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대 큰 속빈강정이었네”…주가 띄우려면 밸류업 말고 ‘이것’ 부활해야 [나기자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재계는 투자 위축·소송 남발 우려
주가 우상향 위해 중요한 건 실적
코스피 상장사, 영업이익 7년간 제자리
SK·한화 제외 대기업들 신규투자 인색
경제관료 집합체 서별관회의 부활시켜
굵직한 기업 구조조정 신속히 다루고
주가 연동 성과급 등 전문경영인 우대
이는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입니다.
다만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배당을 늘리면 그만큼 투자에 쓸 재원이 부족해집니다. 이사진에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여할 경우, 법적 분쟁만 많아질 것이란 반론도 많습니다. 오히려 재계는 경영권 보장과 상속세 완화와 같이 오너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주가 밸류업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투자업계와 오너일가(재계) 간의 인식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주가의 본질은 ‘실적’입니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 것은 사실이나, 또 한편으로는 국내 대기업 실적이 점점 정체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최근 코스피 대기업들의 실적은 어떠할까요? 이번 기획에서 살펴보겠습니다.
2017년 기준 코스피 상장사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808조원과 157조원입니다. 영업이익률은 8.7%입니다. 반면 2023년 기준 코스피 상장사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825조원과 123조원입니다. 영업이익률은 4.4%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는 단일 섹터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실적(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따른 착시입니다. 따라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 부문을 제외하고도 살펴봤습니다.
전기전자 부문 제외시 코스피 상장기업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017년 기준 1411조원, 83조원입니다. 2023년 매출액은 2285조원, 영업이익은 116조원입니다. 전기전자 부품 제외 영업이익률은 2017(5.9%)서 2023년(5.1%)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외형 성장은 하고 있지만, 영업이익률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인 겁니다. 중국 업체의 약진, 국내 내수성장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입니다.
전직 외국계 IB(투자은행) 출신 한 관계자는 “현재 밸류업 프로그램은 배당 확대 등 수급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미국 증시의 우상향 사례를 보면 수급 개선뿐만 아니라 결국 기업의 실적 개선(펀더멘털)이 장기 우상향에 핵심”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마존 MS(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들이 연평균 두 자릿수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가도 올랐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아마존은 배당에 인색하기로 유명하지만, 번 돈의 대다수를 재투자하면서 빠르게 매출액을 늘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문제는 국내 오너일가가 지배하는 대기업 중 상당수가 이 같은 고속 성장을 위한 투자를 등한시하는 데에 있습니다.
삼성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유명 대기업 그룹들이 신사업 투자에 인색합니다. 한화그룹이 공격적으로 투자해 방산 분야로 신사업을 일군 것 이외에 대다수 그룹은 기존 사업을 그대로 영위 중입니다. SK그룹은 최근 몇 년 새 공격적으로 투자받으며 배터리 등 신사업을 확장하다가 최근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한 국내 IB 업계 대표는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게 오너기업의 장점이었는데, 재벌 3·4세로 승계되는 과정에서 헝그리 정신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재벌3·4세 체제로 접어든 한국 그룹에게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몇 가지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첫째, 전문 경영인을 지금보다 더욱 대우해줘야 합니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애플을 1등 기업으로 만든 팀 쿡 애플 CEO의 재산은 약 2조~3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팀 쿡 CEO의 연봉은 2016년 이후 줄곧 300만 달러(우리 돈 약 40억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조 단위 재산을 형성하게 된 이유는 스톡옵션 덕분입니다. 주가가 오른 만큼 팀 쿡 CEO의 재산도 늘어나는 것이죠.
그룹사 임원에게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을 지급하자는 의견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렇게 되면 임원들은 주식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더욱 더 주가부양에 대한 의지가 강해집니다. 몇 년 뒤에 주가를 기반으로 RSU를 제공할 경우, 단기 성과에만 치중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최 교수는 “최근 일본 밸류업 사례를 봐도 일본 당국도 상장사 임원에게 RSU를 지급하는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투자란 때론 리스크가 있기 마련입니다. 해당 리스크에는 투자 실패에 따른 손실도 있지만, 신산업 확대에 따른 기존 사회 구성원들의 반발, 기업 평판 하락 등 여러 리스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를 조율하기 위한 정부 회의체가 이전엔 있었습니다. 바로 서별관회의입니다.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시작된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경제수석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그리고 한국은행 총재와 금융감독원장 등이 모이는 비공개 경제금융점검회의를 말합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했고, 경제사에 획을 그었던 여러 굵직한 결정이 서별관 회의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김대중 정부(하이닉스반도체와 제일은행, 대우차 매각 문제), 노무현 정부(한미 FTA, 부동산 LTV·DTI 규제), 박근혜 정부(한진해운과 대우조선 등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방안)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MB정부 때는 서별관회의를 정례화시켰고 매주 화요일마다 모여서 ‘도시락 회의’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밀실회의·관치회의 등의 비판이 이뤄졌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인 2018년 서별관회의는 공식 폐지됐습니다.
IB 업계 한 대표는 “서별관회의 폐지 이후 이렇다 할 굵직한 기업 구조조정 건이 없어졌다”라고 회고합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차 침체의 길로 가고 있는 와중에도, 1997년 IMF 혹은 2008년 금융위기 때만큼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구심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삼성그룹이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미전실(미래전략실)을 폐지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 서별관회의서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을 지원한 게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가 너무 ‘원리원칙’ ‘법대로 하자’에 매몰된 나머지, 굵직한 의사결정을 뒤로 미루는데 익숙해져있는거 아닌가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밀실·야합이라고 비판한 세력들이 서별관회의 폐지 이후에 어떠한 뚜렷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엇이 더 옳은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지금 한국경제에 필요한 건 명확한 리더십과 구심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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