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도중 입 벌리고 '꿀잠'…의원님, 얼마나 바쁘길래 [이슬기의 정치 번역기]
'본회의 꿀잠' 비판 쏟아지자
당내선 "사람이 어떻게 참느냐" 반응도
실제 '극한직업' 가까운 국회의원 일정
그래도 당내에서 '비판' 목소리 더 크다
지난 3일 국회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자에 기대어 잠든 모습이 생중계되며 뭇매를 맞는 일이 있었습니다. 국민의힘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이후, 최수진 의원과 김민전 의원이 잠을 자는 모습이 포착된 겁니다.
이들이 잠을 자는 모습이 보도되자, 당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너무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비호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은 의원들의 본회의장 꿀잠이 보도되자 "언론 좀 야단맞아야 한다"고 평가하며 "어젯밤 12시에 들어가서 오늘 아침 4시에 나왔는데 사람이 어떻게 참아요? 저도 졸려서 잤는데, 뭐 새벽 시간이라 아마 사진은 안 찍힌 것 같다. 그런 것 유치하게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인 의원은 왜 그렇게 생각한 걸까요? 이들이 실제 소화한 일정을 고려한 인간적 이해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눈에는 늘 싸우고 놀기만 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일상을 지켜보면 그들의 직업은 오히려 '극한 직업'에 가깝습니다.
의원들은 생각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매일 오전 자신의 보좌진들과 최소 하루 한 번 정도는 회의하고, 업무 보고를 받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국회 상임위나 당에서 운영하는 각종 특위 활동을 챙기는 것이 주 업무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 자신의 '전문 영역'과 관련한 일들을 맡지만, 새로운 현안이 계속 생기는 만큼 온종일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여야 갈등이 벌어지면, 당이 주도하는 각종 '규탄 시위' 등에 얼굴을 내밀어야 합니다. 사실상 24시간 돌아가는 '지역 민원' 업무도 놓칠 수 없습니다. '9 to 6'의 개념은 당연히 없습니다.
지역구가 있는 의원들의 경우, 주말엔 더 바쁩니다. 주말에 자신의 지역구에서 생기는 각종 지역 행사를 챙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을 잘 챙기기로 소문난 한 초선 의원은 주말 하루에 10개 이상의 지역구 행사를 챙기기도 한다고 합니다. 토요일 내내 지역구 행사에 얼굴도장을 찍고, 일요일 조찬 모임까지 마무리해야 그제야 반나절 정도 쉴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물론, 그사이에 해당 의원의 보좌진 중 누군가도 그 강행군을 함께 합니다.
많은 의원이 제대로 휴가를 못 가는 것도 물론입니다. 의원들은 1년에 딱 한 번 여름휴가를 가는 것 외에 일반 직장인에게 해당하는 '연차'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나마도 그 휴가조차 반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1대 국회의원을 지낸 모 의원은 임기가 이어지는 4년 내내 개인 휴가를 위해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탄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올해는 꼭 가리라' 결심을 했던 21대 국회 마지막 해에도 현안이 생기면서 결국 휴가를 떠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의원이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많은 만큼, 보좌진들도 '소처럼'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에서도, 수많은 보좌진이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퇴근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속사정을 다 아는 여의도에서 '본회의 꿀잠'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요? 당내에서는 '피곤한 것은 이해하지만, 정말 보기 안 좋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국회에서 여야 대치가 길어지면서 의원들이 밤샘 농성하거나 국회 점거를 할 경우,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드는 의원들의 모습은 사실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익숙하죠.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이들 사이에서조차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은 국민의힘이 시작한 필리버스터가 국민의 찬성 여론이 높은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한 것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특검 반대의 진정성을 설득하는 자리에서 맘 놓고 자는 듯한 모습이 보기 좋아 보일 리 없죠.
게다가 이번에 꿀잠이 포착된 A 의원은 평소에도 '잘 자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본회의장이 아닌 각종 토론회장에서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던 겁니다. 당사자들의 말대로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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