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어깨 문신 한가득 ‘마초맨’의 반전 매력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4. 7. 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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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 beauty is found within.”(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어요.)

어린 시절 한번쯤 봤을 법한 ‘미녀와 야수’의 핵심 대사 중 하나 입니다. 마녀의 저주를 받아 야수가 된 성주, 그리고 그와 강제로 함께 살게된 미녀가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깨닫고 마녀의 저주에서 해방돼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내용이죠.

19세기 프랑스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지만 전세계에서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된 단골 소재입니다. 우리에게는 디즈니에서 만든 1991년 애니메이션과 2017년 영화, 2019년 피겨 스케이팅 공연 등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녀와 야수 이야기의 교훈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단지 보이는 것에만 있지 않는다라는 뜻을 가진 서두의 문장이 핵심일듯 합니다. 단지 표면에 드러난 모습만으로 무엇인가를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라하 벨리에 위치한 카사로호 와이너리. [까사 로호 제공]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어떤 미사여구가 동원되더라도, 혹은 반대로 어떤 별 볼일 없어보이는 레이블이 그려져 있더라도 마셔보기 전까지는 그 진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와인 초보들은 이런 부분에서 종종 실수를 저지릅니다. 직접 구매해서 마셔보기 전까지 오로지 개별 와인의 레이블과 가격, 생산지만을 가지고 와인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의존하게 되는 겁니다.

특히 가성비와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따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와인이라면 이래야지!’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합니다. 이를테면 고성(古城)이나 와이너리, 이름 모를 가문의 문장(紋章) 등이 그려진 레이블이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레이블보다 왠지 모르게 좀 더 신뢰가 가는 이유죠.

오늘 소개해드릴 와인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와인 애호가라면 와인샵을 오가다 이미 한번쯤은 봤을 와인, 바로 마초맨(MachoMan) 입니다.

까사 로호의 마초맨. [까사 로호 제공]
와인이 장난이야? 마초맨 레이블 탄생 이야기
우락부락 턱을 뒤덮은 수염, 언뜻봐도 커보이는 덩치와 떡 벌어진 어깨, 우람한 팔근육과 거기에 그려진 문신들, ‘두고보자’는 듯한 팔짱과 중세 해적을 연상케 하는 흰색에 붉은색 줄무늬가 쳐진 민소매 셔츠…

오늘의 와인, 마초맨은 도대체 어디 하나 와인의 레이블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와인을 장난으로 만들었나? 싶은 생각마저 들죠.

그런데 이 그림, 알고보면 스페인을 대표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인 자라(Zara)와 코카콜라 레이블을 디자인한 에두아르도 델 프라일레(Eduardo del Fraile)가 그린 그림이랍니다. 그림의 모델은 마초맨을 만드는 와이너리 까사 로호(Casa Rojo)의 오너, 호세 루이스 고메스(Jose Luis Gomez)였고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루이스는 마초맨을 만들고 의미있는 레이블을 붙이고 싶어서 당시 스페인의 유명한 디자이너인 에두아르도를 찾아갑니다.

한 술집에서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에두아르도가 루이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난삼아 술집 휴지에 10분 만에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일종의 캐리커처인 셈이었는데 루이스는 이게 무척 마음에 들었고, 결국 와인의 레이블이 됐습니다.

마초맨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까사 로호가 스페인 전역으로 와이너리를 확장해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면서 다른 와인들에 붙일 레이블도 필요해졌는데요. 루이스는 다시 한번 에두아르도를 찾아가고, 이번엔 동업자이자 아내인 라우라 무뇨스-로호(Laura Munoz-Rojo)의 캐리커처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캐리커처는 그들의 또 다른 와인 틴타피나(Tintafina)의 레이블이 됐습니다.

틴타피나 레이블. [까사 로호 제공]
상상 외의 반전 매력, 투박한 겉모습에 숨은 부드러움
그런데 이 마초맨,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겉모습과 달리 부드럽고 프루티(Fruity·과실미)하며 허브 뉘앙스까지 보여주는 반전 매력을 뽑냅니다. 겉모습은 미녀와 야수 속 야수처럼 거칠고 험상궂은데, 속은 부드럽다 못해 여리고 섬세한 모습이랄까요.

이 뿐만 아니라, 와인의 베이스가 되는 포도를 확인할 때 애호가들의 상식을 뒤흔드는 두 번째 반전이 생깁니다. 마초맨이 스페인 남동부 발렌시아 근처 후미야(Jumilla) 지방에서 자란 모나스트렐(Monastrell·프랑스명 무르베드르) 100%로 만든 포도이기 때문입니다.

모나스트렐은 시라(Syrah)나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같은 개성이 강하고 진한 품종들과 종종 블랜딩하는 품종입니다. 다시 말해 스타일이 강한 품종들과 블랜딩하더라도 살아남을 정도로 자기 캐릭터가 뚜렷한 품종이죠.

이런 품종만을 썼는데도 오히려 짱짱하고 무거운 느낌이 아닌 부드럽고 싱그러운 느낌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반전인데, 여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나스트렐이 후미야의 높은 고도, 서늘한 기후, 강렬한 햇빛, 석회질 토양, 오래된 나무(수령 70년이 넘은 나무도 쉽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등과 조합되면서 산뜻하고 우아한 부드러움이 발현됐다는 설명입니다.

까사 로호는 이런 맛을 살리기 위해 오크통 토스팅(Toasting·오크통에 와인을 담기 전에 소독과 오크향, 그을린 나무 등 풍미를 잘 담아내기 위해 통 내부를 불로 굽습니다)을 최소한으로 합니다.

레이블의 모델이자 까사 로호의 오너인 호세 루이스 고메스와 라우라 무뇨스-로호 부부. [에노테카 제공]
아들의 이름을 건 사랑과 열정의 와인
의외성을 보여주는 와인이 까사 로호의 캐릭터일까요. 2021년을 첫 빈티지로 하는 이들의 새 와인 역시 이름부터 허를 찔렀습니다. 와인의 이름이 바로 도쿄 고메스-로호(Tokyo Gomez-Rojo), 이들 아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스페인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일본의 수도이자 아들의 이름인걸까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와인 마케터였던 루이스와 정치를 전공하고 정치계에서 일하던 라우라는 도쿄의 스페인 와인 행사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2021년 생긴 아들의 이름을 도쿄로 지었고, 아들에게 줄 와인을 만들었다고 하죠. 와인 도쿄에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와인, 하지만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들고 싶었던 이들의 노력이 담겼습니다.

일단 품종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어느 정도 와인을 공부한 이들에게도 낯선 품종인 페드로 히메네스(Pedro Ximenez), 알비요 마요르(Albillo Mayor) 등이 들어갔죠.

까사 로호의 새 와인인 도쿄 시리즈. 현재 한국에는 뀌베 미나미만 수입된다. [까사 로호 제공]
물론 국제 품종인 시라와 쁘띠 베르도, 모나스트렐(무르베드르)과 가르나차(그르나슈)로 양조하는 도쿄도 있습니다. 원래는 토착 품종을 주로 재배하는 와이너리 옆에 예외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블렌딩용으로 활용할 생각으로 심었는데, 이들 품질이 뛰어나자 이들만으로 양조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루이스는 “우리의 목표는 이탈리아의 수퍼투스칸(Super Tuscan)과 같은 수퍼스페인(Super Spain)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도쿄가 그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스페인 전역의 떼루아를 표현할 수 있는 와인, 한 모금으로 스페인을 여행할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스페인 전역에 9개의 와이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수저라서가 아니라 버는 돈의 대부분을 와이너리를 사고 와인을 만드는데에 재투자하기 때문이죠.

2013년 와이너리가 설립되고 불과 10년여 만에 지금의 인지도와 규모를 만들어냈으니, 실로 엄청난 열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와이너리를 사지 못하면 장기 렌트로 빌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초맨 레이블의 왼팔 문신을 보면 LOVE & WINE 이라는 글자가 선명합니다. 이는 까사 로호의 모토, ‘WINE IS LOVE’를 뜻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보다 사랑, 그리고 열정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와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오늘 밤, 마초맨과 함께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자는 열정을 일깨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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