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실패하고자” 남한으로…예견된 좌절의 서글픔
탈주
탈북 감행한 북한 병사와 추격자
미래 그릴 수 없는 계급사회 북한
한번의 실패도 용납 안 되는 남한
‘탈주 불가능한’ 우리 시대 그려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감독이 있다. 최근 그런 두 감독의 영화가 개봉했다. 문병곤의 ‘밤낚시’와 이종필의 ‘탈주’다.
2013년, 단편 ‘세이프’ 덕분에 문병곤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세이프’는 불법 게임장 환전소에서 손님들의 환전금을 빼돌리는 한 청년(이민지)의 어느 오후를 따라간다. 그는 시종일관 환전소라는 미래가 박탈된 폐쇄 공간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좁은 공간으로 내몰려 들어간다. 영화 속 공간은 외부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지하주차장의 작은 환전소에 국한되어 있고, 영화는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박탈된 채로 주인공이 작은 금고에 갇히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청년의 절망적인 절규로 가득 차 있다.
설국열차, 세이프, 부산행, 기생충…
이 작품은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구 없이 궁지에 몰리는 어두운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단편영화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금고’(safe)는 현대인이 갇혀 있는 출구 없는 신용 자본주의에 대한 은유로 읽혔다. 나는 같은 해 개봉한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함께 ‘세이프’를 “폐소공포증 시대의 영화”라고 해석했다. ‘설국열차’ 역시 외부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승객들을 광기로 몰아넣는 기차를 자본주의의 은유로 사용했고, 결국은 그 체제의 내파와 전복을 꿈꾸고자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영화에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아 질식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자본주의가 사람을 살린다기보다는 갉아먹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와중에 자본주의 이외의 정치경제체제를 상상할 수 있는 에너지가 바닥나고 대안적 비전은 사라져버린 시대. 그 좌절감이 폐소공포증으로 드러났던 셈이다. 이는 연상호의 ‘부산행’(2016)을 필두로 각종 ‘한국형 파국 서사’의 등장과도 만났고, 봉준호는 ‘기생충’(2019)에서 이 ‘벗어날 수 없음’의 감각을 한 부잣집의 지하실로 옮겨놓았다.
그러므로 신용 자본주의의 끝에서 부동산과 주식, 코인만이 ‘유일한 미래’로 이야기되는 2024년, 문병곤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궁금했다. 그는 어떤 영화로 돌아왔을까? 확실히 ‘밤낚시’는 흥미로운 단편이었다. 현대자동차 홍보 영상으로 ‘아이오닉5’의 전방, 후방, 측방, 실내 카메라로만 촬영됐다. 여기서 인간은 혼란에 빠진 미지의 생명체를 구조하는 구원자 로미오(손석구)의 얼굴로 등장한다. 현대자동차의 낙관적(이어야만 하는) 세계관이 영화를 지배하지만, 그 모든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이오닉5’이며, 그 모든 스펙터클이 왜곡된 시야각을 가진, 다섯대의 고정된 카메라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비관을 암시한다. 테크노유토피아의 외피 속에 숨겨진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문병곤의 ‘신작’ 아래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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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라고 지상낙원이겠냐?”
반면, 미칠 것 같은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오히려 이종필의 ‘탈주’였다. 제목과 달리 영화는 우리 시대의 탈주 불가능성을 강변한다. ‘탈주’는 상업적 목적 안에서 예상할 수 있는 해피엔딩을 향해 충직하게 달려간다. 그것이야말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이종필의 장점이다. 하지만 별수 없이 질문이 떠오른다. “그게 정말 해피엔딩인가요?”
영화는 북한 최전방 군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기다리고 있는 중사 규남(이제훈)이 밤마다 치밀하게 디엠제트(DMZ) 지뢰밭 지도를 작성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남한으로 탈주를 준비 중이다. 이 계획을 눈치챈 병사 동혁(홍사빈)이 규남의 지도를 훔쳐 먼저 탈주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규남과 동혁은 체포된다. 탈주병 조사 책임자인 보위부 소속 현상(구교환)은 규남을 탈주병을 체포한 노력 영웅으로 조작해 실적을 올리려 한다. 그러나 규남은 다시 한번 탈출을 감행하고, 현상은 귀신같은 촉과 괴물 같은 집요함으로 규남을 뒤쫓는다.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에서 1990년대 문화의 시대로 돌아가 여성 청년의 이야기를 펼쳤던 이종필은 이제 남성 청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휴전선 너머 북한 군부대로 향한다. 그곳에는 공산주의가 약속했던 평등하고 풍요로운 미래가 무색하게도 지독한 계급사회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미래를 그릴 수 없는 규남과 남으로 돈을 벌러 간 어머니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동혁, 그리고 자신의 동성애자 정체성을 부인해야 하는 고통 속에서 마음이 부서져버린 현상이 있다. 그 고통의 성격들을 보면 그들의 거주지가 북한이어야만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규남이 구사하는 능력치와 ‘클리어’해야 하는 스테이지의 성격을 군사화하기 위해 북한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북한이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뭐든지 시도할 수 있는 자유와 그리하여 욕망을 충족시킬 미래가 존재하는 또 다른 가상의 공간으로 남한이 부상한다. “그곳이라고 지상낙원이겠냐?”는 현상의 말에 규남은 “여기선 실패조차 할 수 없으니, 내 마음껏 실패하기 위해 (남한으로) 가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울음이 터졌다. 실패에의 옹호가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아니다. 규남이 필사적으로 닿으려는 그곳에서 “마음껏 실패”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끝내 배신당하리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남한은 모든 성패란 숫자로 결정되고, 한번의 실패는 곧 나락이라 말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무엇보다 ‘탈북자’에게 지독한 낙인이 찍혀 있는 이 땅에서 규남에게 실패하고 또 실패할 자유 따위가 주어질 리가. 규남은 외부가 없어 보였던 북한에서 “탈주”해 겨우 군사분계선에 세이프인(safe in)했지만, 그곳은 또 다른 외부 없는 “세이프”(금고의 세계)일 뿐이다.
‘탈주’에서 북한은 탈주를 꿈꾸는 청년들의 현실을 조건 짓는 배경으로 산화하고, 그 반대편에서 유토피아로 등장하는 남한 역시 ‘아무 곳도 아닌 장소’가 되어버렸다. 다만 영화의 끝, 규남이 꿈꿨던 ‘모험’이 ‘여행상품’으로만 구현될 수 있다는 설정만큼은 남한에 대한 리얼한 묘사였음을 부정하기 어렵겠다. 상품이 되지 않는 모험과 실패하고 또 실패할 수 있는 기회가 살아 있는 세계를 어떻게 꿈꿔야 할지, 아득해졌다.
영화평론가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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