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어" 엄마에게 폭언한 딸에게 먼저 해줘야 할 일
아이가 부모에게 막말 쏟아내면
부모라도 상처받고 화 날 게 분명
하지만 감정적으로 받아선 안 돼
“뭣이 중헌디” 생각하는 게 중요
자녀의 이야기 들어주는 게 순리
"재수 없어…." 금지옥엽처럼 키워온 아이가 부모에게 막말을 쏟아낸다면 어떨까. 아무리 부모라도 상처받고, 화가 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부모마저 감정적으로 맞받아쳐선 안 된다. 원래 폭력적인 아이가 아니라면 스스로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그럴 때일수록 심호흡을 하고,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순리다.
얼마 전 아침 필자가 지하철에서 겪은 일이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 경로석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그때 어르신 한 분이 서 있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청소년에게 다가가 말했다.
"일어나. 여긴 노인들이 앉는 자리야. 자리가 있어도 비워놔야지 앉으면 안 돼." 그러자 청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근데 왜 반말이지?" 이후 노인과 청소년의 언쟁은 10여분 이어졌다. 이들의 언쟁을 보고 지하철 안의 누군가는 청소년의 무례함을, 누군가는 어르신의 높은 언성을, 누군가는 두 사람 모두를 비난했을지 모른다.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이런 상황을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청소년들이 유독 '반말'에 민감한 이유를 생각한다. 물론 그 청소년이 어르신의 반말에 기분이 상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다른 기분 나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큰 소리로 지적을 당해서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반말은 고민해볼 지점이 있다.
청소년들이 낯선 이에게 반말을 듣는 것을 싫어하는 건 청소년기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청소년들은 '독립' 욕구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독립하기를 갈망한다는 거다.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표현에서도 이런 욕구가 드러난다. "무슨 상관인데?" "내가 알아서 할게" "그걸 다 말해야 해?"…. 부모나 어른들이 자신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말을 유독 싫어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직 미숙한 게 사실이지만 자신을 어리게 보는 것을 거부한다는 거다.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들의 이런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누군가의 간섭과 개입을 싫어한다. 스스로 할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믿고 기다려 주기를 바란다.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지 않지만 여러번 물어보는 것도 싫어한다.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번번이 자녀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필자가 얼마 전 상담에서 만난 어머니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중학교 3학년 딸을 둔 어머니였다. 아침잠이 많은 딸아이를 깨우느라 수년째 승강이를 하고 있다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상담 오기 전날에도 아이가 잠이 안 온다며 새벽까지 동영상을 보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고 있었어요. 결국 다음날 늦게 일어났죠. 지각을 할 게 뻔한데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느릿느릿 준비를 하더라고요. 화가 났지만 일단 참았어요. 결국 차를 태워 데려다주는데 애가 타는 저와 달리 딸아이는 태연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어요. '중학교 3학년이면 알아서 해야 하지 않아? 엄마도 힘들어. 아침마다 이렇게 데려다줄 수는 없어.'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아세요? 문을 쾅 닫으면서 '재수 없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고 토로했다. 사춘기가 되면 반항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모에게 '재수 없다'는 말까지 쏟아내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이렇게 막나가는 아이를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요. 예전엔 일찍 자라고 잔소리를 하면 투덜대면서도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했었는데…. 아이의 행동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아직도 진정이 되질 않아요."
물론 어머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딸아이가 걱정스럽고 한편으론 선을 넘는 아이의 모습에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부모가 더 현명해져야 한다. 아이의 행동이나 언행에 충격을 받았다면 먼저 부모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가져야 한다.
만약 부모도 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묵혀뒀던 이야기까지 쏟아내 갈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욱하는 마음에 자녀가 지금 잘못한 일뿐만 아니라 과거의 잘못들까지 줄줄이 소환한다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자녀들로선 "이러니까 엄마랑 대화를 안 하는 거야"라고 라고 맞받아칠 게 분명하다.
필자가 부모들에게 한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건 과도한 걱정을 하지는 말라는 거다. 설사 자녀가 "재수없다"며 폭력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더라도, 본래 폭력성이 있던 아이가 아니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아이가 스스로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녀를 믿고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아이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네가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게 처음이라서 속상하고 놀랐어. 그래도 엄마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요즘 힘든 일이 있니?" 아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해의 문이 열리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다. 영화 '곡성'엔 "뭣이 중헌디"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청소년기 아이들을 대할 땐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보길 권한다.
유혜진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 더스쿠프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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