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 인터뷰] 황정민 "35년만 첫 백상…난이도 최상캐 고통의 보상 같아요"
조연경 기자 2024. 7. 6. 15:09
6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서울의 봄' 황정민 수상 인터뷰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만나 '이제 더 이룰 것이 있을까' 싶은 배우에게 다시 '처음'의 기쁨을 안겼다. 영화의 운명과도 꼭 닮았다. 믿기 힘든 실화. 1000만 대업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을 통해 데뷔 35년 만 첫 백상예술대상 트로피를 손에 쥔 배우 황정민(53)이다. 메가 히트 신드롬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추며 한국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게 된 '서울의 봄'은 정우성에게는 첫 번째 1000만, 황정민에게는 첫 번째 백상 트로피를 선물하는 의미까지 더했다.
공식 데뷔는 1994년 뮤지컬 '지하철1호선'이지만, 웹예능 '나영석의 지글지글'에서 언급한 '장군의 아들'(1989)로 따지면 꼬박 데뷔 35년 만이다. 황정민 스스로도 "한 번 쯤은 주실 법도 한데 유독 백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말할 만큼 30여 년 만에 맺게 된 첫 인연이다. 기다림의 아쉬움은 만루 홈런으로 날렸다. 최고의 작품, 최상의 캐릭터로 6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 누구도 반박 못할 지지 속 이름 석 자를 새겼다. '최우수연기'라는 부문 타이틀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없다.
비주얼로 사로잡고 연기로 폭발 시켰던 '서울의 봄' 전두광은 황정민의 수 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난이도 최상'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실화, 실존 모델, 근현대사, 정치 등등 신경 쓰고자 하면 써야 할 것이 무궁무진한 예민함 속에서 황정민이 고집한 건 결국 '연기'였다. 오로지 연기 하나로 어떠한 이야기도 나오지 못하게 승부를 내고 싶었다는 목표. 현장에서는 왕따를 자처했고, 미친 척 할 수 있는 모든 연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이제 황정민 전 후로 나뉘게 됐다.
백상예술대상 이후 숨 고를 새 없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 된 '베테랑2(류승완 감독)'를 들고 칸 행 비행기에 올랐던 황정민은 귀국 후 곧바로 연극 '맥베스' 연습에 돌입하는 등 여지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백상 수상 인터뷰도 그가 연극 연습에 한창인 LG아트센터에서 시간을 잠시 쪼개 진행했을 정도. 본격적인 '맥베스' 열혈 홍보 및 공연과 함께, 넷플릭스 영화 '크로스(이명훈 감독)', 추석 개봉을 확정한 '베테랑2'까지 하반기 일정은 이미 꽉 찼다.
여기에 최근 촬영을 마친 400억 대 대작,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스케일 '호프(HOPE·나홍진 감독)'로 자의 반 타의 반 n년간 충무로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 상황. 누구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기해내는 황정민이기에 기대와 신뢰가 우선 뒤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여전히 관객들에게 '잘했다' 칭찬 받고 싶고, 응원 받고 싶어 매 작품 새하얀 백지를 펼친다는 황정민. 전두광을 찢고 그려낸 그의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는 어떨지 기다림조차 설레는 시간이다.
-여전히 '진짜?'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지만, 데뷔 후 '첫 백상예술대상 수상'입니다. 60주년에 의미있는 첫 트로피를 전달 드릴 수 있어 영광이에요.
"제가 감사하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백상과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번 쯤은 주실 법 한데…' 하면서 지내다가(웃음) 이번에 '서울의 봄' 작품으로 노미네이트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솔직히 기대 아닌 기대를 했죠. 근데 또 함께 후보에 오른 분들이 워낙 대단한 분들이라 '내가 저 틈에 끼어 있다고?'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황정민 배우도 그런 생각을 하는군요.
"그럼요. 당연히 그렇죠. 현장에서 수상자 발표 전에 영상으로 후보자들을 비춰줬잖아요? 화면으로 얼굴이 쫙 보이는데, 한국에 저렇게 훌륭하고 좋은 배우들이 많고, 그 사이에 제가 같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어요. 물론 올라가서 아내 이야기 한번 했다가 끝나고 호되게 놀림을 당하긴 했지만요. 하하."
-말씀하신 것처럼 올해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는 특히 '죽음의 조'라고 불릴 만큼 어느 해보다 후보에 오르는 장벽부터 높았어요. 수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상당했고요. 기대를 했다고 한 만큼, 황정민에 대한 사전 지지율도 눈에 띄었는데 실제 호명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아이고 어떡하지?'(웃음) 내심 긴장 하다가 처음 든 생각은 진짜 그랬어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머릿속이 일단 하얘지면서 '수상 소감을 어떻게 해야 하나'로 꽉 차더라고요. 올라가기 전에 후보자 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됐고 하나 하나 이야기를 했죠. 기억나는 시작은 그래요."
-화제의 수상 영상도 다시 돌려봤나요.
"아니요. 절대. 안 봤어요."
-왜요.(웃음) '눈물의 사랑꾼 소감'이 아무래도 이슈가 됐는데, 가장 궁금했던 건 역시 아내, 김미혜 대표님 반응이에요.
"눈물까지는 아니고 울컥.(웃음) 와이프는 뭐, 담담하게 '축하한다' 그러고 '왜 오버하냐' 그랬죠. 나이를 먹으니까 약간 아내 이야기만 하면 울컥하는 게 있어요. 그 날 축하 연락도 엄청 받았는데 대부분이 그 이야기였어요. '축하드려요! 근데 왜 그러셨어요?' 하…."
-혹시 못 다한 소감도 있을까요.
"'서울의 봄'을 같이 했던 배우 중에 돌아가신 분이 계세요. 염동현(2022년 12월 2일 별세) 배우님이요. 간경화로 '서울의 봄' 개봉을 못 보고 돌아가셨는데, 그 형님이 우리 반란군 쪽에 같이 있었거든요. 촬영 때 반란군은 반란군대로, 진압군은 진압군대로 서로 부딪치지 않고 밥 먹고 술 마시는 것까지 다 각자 팀 별로 뭉쳐서 따로 지냈는데, 저는 반란군 팀이었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섞이지 않고 늘 혼자 있었어요. 형님과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해 드리고 싶어요."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 받으면서 신드롬 반열에 올랐던 '서울의 봄'은 올해 백상에서 김성수 감독님의 대상부터 작품상, 남자 최우수연기상까지 이변 없이 주요 부문 3관왕을 차지했죠. 사견이지만 시상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여러 부침이 있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준 분이 김성수 감독님이셨어요. 메시지 한 줄 한 줄이 그렇게 따뜻하실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참 어른이세요. 그런 분이 오래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요. 대상 수상 후에 '박찬욱 감독은 왜 나이 얘기를 했냐'고 농담 하면서 엄청 쑥스러워 하기도 하셨는데, 어쨌든 나이를 드신 거잖아요. 그럼에도 굳건히 일해서 좋은 영화를 보여준 것. 영화하는 후배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든든함인지 몰라요. 진짜 밥 안 먹어도 든든하다는 말이 딱이에요. 감독님이 대상을 받으셨을 때,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나도 나중에 나이 먹고 더 선배가 됐을 때, 상의 유무와 상관 없이 저렇게 큰 자리에서 든든하게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죠. 그래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잘 거쳐 대상이라는 상까지 받아 주시니까 굉장히 고맙더라고요. 그 행위들이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최근 3년 간 영화계가 극심한 침체기를 겪다 보니 어떤 결과든 함부로 예측하기가 어려웠어요. '서울의 봄' 역시 결과적으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됐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거쳐야 했죠. 1000만 대업에 백상 다관왕까지. 그 중심에 있었던 배우로서 돌이켜 보면 어떤가요.
"'서울의 봄'은 촬영부터 전전긍긍 하면서 들어갔어요. 당시 영화들이 개봉만 하면 자빠지고 그러니까 이게 의욕이 안 나더라고요. '우리도 열심히 하면 될 거야!'라는 희망이 좀 보여야 하는데 그 땐 깜깜했죠. 특히 '서울의 봄'은 역사 이야기잖아요. '현대사 이야기를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까? 이 답답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할까?' 자꾸 위축되고 자신이 없어지는 거예요. 제가 맡은 캐릭터는 또 어때요. '서울의 봄'을 시발점으로 광주까지 연결이 되는 건데. 응어리가 이어지고, 한이 맺혀 있고, 저는 한다고 했지만 더 눈치 보게 되고…. '그래도 어떡하겠니. 해야지'가 결론이었어요. 그렇게 시작 됐어요.
개봉 직전까지도 걱정하면서 영화를 내놨는데 너무 잘되고, 너무 좋아해 주시니까 촬영 6~7개월 동안 고민하고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보상 되면서 그저 감사하더라고요. 그게 백상까지 온 것 같아요. 끝나고 감독님, 배우들, 제작사(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사(플러스엠) 식구들까지 '축하한다'고 다 모여서 맥주 한 잔 하는데, 촬영 전에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던 사람들이 아주 신나 가지고.(웃음)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사람 마음이 그런가봐요."
-무엇보다 영화의 힘으로 관객 사랑을 등에 업었는데, 1000만 레이스를 치를 때 감회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이게 영화지!' 오랜만에 그 감정을 다시 느꼈어요. 예전에, 한창 영화계가 좋았을 때 네 영화 우리 영화 할 것 없이 영화관에 가면 북적북적했던 에너지가 있었단 말이죠. 흥행도 흥행이지만 이 영화의 의도를 관객 분들이 정확하게 받아 들여서 호응하고 박수 치는 '소통'이 좋았어요. 실제로 무대인사 할 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요. 아, 그리고 개봉 초반에 그 워치 스트레스 지수 챌린지와 '우리 오빠 몸에서 썩 XX'라는 멘트가 확 주목 받았잖아요. '와, 대단하다. 재미있다. 감사하다'를 넘어서 좀 놀라기도 했고 많이 감동했어요. 그건 만든다고 만들 수 있는 마케팅이 아니거든요. 그 모든 힘이 '서울의 봄'을 완성해 줬다고 믿어요.
(정)우성이에게도 다시 한 번 고마워요. 늘 감사하고 대단하게 느끼는 건, 그 친구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많은 무대인사(232회 차)를 다 소화했거든요. 저는 '호프(HOPE)' 촬영 때문에 몇 번 못했는데, 우성이는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하면서도 관객들을 만날 땐 티도 내지 않고 결국 해내더라고요.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또 얼마나 열심히 해요. 오래 봤지만 이번에 보면서도 '참 대단하다. 대단한 친구다' 여러 번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부터 스타인 거예요. 지금까지도 스타고.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저거다' 싶었죠. 스타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꾸준함까지 유지할 수 있는 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의지와 힘이 필요하고 그게 있다는 거예요. (전)도연이도 마찬가지고, (염)정아 씨도 그렇고요. 저는 한창 연극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때부터 하이틴 스타로 막 반짝반짝 했단 말이죠. 그걸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건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일이에요. 따지면 진짜 오래 된 배우들인데 관객들도 한창 활동하는 현역 배우로 느끼잖아요. 놀라워요."
-그래서 후배 배우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과 산처럼 느껴지고요.
"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김수현, 이번에 TV부문 상 받은 남궁민, 다들 잘하잖아요. 개인적으로 남궁민 씨 드라마 '연인'을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전 편을 본방으로 보지는 못했는데 주변에서 하도 재미있다고 하길래 따로 챙겨 봤거든요. 진짜 잘하고 재미있더라고요. 후배 분들 너무 잘하고 계시니까 우리 찌끄리들이 빨리 사라져야지. 하하하."
-그러기엔 너무 그 '전두광'을 탄생 시킨 장본인이죠. 전두광 캐릭터를 맡기로 결정하면서 '다른 사람은 엄두 내지 못할 만큼 잘하고 싶다.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다짐을 특별히 더 하셨다고요. 어떤 의미였나요.
"저도 그 역할을 맡는 것, 출연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이걸 누군가 정치적으로 엮어서, 내가 또 그 사이에 껴서 말도 못하고 조리 돌림 당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유명한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 할래, 안 할래' 하면 누구나 그 고민부터 할 거예요. 솔직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고심 끝에 '하자. 하겠다' 결심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한 가지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아예 다른 이야기를 못하게 하자'는 거였죠. 그 의미였어요.
'배우로서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어쩌면 당연하거나 단순한 마음이 끝이 아니라 '어떤 부수적인 생각을 못하게끔 연기를 그냥 잘해버리자. 정치적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누가 보든 '우와, 연기 돌았네. 미쳤네' 할 정도로, 일단 그 말부터 나오게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던 거죠. 목적 있는 도전에 저를 던져 봤습니다."
-목표 달성은 작품의 결과와, 관객 반응으로 일찍이 증명됐지만, 그 다짐이 아쉽지 않게 스스로도 전두광으로서 할 수 있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지점에서 감독님의 도움이 굉장히 컸어요. 이 인물을 연기할 때 중요했던 것 중 또 하나가 리더로서 리더라는 위치였어요. 그런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분명하게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게 돼요. 하지만 인물이 인물이다 보니 그 부분을 관객들이 받아 들일 때 혹시 '멋짐'으로 오해할까 봐. 감독님께 말씀 드렸죠. '멋짐, 그런 것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감독님이 조절을 잘 해주셔야 한다. 나는 나로서 충분한 표현을 다 할테니, 내 마음대로 미친 듯이 알아서 해볼테니, 리더로서 카리스마는 있되 멋지지 않게만 잘 포장해 주세요' 그게 잘 버무려져서 관객들이 전두광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봐주신 것 아닌가 싶어요."
-앞서 진압군은 물론, 반란군 팀과도 떨어져 늘 혼자 지냈다고 했죠. 그 또한 계획된 움직임이었던 건가요.
"맞아요. 일부러 왕따를 자처했어요. 반란군이 아무리 같은 팀이라고 해도 언제 나를 뒤통수 칠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그 예민한 감정을 유지하려고 현장에서 아예 밥도 같이 안 먹고 술 한 잔도 안 마셨어요. 저 되게 뻘쭘하게 지냈거든요. '부당거래'(2010)를 찍을 때도 한 번 그랬던 경험이 있는데, 이번엔 더 철저히 저를 고립시켰죠."
-매 작품 캐릭터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어려운 지점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비교했을 때 전두광의 연기 난이도는 어땠나요.
"저에게는 '최상'이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솔직히 '히말라야'(2015) 못 따라가고.(웃음) 내적 부담감은 제일 컸다고 봐요. 실제로 있었던 사람을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것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창조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게 가장 컸고, 그런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최상으로 어렵지 않았나 싶어요."
-공교롭게 김성수 감독님과 함께 한 작품은 '아수라'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도 안타고니스트 역할이 주어졌어요.
"'아수라'의 박성배는 '내가 죽기 살기로 독기 품고 제대로 된 악역 하나 만든다'는 확고한 투지로 연기한 인물이었어요. '황정민 아니면 저렇게까지 못한다' 싶게 '아주 못되게 연기해보자' 했거든요. 캐릭터 이미지가 이미 명확한 전두광은 연기부터 눈에 들어와 그 외 것들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 작정으로 뛰어든 인물이라면, 박성배는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저 사람 못된 사람'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그려내고 싶었어요. 미묘한 차이가 있었죠."
-완벽한 악역 완성도에 김성수 감독님 카메라에 담긴 황정민의 정의로운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졌고요.
"나도 궁금해! 그건 감독님이 시켜주셔야 할 수 있는 건데, 시켜주면 난 무조건 하지! 으하하. 그렇잖아도 감독님께 '저 다음 작품도 시켜 줄 거냐' 했더니 '아유~ 정민 씨가 해주면 저야 감사하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근데 또 우성이랑 할 거잖아요!' 했거든요. 감독님께서 말로는 '쟤랑은 더 안 할 거예요' 하셨는데(웃음) 얌전히 기다려야죠 뭐. 감독님은 저에게도 절대 말을 안 놓으세요. 아주 어릴 때 만난 우성이한테만 놓고. 저는 감독님 언제나 다시 뵙고 싶어요."
-전부는 아니지만 '서울의 봄'은 일부 '아수라' 팀의 만남으로도 주목도를 높였어요. 아수리언('아수라' 영화 팬덤) 중 한 명으로 '아수라'가 재조명 받을 때 내심 기쁘기도 했는데, 팀워크가 워낙 좋았죠.
"'아수라'를 했던 팀은 스스로들이, 들들이 그 작품에 대한 분명한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이 좋은 작품을 함께 했다.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호흡 좋은 팀이 한꺼번에 모이기 힘든데 '아수라' 팀은 서로 너무 친했고, 촬영할 때도 똘똘 뭉쳐서 재미있게 찍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같이 있는 우리가 좋고, 우리가 만든 영화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홍보할 때도 그 에너지를 유지했고, 당시 '무한도전'에도 나가 미친 듯이 놀았는데, 막상 관객이 받아 든 작품은 완전 다른 장르였던 거죠. 사실 일부 관객들의 반응을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홍보와 영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맞춰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흔쾌히 우리를 초대해줬던 '무한도전' 팀에는 여전히 고맙고요. 다행히 '아수라'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라도 손익분기점을 넘겨 다들 많이 기뻐했어요."
-'베테랑2'로 오랜만에 칸영화제도 다녀 오셨죠. 이번에 백상 패션도 독특했는데, 칸 수트는 또 맵시 있게 캐주얼 하더라고요. 가벼운 질문인데 최종 의상 선택은 직접 하는 건가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두 개 있어요. '뭐 입을래' '뭐 먹을래'. 옷을 고를 줄 몰라서 고등학교 때까지도 어머니가 사다주는대로 입고 다녔고, 지금도 평소엔 아내가 골라줘요. 공식 석상 의상은 100% 스타일리스트가 입혀주는대로 입고요. 뭐 고르는 거 진짜 너무 싫어요.(웃음) 대신 말은 잘 듣죠. '이거 입을래?' 하면 군말 없이 입고, '이거 먹을래?' 하면 바로 '가자' 하고는 누구보다 잘 먹어요. 뭐가 마음에 드네 안 드네 절대 투덜대지 않아요."
-칸영화제 경력직이라 그런지 레드카펫에서 엄청 여유로워 보였어요. 류승완 감독님과 (정)해인 씨에게 이것 저것 말씀도 많이 하던데요.
"'공작' 때 한 번 가봤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요. '천천히 천천히 걸어줘야 한다. 그래야 이쪽 저쪽 사진 많이 찍을 수 있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저 사람은 지금 옷 자랑하고 있다'(웃음) 서로 긴장 좀 풀자고 나름의 정보 전달 차원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했어요.
별개로 이번에 가서 좀 크게 달라졌다 느꼈던 건, 다들 '요즘 영화 시장 힘들다' 하는데 그게 확실히 전 세계적으로 그런 것 같더라고요. 마켓에 가니까 사람이 없어. '공작' 때는 꼭 도떼기시장처럼 사람이 꽉 차서 화장실 한 번 가려고 하면 이리 저리 헤치고 다녀야 했는데, 이번엔 많이 한산했고 모든 길이 뻥 뚫려 있었어요. 여러 생각이 들었죠."
-일단 '베테랑2'는 외신 평이 워낙 좋게 나왔는데, 직접 체감한 상영 분위기는 어땠나요.
"사실 메인 극장에서 상영될 때 저는 계속 걱정 아닌 걱정을 했어요. 영화를 보다 보면 왜 한국에만 있는 특유의 포인트와 소재들이 나올 거잖아요. 그걸 해외 관객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자막이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개로 나오니까 화면의 반을 가리기도 하고. ''공작' 때도 그랬다'고 미리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류 감독이 워낙 수다쟁이라 캐릭터마다 말도 많고 대사량이 엄청나다 보니 자막을 다 읽기도 전에 장면이 휙휙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보면서 '저거 어쩌냐' 싶었어요.
그리고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끝나고 저희끼리는 '어쨌든 '베테랑2'는 한국 무대를 위해 만든 작품이니까 돌아가서 내부 반응까지 보고 뭔가 좀 더 해볼 수 있으면 하자. 아직 시간도 있지 않냐. 대사를 수정하든지, 미리 내레이션이라도 더 넣어서 설명될 수 있게끔 해보자' 논의도 했거든요. 근데 막상 올라오는 리뷰들을 보니까 '어? 이렇게 좋게 봐주셨구나' 싶은 거예요. 로튼토마토 반응도 좋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원했던 느낌을 그대로 봐줘서 감독님이 아주 신나 했어요. 다시 '수정할 필요 전혀 없겠는데?' 한시름 놨죠."
-칸영화제 분위기를 살짝 전해 주기도 하셨는데, 30여 년 간 활동하면서 영화계가 겪는 수 많은 위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을테고,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셨잖아요. 하지만 최근의 위기는 또 전혀 다른 종류의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로서 어떤 마음인가요.
"어려워요. 어렵지만 결국 그 안에서 무조건 해결을 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요즘은 콘텐트를 보는 관객들의 눈이나 수준이 너무 올라가 계셔서, 이상하게 만들면 그냥 다 '누구세요' 하게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누구세요'가 안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영화관 자체가 가장 쉽게, 언제나 편하게 갈 수 있는 놀이터였어요. 티켓 가격이 저렴했고, 속 된 말로 시간 때우기에 너무 좋았죠. '할 거 없는데 뭐 할까? 영화나 보러 가자!'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봐도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티켓 가격은 올랐고, 콘텐트를 만날 수 있는 매체도 많아졌고, 극장은 마음 먹고 가야 하는 곳으로 바뀐 거죠. 그렇다면 정말 보고 싶은 것을 봐야 하고 그런 작품이 있을 때 움직인다는 뜻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뭘 하든 정말 잘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어요.
답은 정확해요. '재미있으면 잘 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당연한 것 아니야' 하는데 당연한 걸 알고 해내는 수치가 많지 않은 게 또 현실이잖아요. 등 돌리는 건 순식간이에요. '돈 안 아까워. 진짜 재미있어. 대박!' 관객이 호응하는 이유와 반응을 믿고 따라야죠. 그러려면 도돌이표처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오게 되고요. 그렇다고 돈을 많이 들여야 하냐? 그건 아니에요. 영화하는 사람들은 다 알 거예요. 어렵게 돌아갈 필요도 없어요. 눈에 보이잖아요. 왜 평점이 낮아지는지, 왜 에그(CGV 골드에그지수)가 깨지는지, 자각하고 고민해야죠. 그리고 그 화살을 다른 곳에 돌리지 말고 자기에게 돌려라. 그래야 영화계가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하나 안타까운 건 그래서 신인 감독들은 예전보다 쉽게 영화를 찍을 수 없는 환경이 됐어요. 감독이든 배우든 작품으로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데, 신인 감독들은 그 첫 기회를 얻기가 더 어려워졌죠. 글, 시나리오로 승부를 봐야 할테니 몇 배의 공을 들여야 하고 그럼에도 웬만하지 않으면 투자·제작 등이 붙지 않을 것이고. 데뷔에 성공한 신인 감독들은 진짜 대단한 거예요. 눈 여겨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작품도 대부분 다 좋아요. 그럼 영화하는 친구들, 후배들, 제작자들, 동료들과 맨날 이야기 하죠. '우리 진짜 잘 만들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몇 년 사이 콘텐트 산업의 변화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빠르게 이뤄졌어요. 황정민은 그 환경에 물 흐르듯 적응하는 배우로 OTT까지 유연하게 넘나드는 모습을 보였죠. 어떤 변화를 받아 들이는데 거부감은 없나요.
"전혀요. 그 또한 당연히, 당연히 따라가야죠. 배우는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데, 그 관객이 변했는데 배우가 안 변한다? 아예 말이 안 되는 맥락이에요. 콘텐트의 3대 요소 중 하나는 '관객'이잖아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내가 옳다고 가만히 있으면 트렌드에 안 맞는 것이고 과거에 갇혀 사는 거죠. 눈이 한 개인 나라에 눈이 두 개인 배우가 있다면 눈을 하나로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배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로서는 따지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당연한 일이에요."
-배우 황정민에게는 더 더욱 우문일 수 있지만 현답을 내려 주시리라 믿고. 연기를 못하는 것과 안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건 캐릭터와의 어울림, 비중, 무게감과도 다른 영역이라 보거든요. 종종 매너리즘에 빠지는 배우들을 볼 때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황정민은 작품의 흥행을 떠나 연기로는 단 한 번도 관객을 실망 시킨 적 없는 배우잖아요.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 어떤 상대 배우를 만나든 '열심히'가 늘 보이는데 어떻게 그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나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웃음) 연기가 일이고 배우가 직업이니까 관성처럼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작품 할 때마다 관객들이 보내 주시는 응원에 힘이 나요. '잘했다' 하면 감사하고. 이 나이가 돼도 여전히 칭찬 받고 싶고 칭찬 받는 것 좋아합니다. 하하. '황정민이 다음 작품에 또 어떤 것을 할까' 관객들이 궁금해 하고 기대하는 만큼 솔직히 나도 나를 기대하게 돼요.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는 데다가, 맡는다 하더라도 그 캐릭터를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는 나도 모르니까.
전두광을 맡았을 때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관객들도 기대라는 것을 하는 것이고, 잘하면 '잘했다' 하면서 서로 같이 좋은 관계가 형성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고, 항상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저에게는 확실히 그게 제일 큰 힘인 것 같기는 해요. 또 하나는, 더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새하얀 백지로 시작해서 끝나면 그 종이를 빡 찢고 또 새 백지를 꺼내 시작하거든요. 그 백지가 큰 다음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서울의 봄'을 통해 젊은 팬이 훅 늘었다고요. 이번 연극 '맥베스' 티켓팅 때도 관객 연령층이 낮아졌다고 들었어요. 1차 티켓 오픈은 순식간에 매진이 됐죠.
"그건 '밤양갱' 때문 아닐까 싶은데. 하하하하. '서울의 봄' 영향도 있겠지만 연타로 밈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시너지가 나지 않았을까요. '마라탕후루' 나온 것도 봤어요. '후루 후루' 하는데 그게 '호로 놈의 XX' 할 때 '호로'를 딴 거거든요. 어떤 대사에서 어떻게 따왔는지 저는 다 알아요. 만드는 친구는 천재 같고요. 어쨌든 그게 다 애정의 산물이잖아요. 저를 두고 노는 밈들이 몇 있는데 보면 미칠 것 같으면서도 내심 너무 고맙고 재미있어요.
연극은 샘컴퍼니와 같이 한 작품이 총 여섯 작품 중 네 작품 째인데, ''샘컴퍼니 연극' 하면 무조건 재미있고 실망 없다,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는 신뢰가 이제 조금씩 인식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연극은 할인이 없거든요. 이전 샘컴퍼니 공연 티켓을 갖고 오면 해주는 것이 유일한 할인 이벤트인데, 10년 정도 되다 보니까 관객층이 쌓였고 '이번에도 티켓 챙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매진도 저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 다른 배우들도 있고, 샘컴퍼니의 역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오다 보니 LG아트센터 건물에 '벚꽃동산' 전도연 배우의 얼굴이 크게 걸려 있더라고요.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영화 뿐만 아니라 여름 연극 시장에도 연속으로 큰 힘이 되어 주겠어요.
"엊그제 '벚꽃동산' 봤어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박이더라고요. 도연이 너무 잘하고 (박)해수도 참 잘해요. 그리고 이번 시즌 이야기를 연출님이 아주 잘 풀어내셨더라고요. 무엇보다 도연이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는데, 왜 맨날 하는 특유의 말 있잖아요. '나 어뜩해~ 못하겠어~' 하면서 우는데 막상 하면 제일 잘해. 어휴.(웃음) 대단하게 너무 너무 잘하니까 '벚꽃동산'도, '맥베스'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다양한 연극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나홍진 감독님의 '호프' 촬영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죠.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살짝 스포를 해줄 수 있을까요.
"음….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하하. 다른 게 아니라 SF 장르에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인데 외계인을 볼 수 없으니까. 외계인 공격에 뛰어다니면서 놀라는 반응을 해야 하는데, 앞에 사람이 있으면 편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해야 했어요. 똑같이 놀라도 연기는 매번 달라야 했고요. 높낮이 그래프를 그리면서 해봤는데 딱 들어맞는 지점을 계속 생각해야 해서 쉽지는 않았어요.
근데 현장은 수월했던 것이 '아수라' 팀이 '서울의 봄'을 함께 했다면 '호프'는 '곡성' 팀이 다시 뭉쳤어요. 스태프들이 이미 나홍진 감독님의 스타일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던 거죠. 잘 아니까 촬영 전 준비를 놀랍도록 완벽하게 싹~ 해 놓더라고요. 영화 베테랑에 나홍진 전문가들이에요.(웃음) 그래서 나 감독은 현장에서 엄청 행복해 했어요. 일정도 더 늘어나는 것 없이 정해진 계획에 맞춰 끝났고요. 스포까지는 아니지만 '나홍진이 굉장히 즐겁게 찍었다'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넷플릭스로 공개 될 '크로스'와, 당초 연말 개봉 예정이었던 '베테랑2'가 작품의 만족도로 인해 조금 앞당겨 개봉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9월 13일 개봉 확정) 올 하반기 영화계도 다시 황정민이 책임지게 됐네요.
"맞아요. '베테랑2'는 원래 연말이었는데 앞으로 당기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스케줄 체크는 이미 들어왔고요. '크로스'는 넷플릭스로 가게 돼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해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고 약간 B급 감성이 있어요.(웃음) 정아 씨, (전)혜진 씨와는 '크로스'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덕분에 너무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즐겁게 촬영 할 수 있었어요. 정아 씨가 식혜를 만들잖아요? 호박식혜, 일반식혜 다 만드는데 맛이 기가 막혀요. 점점 더 잘 만들어. 본인도 '오빠, 나 이제 팔아도 될 것 같아' 하더라고요. 8월 공개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생각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신나게 달려 봐야죠. 관객 분들이 즐거워 하신다면야 뭐든. 더할나위없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무시무시한 캐릭터를 만나 '이제 더 이룰 것이 있을까' 싶은 배우에게 다시 '처음'의 기쁨을 안겼다. 영화의 운명과도 꼭 닮았다. 믿기 힘든 실화. 1000만 대업 '서울의 봄(김성수 감독)'을 통해 데뷔 35년 만 첫 백상예술대상 트로피를 손에 쥔 배우 황정민(53)이다. 메가 히트 신드롬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갖추며 한국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게 된 '서울의 봄'은 정우성에게는 첫 번째 1000만, 황정민에게는 첫 번째 백상 트로피를 선물하는 의미까지 더했다.
공식 데뷔는 1994년 뮤지컬 '지하철1호선'이지만, 웹예능 '나영석의 지글지글'에서 언급한 '장군의 아들'(1989)로 따지면 꼬박 데뷔 35년 만이다. 황정민 스스로도 "한 번 쯤은 주실 법도 한데 유독 백상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말할 만큼 30여 년 만에 맺게 된 첫 인연이다. 기다림의 아쉬움은 만루 홈런으로 날렸다. 최고의 작품, 최상의 캐릭터로 6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해 누구도 반박 못할 지지 속 이름 석 자를 새겼다. '최우수연기'라는 부문 타이틀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없다.
비주얼로 사로잡고 연기로 폭발 시켰던 '서울의 봄' 전두광은 황정민의 수 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난이도 최상'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실화, 실존 모델, 근현대사, 정치 등등 신경 쓰고자 하면 써야 할 것이 무궁무진한 예민함 속에서 황정민이 고집한 건 결국 '연기'였다. 오로지 연기 하나로 어떠한 이야기도 나오지 못하게 승부를 내고 싶었다는 목표. 현장에서는 왕따를 자처했고, 미친 척 할 수 있는 모든 연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이제 황정민 전 후로 나뉘게 됐다.
백상예술대상 이후 숨 고를 새 없이 제77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 된 '베테랑2(류승완 감독)'를 들고 칸 행 비행기에 올랐던 황정민은 귀국 후 곧바로 연극 '맥베스' 연습에 돌입하는 등 여지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백상 수상 인터뷰도 그가 연극 연습에 한창인 LG아트센터에서 시간을 잠시 쪼개 진행했을 정도. 본격적인 '맥베스' 열혈 홍보 및 공연과 함께, 넷플릭스 영화 '크로스(이명훈 감독)', 추석 개봉을 확정한 '베테랑2'까지 하반기 일정은 이미 꽉 찼다.
여기에 최근 촬영을 마친 400억 대 대작, 역대 한국 영화 최고 스케일 '호프(HOPE·나홍진 감독)'로 자의 반 타의 반 n년간 충무로의 운명을 책임지게 된 상황. 누구보다 냉철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연기해내는 황정민이기에 기대와 신뢰가 우선 뒤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여전히 관객들에게 '잘했다' 칭찬 받고 싶고, 응원 받고 싶어 매 작품 새하얀 백지를 펼친다는 황정민. 전두광을 찢고 그려낸 그의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는 어떨지 기다림조차 설레는 시간이다.
-여전히 '진짜?'라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지만, 데뷔 후 '첫 백상예술대상 수상'입니다. 60주년에 의미있는 첫 트로피를 전달 드릴 수 있어 영광이에요.
"제가 감사하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백상과는 인연이 잘 닿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번 쯤은 주실 법 한데…' 하면서 지내다가(웃음) 이번에 '서울의 봄' 작품으로 노미네이트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솔직히 기대 아닌 기대를 했죠. 근데 또 함께 후보에 오른 분들이 워낙 대단한 분들이라 '내가 저 틈에 끼어 있다고?' 그것 만으로도 감사하더라고요."
-황정민 배우도 그런 생각을 하는군요.
"그럼요. 당연히 그렇죠. 현장에서 수상자 발표 전에 영상으로 후보자들을 비춰줬잖아요? 화면으로 얼굴이 쫙 보이는데, 한국에 저렇게 훌륭하고 좋은 배우들이 많고, 그 사이에 제가 같이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어요. 물론 올라가서 아내 이야기 한번 했다가 끝나고 호되게 놀림을 당하긴 했지만요. 하하."
-말씀하신 것처럼 올해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는 특히 '죽음의 조'라고 불릴 만큼 어느 해보다 후보에 오르는 장벽부터 높았어요. 수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상당했고요. 기대를 했다고 한 만큼, 황정민에 대한 사전 지지율도 눈에 띄었는데 실제 호명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아이고 어떡하지?'(웃음) 내심 긴장 하다가 처음 든 생각은 진짜 그랬어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머릿속이 일단 하얘지면서 '수상 소감을 어떻게 해야 하나'로 꽉 차더라고요. 올라가기 전에 후보자 분들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됐고 하나 하나 이야기를 했죠. 기억나는 시작은 그래요."
-화제의 수상 영상도 다시 돌려봤나요.
"아니요. 절대. 안 봤어요."
-왜요.(웃음) '눈물의 사랑꾼 소감'이 아무래도 이슈가 됐는데, 가장 궁금했던 건 역시 아내, 김미혜 대표님 반응이에요.
"눈물까지는 아니고 울컥.(웃음) 와이프는 뭐, 담담하게 '축하한다' 그러고 '왜 오버하냐' 그랬죠. 나이를 먹으니까 약간 아내 이야기만 하면 울컥하는 게 있어요. 그 날 축하 연락도 엄청 받았는데 대부분이 그 이야기였어요. '축하드려요! 근데 왜 그러셨어요?' 하…."
-혹시 못 다한 소감도 있을까요.
"'서울의 봄'을 같이 했던 배우 중에 돌아가신 분이 계세요. 염동현(2022년 12월 2일 별세) 배우님이요. 간경화로 '서울의 봄' 개봉을 못 보고 돌아가셨는데, 그 형님이 우리 반란군 쪽에 같이 있었거든요. 촬영 때 반란군은 반란군대로, 진압군은 진압군대로 서로 부딪치지 않고 밥 먹고 술 마시는 것까지 다 각자 팀 별로 뭉쳐서 따로 지냈는데, 저는 반란군 팀이었지만 사실 그 안에서도 섞이지 않고 늘 혼자 있었어요. 형님과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지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해 드리고 싶어요."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 받으면서 신드롬 반열에 올랐던 '서울의 봄'은 올해 백상에서 김성수 감독님의 대상부터 작품상, 남자 최우수연기상까지 이변 없이 주요 부문 3관왕을 차지했죠. 사견이지만 시상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여러 부침이 있기 마련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준 분이 김성수 감독님이셨어요. 메시지 한 줄 한 줄이 그렇게 따뜻하실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참 어른이세요. 그런 분이 오래 오래 계셨으면 좋겠어요. 대상 수상 후에 '박찬욱 감독은 왜 나이 얘기를 했냐'고 농담 하면서 엄청 쑥스러워 하기도 하셨는데, 어쨌든 나이를 드신 거잖아요. 그럼에도 굳건히 일해서 좋은 영화를 보여준 것. 영화하는 후배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큰 든든함인지 몰라요. 진짜 밥 안 먹어도 든든하다는 말이 딱이에요. 감독님이 대상을 받으셨을 때,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나도 나중에 나이 먹고 더 선배가 됐을 때, 상의 유무와 상관 없이 저렇게 큰 자리에서 든든하게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죠. 그래도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잘 거쳐 대상이라는 상까지 받아 주시니까 굉장히 고맙더라고요. 그 행위들이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최근 3년 간 영화계가 극심한 침체기를 겪다 보니 어떤 결과든 함부로 예측하기가 어려웠어요. '서울의 봄' 역시 결과적으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작품'으로 남게 됐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거쳐야 했죠. 1000만 대업에 백상 다관왕까지. 그 중심에 있었던 배우로서 돌이켜 보면 어떤가요.
"'서울의 봄'은 촬영부터 전전긍긍 하면서 들어갔어요. 당시 영화들이 개봉만 하면 자빠지고 그러니까 이게 의욕이 안 나더라고요. '우리도 열심히 하면 될 거야!'라는 희망이 좀 보여야 하는데 그 땐 깜깜했죠. 특히 '서울의 봄'은 역사 이야기잖아요. '현대사 이야기를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까? 이 답답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할까?' 자꾸 위축되고 자신이 없어지는 거예요. 제가 맡은 캐릭터는 또 어때요. '서울의 봄'을 시발점으로 광주까지 연결이 되는 건데. 응어리가 이어지고, 한이 맺혀 있고, 저는 한다고 했지만 더 눈치 보게 되고…. '그래도 어떡하겠니. 해야지'가 결론이었어요. 그렇게 시작 됐어요.
개봉 직전까지도 걱정하면서 영화를 내놨는데 너무 잘되고, 너무 좋아해 주시니까 촬영 6~7개월 동안 고민하고 힘들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보상 되면서 그저 감사하더라고요. 그게 백상까지 온 것 같아요. 끝나고 감독님, 배우들, 제작사(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사(플러스엠) 식구들까지 '축하한다'고 다 모여서 맥주 한 잔 하는데, 촬영 전에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던 사람들이 아주 신나 가지고.(웃음)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사람 마음이 그런가봐요."
-무엇보다 영화의 힘으로 관객 사랑을 등에 업었는데, 1000만 레이스를 치를 때 감회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이게 영화지!' 오랜만에 그 감정을 다시 느꼈어요. 예전에, 한창 영화계가 좋았을 때 네 영화 우리 영화 할 것 없이 영화관에 가면 북적북적했던 에너지가 있었단 말이죠. 흥행도 흥행이지만 이 영화의 의도를 관객 분들이 정확하게 받아 들여서 호응하고 박수 치는 '소통'이 좋았어요. 실제로 무대인사 할 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고요. 아, 그리고 개봉 초반에 그 워치 스트레스 지수 챌린지와 '우리 오빠 몸에서 썩 XX'라는 멘트가 확 주목 받았잖아요. '와, 대단하다. 재미있다. 감사하다'를 넘어서 좀 놀라기도 했고 많이 감동했어요. 그건 만든다고 만들 수 있는 마케팅이 아니거든요. 그 모든 힘이 '서울의 봄'을 완성해 줬다고 믿어요.
(정)우성이에게도 다시 한 번 고마워요. 늘 감사하고 대단하게 느끼는 건, 그 친구가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많은 무대인사(232회 차)를 다 소화했거든요. 저는 '호프(HOPE)' 촬영 때문에 몇 번 못했는데, 우성이는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하면서도 관객들을 만날 땐 티도 내지 않고 결국 해내더라고요. 한 번 한 번 할 때마다 또 얼마나 열심히 해요. 오래 봤지만 이번에 보면서도 '참 대단하다. 대단한 친구다' 여러 번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젊었을 때부터 스타인 거예요. 지금까지도 스타고.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저거다' 싶었죠. 스타가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근데 꾸준함까지 유지할 수 있는 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의지와 힘이 필요하고 그게 있다는 거예요. (전)도연이도 마찬가지고, (염)정아 씨도 그렇고요. 저는 한창 연극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때부터 하이틴 스타로 막 반짝반짝 했단 말이죠. 그걸 지금까지 하고 있는 건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일이에요. 따지면 진짜 오래 된 배우들인데 관객들도 한창 활동하는 현역 배우로 느끼잖아요. 놀라워요."
-그래서 후배 배우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과 산처럼 느껴지고요.
"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얼마나 열심히 잘하고 있어요. 김수현, 이번에 TV부문 상 받은 남궁민, 다들 잘하잖아요. 개인적으로 남궁민 씨 드라마 '연인'을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전 편을 본방으로 보지는 못했는데 주변에서 하도 재미있다고 하길래 따로 챙겨 봤거든요. 진짜 잘하고 재미있더라고요. 후배 분들 너무 잘하고 계시니까 우리 찌끄리들이 빨리 사라져야지. 하하하."
-그러기엔 너무 그 '전두광'을 탄생 시킨 장본인이죠. 전두광 캐릭터를 맡기로 결정하면서 '다른 사람은 엄두 내지 못할 만큼 잘하고 싶다. 연기력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다짐을 특별히 더 하셨다고요. 어떤 의미였나요.
"저도 그 역할을 맡는 것, 출연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이걸 누군가 정치적으로 엮어서, 내가 또 그 사이에 껴서 말도 못하고 조리 돌림 당하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유명한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이 캐릭터 할래, 안 할래' 하면 누구나 그 고민부터 할 거예요. 솔직히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고심 끝에 '하자. 하겠다' 결심하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한 가지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아예 다른 이야기를 못하게 하자'는 거였죠. 그 의미였어요.
'배우로서 연기를 잘해야겠다'는 어쩌면 당연하거나 단순한 마음이 끝이 아니라 '어떤 부수적인 생각을 못하게끔 연기를 그냥 잘해버리자. 정치적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이 누가 보든 '우와, 연기 돌았네. 미쳤네' 할 정도로, 일단 그 말부터 나오게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던 거죠. 목적 있는 도전에 저를 던져 봤습니다."
-목표 달성은 작품의 결과와, 관객 반응으로 일찍이 증명됐지만, 그 다짐이 아쉽지 않게 스스로도 전두광으로서 할 수 있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지점에서 감독님의 도움이 굉장히 컸어요. 이 인물을 연기할 때 중요했던 것 중 또 하나가 리더로서 리더라는 위치였어요. 그런 역할은 어쩔 수 없이 분명하게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게 돼요. 하지만 인물이 인물이다 보니 그 부분을 관객들이 받아 들일 때 혹시 '멋짐'으로 오해할까 봐. 감독님께 말씀 드렸죠. '멋짐, 그런 것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감독님이 조절을 잘 해주셔야 한다. 나는 나로서 충분한 표현을 다 할테니, 내 마음대로 미친 듯이 알아서 해볼테니, 리더로서 카리스마는 있되 멋지지 않게만 잘 포장해 주세요' 그게 잘 버무려져서 관객들이 전두광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봐주신 것 아닌가 싶어요."
-앞서 진압군은 물론, 반란군 팀과도 떨어져 늘 혼자 지냈다고 했죠. 그 또한 계획된 움직임이었던 건가요.
"맞아요. 일부러 왕따를 자처했어요. 반란군이 아무리 같은 팀이라고 해도 언제 나를 뒤통수 칠지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그 예민한 감정을 유지하려고 현장에서 아예 밥도 같이 안 먹고 술 한 잔도 안 마셨어요. 저 되게 뻘쭘하게 지냈거든요. '부당거래'(2010)를 찍을 때도 한 번 그랬던 경험이 있는데, 이번엔 더 철저히 저를 고립시켰죠."
-매 작품 캐릭터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어려운 지점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비교했을 때 전두광의 연기 난이도는 어땠나요.
"저에게는 '최상'이었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솔직히 '히말라야'(2015) 못 따라가고.(웃음) 내적 부담감은 제일 컸다고 봐요. 실제로 있었던 사람을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것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창조 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게 가장 컸고, 그런 부분에서는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 최상으로 어렵지 않았나 싶어요."
-공교롭게 김성수 감독님과 함께 한 작품은 '아수라'에 이어 '서울의 봄'에서도 안타고니스트 역할이 주어졌어요.
"'아수라'의 박성배는 '내가 죽기 살기로 독기 품고 제대로 된 악역 하나 만든다'는 확고한 투지로 연기한 인물이었어요. '황정민 아니면 저렇게까지 못한다' 싶게 '아주 못되게 연기해보자' 했거든요. 캐릭터 이미지가 이미 명확한 전두광은 연기부터 눈에 들어와 그 외 것들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 작정으로 뛰어든 인물이라면, 박성배는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저 사람 못된 사람'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그려내고 싶었어요. 미묘한 차이가 있었죠."
-완벽한 악역 완성도에 김성수 감독님 카메라에 담긴 황정민의 정의로운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졌고요.
"나도 궁금해! 그건 감독님이 시켜주셔야 할 수 있는 건데, 시켜주면 난 무조건 하지! 으하하. 그렇잖아도 감독님께 '저 다음 작품도 시켜 줄 거냐' 했더니 '아유~ 정민 씨가 해주면 저야 감사하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근데 또 우성이랑 할 거잖아요!' 했거든요. 감독님께서 말로는 '쟤랑은 더 안 할 거예요' 하셨는데(웃음) 얌전히 기다려야죠 뭐. 감독님은 저에게도 절대 말을 안 놓으세요. 아주 어릴 때 만난 우성이한테만 놓고. 저는 감독님 언제나 다시 뵙고 싶어요."
-전부는 아니지만 '서울의 봄'은 일부 '아수라' 팀의 만남으로도 주목도를 높였어요. 아수리언('아수라' 영화 팬덤) 중 한 명으로 '아수라'가 재조명 받을 때 내심 기쁘기도 했는데, 팀워크가 워낙 좋았죠.
"'아수라'를 했던 팀은 스스로들이, 들들이 그 작품에 대한 분명한 자긍심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이 좋은 작품을 함께 했다. 범접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호흡 좋은 팀이 한꺼번에 모이기 힘든데 '아수라' 팀은 서로 너무 친했고, 촬영할 때도 똘똘 뭉쳐서 재미있게 찍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같이 있는 우리가 좋고, 우리가 만든 영화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홍보할 때도 그 에너지를 유지했고, 당시 '무한도전'에도 나가 미친 듯이 놀았는데, 막상 관객이 받아 든 작품은 완전 다른 장르였던 거죠. 사실 일부 관객들의 반응을 그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충분히 알고 있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홍보와 영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맞춰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흔쾌히 우리를 초대해줬던 '무한도전' 팀에는 여전히 고맙고요. 다행히 '아수라'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라도 손익분기점을 넘겨 다들 많이 기뻐했어요."
-'베테랑2'로 오랜만에 칸영화제도 다녀 오셨죠. 이번에 백상 패션도 독특했는데, 칸 수트는 또 맵시 있게 캐주얼 하더라고요. 가벼운 질문인데 최종 의상 선택은 직접 하는 건가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두 개 있어요. '뭐 입을래' '뭐 먹을래'. 옷을 고를 줄 몰라서 고등학교 때까지도 어머니가 사다주는대로 입고 다녔고, 지금도 평소엔 아내가 골라줘요. 공식 석상 의상은 100% 스타일리스트가 입혀주는대로 입고요. 뭐 고르는 거 진짜 너무 싫어요.(웃음) 대신 말은 잘 듣죠. '이거 입을래?' 하면 군말 없이 입고, '이거 먹을래?' 하면 바로 '가자' 하고는 누구보다 잘 먹어요. 뭐가 마음에 드네 안 드네 절대 투덜대지 않아요."
-칸영화제 경력직이라 그런지 레드카펫에서 엄청 여유로워 보였어요. 류승완 감독님과 (정)해인 씨에게 이것 저것 말씀도 많이 하던데요.
"'공작' 때 한 번 가봤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요. '천천히 천천히 걸어줘야 한다. 그래야 이쪽 저쪽 사진 많이 찍을 수 있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저 사람은 지금 옷 자랑하고 있다'(웃음) 서로 긴장 좀 풀자고 나름의 정보 전달 차원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했어요.
별개로 이번에 가서 좀 크게 달라졌다 느꼈던 건, 다들 '요즘 영화 시장 힘들다' 하는데 그게 확실히 전 세계적으로 그런 것 같더라고요. 마켓에 가니까 사람이 없어. '공작' 때는 꼭 도떼기시장처럼 사람이 꽉 차서 화장실 한 번 가려고 하면 이리 저리 헤치고 다녀야 했는데, 이번엔 많이 한산했고 모든 길이 뻥 뚫려 있었어요. 여러 생각이 들었죠."
-일단 '베테랑2'는 외신 평이 워낙 좋게 나왔는데, 직접 체감한 상영 분위기는 어땠나요.
"사실 메인 극장에서 상영될 때 저는 계속 걱정 아닌 걱정을 했어요. 영화를 보다 보면 왜 한국에만 있는 특유의 포인트와 소재들이 나올 거잖아요. 그걸 해외 관객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자막이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개로 나오니까 화면의 반을 가리기도 하고. ''공작' 때도 그랬다'고 미리 설명해 주기는 했지만, 류 감독이 워낙 수다쟁이라 캐릭터마다 말도 많고 대사량이 엄청나다 보니 자막을 다 읽기도 전에 장면이 휙휙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보면서 '저거 어쩌냐' 싶었어요.
그리고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끝나고 저희끼리는 '어쨌든 '베테랑2'는 한국 무대를 위해 만든 작품이니까 돌아가서 내부 반응까지 보고 뭔가 좀 더 해볼 수 있으면 하자. 아직 시간도 있지 않냐. 대사를 수정하든지, 미리 내레이션이라도 더 넣어서 설명될 수 있게끔 해보자' 논의도 했거든요. 근데 막상 올라오는 리뷰들을 보니까 '어? 이렇게 좋게 봐주셨구나' 싶은 거예요. 로튼토마토 반응도 좋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원했던 느낌을 그대로 봐줘서 감독님이 아주 신나 했어요. 다시 '수정할 필요 전혀 없겠는데?' 한시름 놨죠."
-칸영화제 분위기를 살짝 전해 주기도 하셨는데, 30여 년 간 활동하면서 영화계가 겪는 수 많은 위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을테고,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하셨잖아요. 하지만 최근의 위기는 또 전혀 다른 종류의 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로서 어떤 마음인가요.
"어려워요. 어렵지만 결국 그 안에서 무조건 해결을 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요즘은 콘텐트를 보는 관객들의 눈이나 수준이 너무 올라가 계셔서, 이상하게 만들면 그냥 다 '누구세요' 하게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누구세요'가 안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영화관 자체가 가장 쉽게, 언제나 편하게 갈 수 있는 놀이터였어요. 티켓 가격이 저렴했고, 속 된 말로 시간 때우기에 너무 좋았죠. '할 거 없는데 뭐 할까? 영화나 보러 가자!'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봐도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티켓 가격은 올랐고, 콘텐트를 만날 수 있는 매체도 많아졌고, 극장은 마음 먹고 가야 하는 곳으로 바뀐 거죠. 그렇다면 정말 보고 싶은 것을 봐야 하고 그런 작품이 있을 때 움직인다는 뜻인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뭘 하든 정말 잘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어요.
답은 정확해요. '재미있으면 잘 된다' 이제는 어쩔 수 없어요. '당연한 것 아니야' 하는데 당연한 걸 알고 해내는 수치가 많지 않은 게 또 현실이잖아요. 등 돌리는 건 순식간이에요. '돈 안 아까워. 진짜 재미있어. 대박!' 관객이 호응하는 이유와 반응을 믿고 따라야죠. 그러려면 도돌이표처럼 '잘 만들어야 한다'는 기본으로 돌아오게 되고요. 그렇다고 돈을 많이 들여야 하냐? 그건 아니에요. 영화하는 사람들은 다 알 거예요. 어렵게 돌아갈 필요도 없어요. 눈에 보이잖아요. 왜 평점이 낮아지는지, 왜 에그(CGV 골드에그지수)가 깨지는지, 자각하고 고민해야죠. 그리고 그 화살을 다른 곳에 돌리지 말고 자기에게 돌려라. 그래야 영화계가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하나 안타까운 건 그래서 신인 감독들은 예전보다 쉽게 영화를 찍을 수 없는 환경이 됐어요. 감독이든 배우든 작품으로 보여주고 증명해야 하는데, 신인 감독들은 그 첫 기회를 얻기가 더 어려워졌죠. 글, 시나리오로 승부를 봐야 할테니 몇 배의 공을 들여야 하고 그럼에도 웬만하지 않으면 투자·제작 등이 붙지 않을 것이고. 데뷔에 성공한 신인 감독들은 진짜 대단한 거예요. 눈 여겨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작품도 대부분 다 좋아요. 그럼 영화하는 친구들, 후배들, 제작자들, 동료들과 맨날 이야기 하죠. '우리 진짜 잘 만들어야 한다. 더 잘해야 한다.'"
-몇 년 사이 콘텐트 산업의 변화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빠르게 이뤄졌어요. 황정민은 그 환경에 물 흐르듯 적응하는 배우로 OTT까지 유연하게 넘나드는 모습을 보였죠. 어떤 변화를 받아 들이는데 거부감은 없나요.
"전혀요. 그 또한 당연히, 당연히 따라가야죠. 배우는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데, 그 관객이 변했는데 배우가 안 변한다? 아예 말이 안 되는 맥락이에요. 콘텐트의 3대 요소 중 하나는 '관객'이잖아요. 세상이 바뀌었는데 내가 옳다고 가만히 있으면 트렌드에 안 맞는 것이고 과거에 갇혀 사는 거죠. 눈이 한 개인 나라에 눈이 두 개인 배우가 있다면 눈을 하나로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배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저로서는 따지고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당연한 일이에요."
-배우 황정민에게는 더 더욱 우문일 수 있지만 현답을 내려 주시리라 믿고. 연기를 못하는 것과 안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건 캐릭터와의 어울림, 비중, 무게감과도 다른 영역이라 보거든요. 종종 매너리즘에 빠지는 배우들을 볼 때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황정민은 작품의 흥행을 떠나 연기로는 단 한 번도 관객을 실망 시킨 적 없는 배우잖아요.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 어떤 상대 배우를 만나든 '열심히'가 늘 보이는데 어떻게 그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나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웃음) 연기가 일이고 배우가 직업이니까 관성처럼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작품 할 때마다 관객들이 보내 주시는 응원에 힘이 나요. '잘했다' 하면 감사하고. 이 나이가 돼도 여전히 칭찬 받고 싶고 칭찬 받는 것 좋아합니다. 하하. '황정민이 다음 작품에 또 어떤 것을 할까' 관객들이 궁금해 하고 기대하는 만큼 솔직히 나도 나를 기대하게 돼요.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는 데다가, 맡는다 하더라도 그 캐릭터를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는 나도 모르니까.
전두광을 맡았을 때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관객들도 기대라는 것을 하는 것이고, 잘하면 '잘했다' 하면서 서로 같이 좋은 관계가 형성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것 같고, 항상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보니 저에게는 확실히 그게 제일 큰 힘인 것 같기는 해요. 또 하나는, 더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는 작품을 할 때마다 새하얀 백지로 시작해서 끝나면 그 종이를 빡 찢고 또 새 백지를 꺼내 시작하거든요. 그 백지가 큰 다음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서울의 봄'을 통해 젊은 팬이 훅 늘었다고요. 이번 연극 '맥베스' 티켓팅 때도 관객 연령층이 낮아졌다고 들었어요. 1차 티켓 오픈은 순식간에 매진이 됐죠.
"그건 '밤양갱' 때문 아닐까 싶은데. 하하하하. '서울의 봄' 영향도 있겠지만 연타로 밈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시너지가 나지 않았을까요. '마라탕후루' 나온 것도 봤어요. '후루 후루' 하는데 그게 '호로 놈의 XX' 할 때 '호로'를 딴 거거든요. 어떤 대사에서 어떻게 따왔는지 저는 다 알아요. 만드는 친구는 천재 같고요. 어쨌든 그게 다 애정의 산물이잖아요. 저를 두고 노는 밈들이 몇 있는데 보면 미칠 것 같으면서도 내심 너무 고맙고 재미있어요.
연극은 샘컴퍼니와 같이 한 작품이 총 여섯 작품 중 네 작품 째인데, ''샘컴퍼니 연극' 하면 무조건 재미있고 실망 없다,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는 신뢰가 이제 조금씩 인식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연극은 할인이 없거든요. 이전 샘컴퍼니 공연 티켓을 갖고 오면 해주는 것이 유일한 할인 이벤트인데, 10년 정도 되다 보니까 관객층이 쌓였고 '이번에도 티켓 챙기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매진도 저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 다른 배우들도 있고, 샘컴퍼니의 역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오다 보니 LG아트센터 건물에 '벚꽃동산' 전도연 배우의 얼굴이 크게 걸려 있더라고요.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영화 뿐만 아니라 여름 연극 시장에도 연속으로 큰 힘이 되어 주겠어요.
"엊그제 '벚꽃동산' 봤어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 대박이더라고요. 도연이 너무 잘하고 (박)해수도 참 잘해요. 그리고 이번 시즌 이야기를 연출님이 아주 잘 풀어내셨더라고요. 무엇보다 도연이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는데, 왜 맨날 하는 특유의 말 있잖아요. '나 어뜩해~ 못하겠어~' 하면서 우는데 막상 하면 제일 잘해. 어휴.(웃음) 대단하게 너무 너무 잘하니까 '벚꽃동산'도, '맥베스'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다양한 연극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 나홍진 감독님의 '호프' 촬영을 성공적으로 끝마쳤죠.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살짝 스포를 해줄 수 있을까요.
"음….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하하. 다른 게 아니라 SF 장르에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인데 외계인을 볼 수 없으니까. 외계인 공격에 뛰어다니면서 놀라는 반응을 해야 하는데, 앞에 사람이 있으면 편하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해야 했어요. 똑같이 놀라도 연기는 매번 달라야 했고요. 높낮이 그래프를 그리면서 해봤는데 딱 들어맞는 지점을 계속 생각해야 해서 쉽지는 않았어요.
근데 현장은 수월했던 것이 '아수라' 팀이 '서울의 봄'을 함께 했다면 '호프'는 '곡성' 팀이 다시 뭉쳤어요. 스태프들이 이미 나홍진 감독님의 스타일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던 거죠. 잘 아니까 촬영 전 준비를 놀랍도록 완벽하게 싹~ 해 놓더라고요. 영화 베테랑에 나홍진 전문가들이에요.(웃음) 그래서 나 감독은 현장에서 엄청 행복해 했어요. 일정도 더 늘어나는 것 없이 정해진 계획에 맞춰 끝났고요. 스포까지는 아니지만 '나홍진이 굉장히 즐겁게 찍었다'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아요."
-넷플릭스로 공개 될 '크로스'와, 당초 연말 개봉 예정이었던 '베테랑2'가 작품의 만족도로 인해 조금 앞당겨 개봉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9월 13일 개봉 확정) 올 하반기 영화계도 다시 황정민이 책임지게 됐네요.
"맞아요. '베테랑2'는 원래 연말이었는데 앞으로 당기려는 움직임이 있어요. 스케줄 체크는 이미 들어왔고요. '크로스'는 넷플릭스로 가게 돼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해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고 약간 B급 감성이 있어요.(웃음) 정아 씨, (전)혜진 씨와는 '크로스'를 통해 처음 만났는데, 덕분에 너무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됐고 즐겁게 촬영 할 수 있었어요. 정아 씨가 식혜를 만들잖아요? 호박식혜, 일반식혜 다 만드는데 맛이 기가 막혀요. 점점 더 잘 만들어. 본인도 '오빠, 나 이제 팔아도 될 것 같아' 하더라고요. 8월 공개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생각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신나게 달려 봐야죠. 관객 분들이 즐거워 하신다면야 뭐든. 더할나위없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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