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지 탈 나는지…풀 뜯어먹기는 도전의 역사 [ESC]
동물의 식물 먹기
절지동물이 풀 먹기 시작한 뒤
수많은 시행착오 끝 독초 구별
식물은 먹히지 않으려 ‘공진화’
7월이 가기 전에 나는 새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주인집 할머니의 아들 부부가 해외에서 돌아오면서 방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들어갈 때부터 예정되었던 것이라 미리 다음 집을 수소문했다. 다행히 봉사활동을 하는 농장에서 친해진 한 청년이 집을 공유해 줄 수 있다고 해 그곳으로 이사했다.
한동안 새집을 구하지 못해 초조했고, 집을 구하고 나니 적응할 생각에 또 예민했었다. 그러나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금방 편안해졌다. 또래인 새 집주인과 얘기가 잘 통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농사를 열심히 짓는 그 청년이 농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학 선생님이었다. 그는 미국의 서쪽 끝 캘리포니아 출신이었고 이곳 동쪽 끝 메릴랜드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메릴랜드에 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그 집과 땅이 그의 어머니에게 상속되었는데 그의 가족들은 캘리포니아에 그대로 살고 그만 이곳으로 왔다. 그는 메릴랜드에 나보다 반년 정도 빨리 왔고 나처럼 새롭게 정착하는 중이었다.
약인지 독인지, 처음엔 몰라
이사한 집은 메릴랜드의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고즈넉한 곳이다. 전에 살던 집은 쇼핑몰과 마트가 가까이 있는 마을 안에 있었는데 광활한 풀밭과 숲을 소유한 이 집은 외따로 떨어져 있다. 밤이면 주변에 불빛 하나 없다. 대신 숲속이 반딧불로 가득해 거대한 크리스마스 행렬 같다. 그의 할머니는 말을 사육하고 교배도 시켜 뛰어난 경주마가 될 아기 말을 탄생시키는 일을 하셨다. 오래된 지역 신문에 찍힌 할머니의 사진과 기사를 보니 꽤 유명한 말 전문가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집 곳곳엔 말과 관련된 물건이 많고 창고 중 하나는 마구간이었다.
그는 할머니의 추억이 가득한 그곳을 말을 위한 공간으로 계속 가꾸고자 했다. 그는 정착하며 고친 것, 새로 만든 것, 계획하고 있는 것에 대해 희망찬 얘기를 많이 했다. 우리는 말이 뛰어놀 광활한 풀밭을 산책하며 그곳에 자라는 식물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다. 풀밭에는 초식동물이 즐겨 먹는 볏과와 콩과 식물 외에 간간이 가시나 독성이 있는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밀크위드, 돼지풀, 엉겅퀴, 독성이 있는 가짓과 식물 등이다.
그는 말이 그런 잡초를 먹지 않도록 제거하고 잘린 풀을 모아 건초를 만들면 사료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초식동물은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아닌 식물을 알긴 하지만 실수로 먹기도 하고 큰 탈이 나기도 한단다.
우리는 흔히 동물이 본능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아닌 식물을 구별할 줄 아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발효된 열매를 먹고 취한 동물을 보면 멋모르고 먹는 동물도 분명 있는 모양이다. 더 심각하게는 독풀을 먹고 간 손상, 불임, 낙태 등을 겪거나 운이 나쁠 땐 죽기도 한다. 본능만으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구별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동물인 우리 인간도 독초와 먹는 풀을 본능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특히 온갖 종류의 풀을 먹는 나물의 민족, 한국인들이 모두 독초와 나물을 잘 구별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흔히 학습을 통해 식물을 구별하는 법을 전해 받는다. 다른 동물들도 부모를 통해 배운다. 그러면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에게 배울 수 없었을 때, 그 시작은 어떠했을까? 지금도 독풀을 먹고 탈이 나는 중독 사고가 꾸준히 있듯 누군가의 도전으로, 또는 실수로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지식은 전해졌다. 시행착오와 학습, 나아가 자연선택과 진화를 통해 하나씩 축적된 ‘식물 먹기’의 기술은 정말 긴 역사를 가졌고 지금도 진행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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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일도 작은 시작에서
땅 위에 사는 식물은 언제부터 먹혔을까? 식물이 진화를 통해 땅 위로 올라온 지 2천만년이 되지 않았을 때 절지동물에게 처음 먹혔다고 추정된다. 그때부터 식물은 먹히지 않는 법을 궁리하고 동물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찾고 잘 먹을 궁리를 했다.
식물은 가시나 독을 만들거나 향과 모양, 색으로 먹지 말라는 경고를 해왔고, 동물은 경험과 학습을 하며 식물을 구별하고 식물을 잘 소화할 수 있게 신체 구조를 변화시켜왔다. 공진화(여러 개의 종이 서로 영향을 주며 진화하는 일)를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게 초식동물과 식물의 관계다. 상상 이상의 기상천외한 방법에 놀라운 게 많은데 그 모든 과정에 도전이 있었고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고 경이롭다.
나는 전에 살던 집에 들어갈 때 처음 미국인과 사는 것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주인집 할머니와는 처음에 무척 어색해서 출퇴근 때 인사만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1년을 보내고 그 집을 나올 때 우리는 헤어지는 걸 섭섭해 했다. 내가 새집으로 이사 가기 전 걱정하고 있을 때 할머니는 새로운 환경으로 간다는 건 인생에서 좋은 경험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배운 게 정말 많았다. 인생의 연륜을 배운 것도 있지만 미국 사회에 대해, 소소하게는 미국인의 생활에 대해서 말이다. 예를 들면 잔디 깎는 걸 할머니에게 처음 배웠는데 내가 유모차처럼 생긴 잔디 깎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기뻐하며 동영상을 찍어주셨다.
작은 잔디마당이 있던 그곳과 달리 새집은 광활한 풀밭을 깎는 다양한 잔디 깎기가 있다. 트랙터에 연결하는 건 무시무시한 크기다. 나는 어제 청년에게 자동차처럼 생긴 잔디 깎기 작동법을 배웠다. 어느덧 걱정은 모두 사라지고 즐겁고 신기한 일들로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다. 청년은 메릴랜드로 이사 와 너무나 다른 문화를 가진 한국에서 온 나와 사는 경험을, 내가 살았던 집의 할머니는 처음으로 아들 내외, 초등학생 손자와 사는 경험을 하고 계신다.
동물이 식물을 먹는 건 지구 역사에서 거대하고 복잡한 과정이지만 그것도 작은 시작들로 이루어졌다. 생각해 보면 거대해 보이는 모든 일이 식물을 관찰하거나 냄새를 맡는 아주 단순하고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볼 만한 일이다.
글·사진 신혜우 식물분류학자
미국 스미스소니언에서 식물을 연구하고 있다. ‘식물학자의 노트‘, ‘이웃집 식물상담소’를 쓰고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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