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교육, 국고, 교부금…유보통합 ‘뭣이 중헌디?!’[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아이들 어릴 때 종종 받았던 질문이다. 나는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만 5세(한국 나이 7살)까지 어린이집에 보냈다. 다들 보육 분야 기자로서 특별한 이유나 신조가 있는 게 아닌가 지레짐작했지만 그런 대단한 건 전혀 없었고, 그저 그 어린이집의 교육 내용, 교사진, 우리 집과의 거리 등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 어린이집이지 교사진은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분들이었고, 특별활동으로 한글, 영어, 수학까지 배웠다. 그게 반드시 좋단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교사와 교육 모두 인근 유치원과 다를 게 없었다.
흔히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 위주’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데, 만 3~5세(한국 나이 5~7살) 교육과정은 누리과정으로 표준화된 지 오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모두 기본교육 내용엔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교사 역시 요새는 어린이집도 유아교육과 졸업자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활동 종류는 운영자의 재량이다. 지인의 아이가 다니던 기관은 유치원이었는데, 원장님이 돌봄과 놀이 위주 교육을 중시해 관련 특별활동이 많았다. 활동만 비교해 보면 우리 아이들 어린이집보다 더 어린이집 같은 느낌이었다.
● ‘남북통일보다 어려워…’ 재원 두고 국고 vs 교부금 벌써 논쟁
이처럼 현장에선 이미 어린이집 유아반과 유치원의 질적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런데 여전히 형식적으로는 전혀 다른 기관이라 지원금액, 그 금액의 출처, 관할법, 구성원의 법적 지위 등이 다 다르다. 어느 기관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한 지붕 두 제도’라는 이상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 여러 차례 시도됐다. 하지만 번번이 구체적인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산되길 반복했다. 오죽하면 ‘남북통일보다 어려운 유보통합’이란 말까지 나왔다. 이번 정부도 지난해 추진단을 꾸리고 유아 기관 관리를 교육부로 일원화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까진 야심 차게 통과시켰는데, 지난달 법 시행에 맞춰 나온 계획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가장 큰 숙제인 재원, 인력 통합의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 이제부터 만들어나가면 된다. 다만 할 일은 많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예산은 그 돈주머니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각자 안에서도 국가, 지자체, 교육청 등 출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앞으로 통합되면 어디가 어떤 예산을 맡을지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더 골치 아픈 건 유보통합에 따라 향후 3년간 연간 2조~4조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돈을 어디서 끌어올지도 함께 정해야 한다. 벌써 국고 지원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사용 등을 두고 논쟁이 빚어지고 있다.
● 교원 자격도 입장차 커…합의 어떻게 이끌어내느냐 관건
교원 자격 통일도 잘 알려졌다시피 어려운 문제다. 사실 미래 교원의 자격을 어떤 기준에 맞출지, 기존 교원들의 간격은 어떻게 좁힐지 계획을 짜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전문가들이 많은 분석과 시나리오를 내놨다.
어떻게 합의를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사안마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예를 들어 만 0~2세 영아 교원 자격을 만 3~5세와 통합하는 안은 유치원 교사들의 반발이 크다. 반대로 분리하는 건 만 0~2세 교사를 영아 전담으로 전락시킨다고 하여 보육교사 측에서 반발하고 있다. 이런 큰 틀부터 양측 최저학력기준, 이수 과정, 기존 보육교사의 보수교육까지 세부적으로 조율할 사안이 매우 많다.
인력뿐 아니라 재원도 결국 이해 당사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합의하게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강한 추진력이 절실히 필요한 지점이다. 이제 유보통합이 온전히 한 부처의 일로 넘어온 만큼 교육부가 전문가, 이해당사자들과 함께 신속하게 팀을 꾸리고, 안을 짜고, 공론화하고, 각 당사자를 만나 설득해야 한다.
● 통합에 매몰되면 안돼…장애아 포함 모든 영유아 ‘동등한’ 돌봄 누려야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영유아기관의 통합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라는 점이다. 외형적 합체에 매몰되면 자칫 제일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지난달 27일에 발표된 ‘유보통합 실행계획 시안’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내 눈에는 띈 내용이 있다. 5대 과제 중 마지막 과제의 끄트머리 한 단락으로 들어간 ‘특수교육 대상 영유아 통합지원’ 안이다. 장애 영유아들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 통합될 유아기관 내 특수학급, 특수교육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간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사는 영유아라면 누구든 어디서든 동등한 혜택을 누리게끔 한다는 게 유보통합의 취지다. 장애 영유아도 함께 돌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이 과제만큼 그 취지에 부합한 게 또 있을까. 장애 아동 부모인 지인이 있어 돌봄 기관을 찾는 데 애먹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무척 마음이 아팠고, 그런 현실을 잘 몰랐던 기자로서 반성했었다. 특수교육 지원은 그 자체로 매우 의미 있는 정책이다.
정서·심리 지원 강화도 환영할 만한 내용이다. 앞으로 심리 전문가나 기관과 협약을 맺어 영유아는 물론 교사까지 정서심리 진료와 검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라 한다. 요새 마음이 아픈 아이, 교사 소식이 적잖이 들리는 만큼 꼭 필요한 일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유보통합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유보통합이 시행되면) 저출산에 대한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다만 영화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유치원, 어린이집 통합도 영유아 돌봄을 개선하자고 하는 것이다. 장애 아동, 정서심리 지원, 그리고 돌봄 시간 연장, 교원 인력 확충, 각종 시설 교체 등 이번 대책이 담은 다양한 ‘유보개선’책도 잘 시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저출산 해소에 기여할 것이다. 유보통합 과정에서도 그 정당성을 놓치지 않고 잡고 가야만 구성원들과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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