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돌아오게 방 빼" 산란기 강제 이주 당한 '멸종 위기종' [하상윤의 멈칫]

하상윤 2024. 7. 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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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습지 일대 흑두루미 도래지 복원 사업 
법정보호종 표범장지뱀 "국내 최대 서식지 가능성"
구미 해평습지에서 관찰된 표범장지뱀(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 모습. 장지뱀과에 속한 표범장지뱀은 표범처럼 반점 무늬를 가지고 있으며, 표범과는 달리 반점 내부가 하얀색으로 채워져 있다. 과거에는 전국의 하천이나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지만, 줄곧 서식처가 파괴되면서 현재는 충남 태안의 해안 사구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환경부는 지난 6월 표범장지뱀을 '7월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하고 이들의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북 구미시 해평면과 고아읍, 선산읍의 경계면을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합수부에 이르게 된다. 서로 다른 두 하천이 포개어지는 자리엔 완전히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곤 하는데, 예부터 이곳에는 합수부를 기점으로 모래톱과 습지가 기다란 띠 형태로 분포해 왔다. 토양과 수역의 중간지대인 이 공간은 ‘해평습지’로 통칭되며, 넓은 쉼터(모래톱)와 먹이터(습지) 덕에 흑두루미(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등 철새들의 주요 도래지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낙동강 유역에선 유일하게 흑두루미가 날아들던 해평습지는 4대강 사업(2008~2013년) 이후 상당 부분 수몰되며 지난 2020년부터는 새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이에 구미시가 예산 33억 원을 들여 흑두루미 도래지 복원에 나섰는데, 사업 내용이 다소 논쟁적이다.

구미 해평습지 일대를 촬영한 위성사진. 왼쪽은 2008년, 오른쪽은 2022년 모습이다. 4대강 사업 이후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감천 합수부’를 기점으로 분포했던 모래톱과 습지가 대부분 사라졌다. 카카오맵 캡처
지난 2014년 10월 낙동강 감천 합수부 삼각주 모래톱을 찾은 흑두루미. 2019년을 마지막으로 이들은 발길을 끊었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제공

사업의 발상은 단순했다. 강 둔치를 깎는 토목공사로 인공 모래톱을 만들어 떠나간 새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환경영향평가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표범장지뱀의 서식처가 대거 확인되며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표범장지뱀은 충남 태안의 일부 해안사구에 서식처가 집중돼 있고 국내 다른 지역에서는 대부분 자취를 감춘 '법정보호종'이다.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표범장지뱀이 발견되는 밀도가 상당하고 서식지 면적 또한 방대해 해평습지가 태안을 넘어 국내 최대 서식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대구지방환경청은 표범장지뱀을 대체서식지로 이주시키는 조건으로 사업(기존 서식지 훼손)을 승인했다. ‘멸종위기종의 도래지 조성을 위해 마찬가지로 멸종 위기에 처한 다른 생물의 서식처를 망가트리는 것이 온당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표범장지뱀을 잡아들이는 포획트랩이 표식인 하얀색 깃발과 함께 서식지 곳곳에 설치돼 있다. 장마철 우천 시 포획된 생물의 익사를 방지하기 위해 입구가 막힌 채 운용이 중단된 상태다.
포획트랩에 잡힌 표범장지뱀. 김대호 국립생물자원관 외부연구원은 "한여름에는 지표면이 복사열에 의해 고온으로 유지되는데, 이럴 때 포획트랩에 잡힌 표범장지뱀과 같은 변온동물들은 짧은 시간에 타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찾은 현장에서는 표범장지뱀에 대한 포획·이주 작업이 한창이었다. 총면적 50만㎡가 넘는 대상지 곳곳에 포획 트랩 설치 표식인 하얀색 깃발이 휘날렸다. 개체 이동을 제한할 목적으로 놓은 초록색 그물망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고, 서식지를 여러 갈래로 파편화하고 있었다. 그물망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맴도는 고라니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장마철임에도 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보인 이날 변온동물인 표범장지뱀의 활성도가 높은 편이었는데, 실제 몇 걸음 옮길 때마다 새로운 개체가 사방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많은 수가 관찰됐다. 김대호 국립생물자원관 외부연구원은 “표범장지뱀은 전국적인 하천 재정비사업과 함께 핵심 서식처가 대부분 사라지며 가파른 감소 추세를 보이는 종”이라며 “이들의 서식지 조건은 단순해 보여도 굉장히 까다롭고 복잡하기에, 되도록 그대로 두는 게 종의 보전이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라고 설명했다.

해평습지 일대 표범장지뱀 서식지 전체에 걸쳐 공사 구간 등을 표시한 색색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공사가 '모래톱 복원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흙을 깎는 절토 면적이 약 14만㎡, 흙을 쌓는 성토 면적이 약 38만㎡에 이른다. 총 50만㎡에 달하는 표범장지뱀 서식지 직·간접적으로 훼손되는 셈이다.

별다른 추가 변인이 없다면 해평습지에서 표범장지뱀 이주가 마무리되는 대로 흑두루미 도래지 복원 공사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서식지 이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표범장지뱀을 좋은 조건의 대체서식지로 이주시킨다고 한들 이미 살고 있는 개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결국 생존 경쟁이 더 심화하게 된다”라며 “생물종을 인위적으로 이전시켜서 제대로 살게 했다는 사례는 아주 드물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 연구원은 “표범장지뱀은 예민하고 서식지 조건 또한 독특해 이렇게 많이 발견되는 장소는 매우 귀하다”라며 “모래톱을 복원한다고 해서 흑두루미가 돌아올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런 불확실성에 기대어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다른 종을 몰아내는 건 굉장히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감천 합수부와 해평습지 일대에는 선산 파크골프장(왼쪽 지도 초록색 네모, 가운데 사진)과 고아 파크골프장(왼쪽 지도 빨간색 원, 오른쪽 사진)이 약 2.6km 간격을 두고 들어서 있다. 고아 파크골프장은 무허가 시설물로 밝혀지며 운영이 중단됐다. 카카오맵 캡처·한국일보 자료사진

표범장지뱀의 산란기에 행해지고 있는 서식지 이전 작업의 시기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표범장지뱀의 번식기는 5월 하순부터 7월 초순까지로 본다. 표범장지뱀의 생태를 연구해온 유종길 서울여대 연구원은 “번식기 때는 암컷의 산란 실패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개체군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불문율과 같다”라며 “더군다나 국내에서 표범장지뱀의 대체서식지 이전 작업이 성공한 케이스를 알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이 판단하는 생물의 위계 또는 지위에서 표범장지뱀이 거의 바닥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구미시청 관계자는 “어느 한 종을 선택해서 사업을 진행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표범장지뱀도 흑두루미도 모래톱을 좋아한다고 하니 모래톱을 넓게 만들어주는 건 이 두 종이 상생하는 방향이다”라고 반론했다.

유린목 장지뱀과의 표범장지뱀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 ‘적색 목록(Red List)’에 등재돼 있다. 생활·행동 반경이 매우 국소적이어서 환경 변화에 취약한 표범장지뱀은 하천·해안사구 개발과 함께 서식지를 잃고 있다.
편집자주
아메리카 원주민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었습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하상윤의 멈칫]은 치열한 속보 경쟁 속에서 생략되거나 소외된 것들을 잠시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입니다.

구미=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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