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저널(oh-regional)’ 시리즈는 몰랐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오는 감탄사 ‘oh’와 지역의, 지방의을 뜻하는 ‘regional’의 합성어로 전 세계 여러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브랜드 이야기를 다루는 오리지널(original) 콘텐츠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악의 제국, 미국을 대표하는 야구팀의 탄생
미국 프로스포츠 구단 중 가장 우승이 많은 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글로벌 인기 구단으로 전 세계 가장 가치있는 스포츠팀을 꼽으면 항상 5위 안에 드는 바로 그 구단.
전 세계 도시와 지역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오-리지널’의 오늘 주인공은 바로 ‘악의 제국(The Evil Empire)’ 뉴욕 양키스입니다. 지난 주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야구 명문구단 LA 다저스의 팀명과 그 유래에 대해서 다뤄봤는데요. LA 다저스가 박찬호, 류현진으로 대표하는 코리안리거 팀이자 LA 한인타운 덕에 국내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팀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성적으로 평가하는 냉정한 스포츠 세계에서 LA 다저스는 아직 뉴욕 양키스에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입니다. LA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횟수는 7회. 반면 뉴욕 양키스는 무려 27번이나 우승한 팀입니다. 세계 최고의 야구리그라 불리는 MLB에서 뉴욕 양키스 다음으로 우승을 많이 해본 팀은 11회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압도적 격차로 우승을 경험해본 명문 팀이죠.
뛰어난 성적만큼이나 시기와 질투도 많겠죠. 뉴욕 양키스의 대표적 별명인 악의 제국 역시 지역 라이벌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사장이던 ‘래리 루치노’가 사실상 붙여준 것입니다. 때는 2000년대 초반. 쿠바 국가대표팀 투수 에이스였던 ‘호세 콘트레라스’ 선수를 놓고 MLB에서 영입 전쟁이 벌어집니다. 당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요.
결국 호세 선수는 뉴욕 양키스에 입단합니다. 이에 래리 루치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양키스는 ‘돈지랄’로 좋은 선수는 모두 쓸어가 우승을 독식한다”고 비난하면서 양키스를 ‘악의 제국’이라고 칭했던 것인데요. 뉴욕 양키스는 오히려 위압감을 주고 강력함을 선사하는 이 악의 제국이란 별명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후부터 스스로 별명으로 공식화 해버립니다.
베이브 루스가 뛴 슈퍼팀의 탄생 비화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뉴욕을 연고지로 둔 만큼 뉴욕 양키스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하고 항상 사치세를 내는 팀으로도 유명합니다.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만 해도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요기 베라, 미키 맨틀, 랜디 존슨,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 등 시대를 풍미한 야구 영웅들로 가득합니다. 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자 세계적인 인기 팀 뉴욕 양키스는 어떻게 시작했고 왜 양키스라는 팀명이 붙은걸까요.
사실 미국 프로야구의 역사도 흥미 진진한데요. 이에 대한 설명도 따로 한번 드리겠습니다. 대신 오늘은 뉴욕 양키스의 창단 배경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19세기 말 야구라는 새로운 스포츠가 탄생한 뒤 미국 곳곳에서 여러 야구리그가 창설됐습니다. 그 중 1876년 만들어진 내셔널 리그가 현재 MLB의 시초라고 불리는데요. 약 10년 뒤인 1885년 또 하나의 다른 야구리그인 ‘웨스턴 리그’가 창단했습니다. 이는 15년 정도 유지가 됐는데요. 1900년을 끝으로 웨스턴 리그는 ‘아메리칸 리그’로 이름을 바꿔 새시작을 결의합니다.
아메리칸 리그의 탄생, 뉴욕은 없었다
그렇게 탄생한 리그가 바로 MLB의 또다른 한 축인 ‘아메리칸 리그’입니다. 현재 MLB는 내셔널 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등 2개의 리그가 소속돼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 리그 우승팀끼리 맞붙는 결승전이 바로 ‘월드 시리즈’입니다.
아메리칸 리그는 총 8개 팀으로 시작합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보스턴 아메리칸스,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밀워키 브루어스, 클리블랜드 블루스, 워싱턴 세너터스인데요. 이 중 현재 그대로 팀명을 그대로 유지하는 팀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딱 한 팀입니다.
아니 볼리모어 오리올스도 있고 밀워키 브루어스도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을 텐데요. 두 팀은 각각 팀명을 바꿔 새로운 팀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 두 팀이 바로 뉴욕 양키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입니다. 즉 원래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현재 뉴욕 양키스가 됐고요. 밀워키 브루어스는 현재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됐습니다. 좀 헷갈리죠.
사실 볼티모어 오리올스라는 팀명을 사용한 야구팀이 무려 5개나 각각 존재합니다. 그렇다 보니 이런 헷갈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요.
간단히 말씀드려 내셔널리그 창단 멤버였던 밀워키 브루어스는 이듬해인 1902년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옮겨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됐고요. 이후 1954년 다시 볼티모어로 홈구장을 옮기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됐습니다. 현재 MLB 팀 밀워키 브루어스는 1969년 창단했던 시애틀 파일러츠가 연고지를 밀워키로 옮긴 별개의 팀입니다.
반대로 오늘의 주인공인 뉴욕 양키스의 원래 팀이름이던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어쩔 수 없이 리그에 합류한 팀입니다. 아메리칸 리그를 출범시킨 벤 존슨 회장의 원래 계획에는 뉴욕을 연고지로 둔 팀을 만드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이벌 리그이자 이미 자리를 완전히 잡은 내셔널 리그에는 뉴욕 자이언츠라는 팀이 있었고 이 팀의 반대로 그 계획이 무산된 것인데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뉴욕으로부터 2시간 거리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한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탄생한 것이죠. 내셔널 리그 창단 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감독이자 선수 그리고 구단주를 도맡아한 ‘존 맥그로’는 작은 나폴레옹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허슬있는 플레이와 과격한 경기 매너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자신의 선수들을 호되게 꾸짖고 심판들과 싸움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무려 118번이나 퇴장당한 그의 경력만 봐도 어떤 스타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악동의 탄생, 뉴욕으로 옮길 기회를 잡다
결국 아메리칸 리그를 창설한 벤 존슨 회장은 맥그로를 리그에서 퇴출했고 그는 내셔널 리그 뉴욕 자이언츠의 선수 겸 감독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하지만 워낙 팀에 영향력이 컸던 맥그로의 이동으로 다른 선수들까지 상당수 뉴욕 자이언츠로 이동하게 되며 팀 안팎에서는 아예 연고지를 뉴욕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조성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는 뉴욕 연고지 팀을 만들고 싶던 벤 존슨 회장의 정치력이 발휘된 것이라고 봐야 할 텐데요. 결국 1903년 양 리그간 갈등을 중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평화협상’이 열렸고 내셔녈리그와 아메리칸리그 소속 팀 16개 중 뉴욕 자이언츠를 제외한 15개 팀이 동의하며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뉴욕으로의 연고지 이전이 결정됩니다. 새로운 구단주로 사업가 프랭크 파렐과 뉴욕 경찰서장 출신 윌리엄 데버리가 자리하며 ‘뉴욕 하이랜더스’로 재창단합니다.
가난했던 뉴욕시절, 상부상조로 기회를 얻다
뉴욕의 첫 홈구장은 맨하튼 내 가장 높은 지대 중하나였던 165번가 브로드웨이 모퉁이었는데요. 돈이 없던 팀은 맨하튼에서도 값이 싼 높은 지대(High Land)에 나무로 구장을 지었습니다. 또 당시 팀의 회장이 조셉 고든이란 점에 착안해 영국 보병부대의 명칭 고든 하이랜더스라는 별칭까지 더해지며 하이랜더스라는 팀명이 결정됐습니다. 구장 이름 역시 ‘아메리칸 리그 파크’였지만 다들 높은 언덕에 있던 이 곳을 ‘힐탑 파크’라고 불렀습니다.
뉴욕에 자리 잡은 하이랜더스는 1904년과 1906년, 1910년 리그 2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그저 그런 팀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11년, 지역 라이벌이자 가장 껄끄러운 존재였던 뉴욕 자이언츠의 홈 구장인 폴로 그라운드에 화재가 발생합니다. 경기를 뛸 곳이 없어진 자이언츠에게 손을 내민 것은 바로 하이랜더스. 힐탑 파크서 경기를 뛸 수 있게 경기장을 제공하자 두 팀의 갈등은 눈녹듯 사라졌고, 1913년 폴로 그라운드가 새로 지어지자 이번엔 뉴욕 자이언츠가 구장을 같이 쓰자고 손을 내밉니다. 그렇게 하이랜더스는 1913년부터 폴로그라운드를 홈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옮겨온 하이랜더스. 팀 안팎에서는 팀명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높지 않은 구장을 쓰는 우리 팀 이름이 하이랜더스라면 안 어울린다는 것이죠. 그리고 채택된 새로운 팀이름이 바로 뉴욕 양키스입니다. 전설의 탄생이 110년 전에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악의 제국이란 별명이 붙은 뉴욕 양키스의 팀명 ‘양키스’ 역시 사실은 팀의 별명이었습니다.
팀명이 된 별명, 전설이 되다
1904년 뉴욕 프레스의 스포츠국장인 짐 프라이스는 하이랜더스의 별명으로 양키스를 명명합니다. 이는 팀 이름이 너무 길어 지면에 싣기가 어려웠기 때문인데요. 짧고 간결한 별명으로 팀을 칭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에 짧게 쓸 수 있는 별명인 양키(Yankees or Yanks)라는 별명으로 팀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던 이 별명은 계속 입소문을 타며 하이랜더스의 별칭으로 붙었고 1910년대부턴 마치 공식 이름처럼 신문에 양키스가 쓰여왔습니다. 그리고 1913년 마침 팀이름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매력적인 양키스라는 별명이 팀이름으로 거듭납니다. 뉴욕 양키스를 대표하는 스트라이프 유니폼과 NY 로고 역시 이때 탄생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요.
양키의 복수표현인 양키스는 사실 미국인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호칭입니다. 정확하게는 서유럽계 미국 국민을 비하하는 호칭인데요. 수많은 유럽인들이 넘어와 자리 잡던 미국 동부 개발시기에 영국계 유럽인들이 네덜란드계 이민자들을 비하하던 호칭이 바로 양키였습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 얀 카스(Jan Kass)라고 하는데요.
이게 영어식으로 바뀐 것이 바로 Yan Kass가 됐고 최종적으로 Yankee가 됐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사실 뉴욕 역시 처음 정복에 성공한 사람들은 네덜란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양키스인데요. 이 지역이 결국 영국군에 의해 점령당하며 서유럽권 이민자들을 대표하는 호칭인 양키스가 그렇게 정착하게 됩니다. 즉 뉴욕 양키스의 양키는 뉴욕에 처음 자리 잡은 네덜란드 유럽계를 상징하는 역사적 이름이자 미국인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됐는데요. 그만큼 미국인들에겐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미국스러운 팀명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미국 스포츠팀의 역사. 다음에는 좀 더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드릴 수 있게 더 준비해오겠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뉴욕 양키스를 반대했던 뉴욕 자이언츠라는 팀은 현재 저 멀리 서부로 다시 떠나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됐다는 사실. 정말 역사는 돌고 도는 재미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오리저널 시리즈를 연재 중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