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군 백군 머리띠는 언제 사라졌을까[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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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 직진 신호를 기다리는데 앞에 서 있는 버스의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진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머리띠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청군 백군을 구별하는 머리띠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집의 머리 좋은 아들 딸들이 책상 앞에 앉아 '합격'을 써넣은 머리띠를 두르고 밤을 새우던 이미지가 신문과 방송에서 반복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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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 직진 신호를 기다리는데 앞에 서 있는 버스의 손잡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손잡이의 색깔이 초록 파랑 빨강 노랑이 섞여 있습니다. 초록색 일색이었던 옛날 버스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바뀌었지 하고 생각해봅니다. 하기야 화려한 칼라 시대에 승객의 감수성이 달라지면 버스 내부의 인테리어와 서비스가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겠죠? 이번 주 백년사진이 고른 사진은 1924년 6월 30일자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사진입니다. 따로 경기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는 보이지 않고 사진과 간단한 설명만 인쇄되어 있습니다.
●치마를 입고 배구 경기에 열중하는 여학생들
네트를 사이에 두고 여학생들이 배구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예닐곱 명의 심판이 양복을 입은 채 높은 곳과 지표면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텐트가 여러 동 설치되어 있습니다. 치러지는 경기의 숫자도 많고 참가자와 응원단도 많은 대회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 속 배구에 출전한 선수들의 숫자가 좀 많아 보이시죠? 지금의 6인제 배구와 달리 양측 선수가 각각 10명이 넘어 보입니다. 원래 9인제 배구도 있었다곤 하는데 이 사진을 보면 9인제보다도 더 많은 선수들이 보입니다. 운동복이 아닌 치마를 입고 경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치마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허리띠로 단단히 고정시킨 모습에서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긴장감이 느껴지지도 합니다. 양팀 뒤로 응원단인지 후보 선수인지 알 수 없는 여학생들이 머리띠를 두른 채 경기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청군 백군 머리띠는 언제 사라졌을까
사진에서 가장 눈에 띈 건 머리띠였습니다. 흑백사진이라 색깔은 보이지 않지만 아마 청색과 백색으로 나누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청백색 머리띠를 하고 팀을 구별하는지 궁금합니다. 제 기억으로는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면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 머리띠를 하고 계주를 하거나 줄다리기를 하거나 공굴리기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청군 백군을 구별하는 머리띠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네이버로 검색을 해보니 대신에 조끼나 모자 등으로 청군과 백군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어딘가 에서는 학생들이 머리띠를 하고 운동회에 참여하는 학교도 있겠지만 대체로 ‘갬성’을 강조하는 지금 세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템입니다. 머리띠가 사라지고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팀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생들이 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머리띠는 진지하거나 절박함을 상징했던 아이콘 입니다. 공부만이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아니 실제로 그랬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의 머리 좋은 아들 딸들이 책상 앞에 앉아 ‘합격’을 써넣은 머리띠를 두르고 밤을 새우던 이미지가 신문과 방송에서 반복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또 1980년대 후반 민주화의 시작 시점에 생존권을 요구하며 사회 각층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도 머리띠는 꼭 등장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감수성도 변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백년 전 머리띠를 두르고 배구 경기에 열중하고 있는 여학생의 사진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는 청백팀 머리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에서 어떤 점이 보이셨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누구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족과 풍경을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사진이 흔해진 시대에, 우리 사진의 원형을 찾아가 봅니다. 사진기자가 100년 전 신문에 실렸던 흑백사진을 매주 한 장씩 골라 소개하는데 여기에 독자 여러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사진의 맥락이 더 분명해질 거 같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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