퍼포먼스 후보로 떠올랐다. 이에 황성빈은 "솔직히 나 아니면 도슨(키움) 형이라고 생각했는데 (박)지환이가 추는 춤 보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난 지환이가 받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준비를 너무 잘했다"고 칭찬했다.
뜻하지 않게 자신에게 올스타전 출전 기회를 준 에레디아를 따뜻한 응원과 팬들을 향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황성빈은 "사실 팬분들이 많이 뽑아주셔서 (드림 외야수) 4위를 할 수 있었다. 너무 감사드리고 솔직히 웃겨야 한다는 부담감에 조금 힘들었는데 끝났으니까 다시 경기에 집중하려 한다. 또 올스타 MVP가 (지난해 김민석에 이어) 2년 연속인데 내년에 우리 중 누가 받을지 모르겠지만, 꼭 부담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또 에레디아 선수가 부상을 당했는데 나도 당해본지라 그 고생을 잘 안다. 에레디아 선수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면서도 "우리가 또 후반기 첫 경기가 인천인데 에레디아 선수가 빨리 돌아오되 우리와 경기가 끝나고 왔으면 좋겠다. 영향력이 너무 큰 선수라 딱 우리 경기까지만 지나고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재치 있는 응원을 남겼다.
KBO 리그는 이틀의 휴식 뒤 후반기 302경기를 시작한다. 1위부터 꼴찌까지 단 13경기밖에 나지 않는 치열한 시즌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8위 롯데도 5위 SSG와 3경기 차에 불과해 충분히 가을야구를 노려볼 만하다. 황성빈은 "나는 단기전에 자신 있다. 변수 카드로는 내가 1등이지 않나. 단기전은 타율이 높은 거보다 출루를 많이 하고 변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가을야구까지 갈 수 있도록 후반기도 잘 준비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천=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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