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m 위의 손잡이와 여전한 흙제방 “오송 참사 그 후 1년, 바뀐 게 없다”
(시사저널=충북 청주=정윤경 기자)
"1년 동안 제대로 바뀐 게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해 여름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송 참사' 현장은 1년이 다 돼가도록 시민들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는 당초 6월30일 재개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유족 측이 완강히 반대했다. 오송 참사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대로 지하차도를 개방하면 통행시간 '20분'은 단축될지 몰라도, 시민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유족들은 경고한다.
시사저널은 7월2일 궁평2지하차도를 참사 발생 1년 만에 다시 찾았다. 사고 당일 747번 급행버스를 몰다가 참변을 당한 버스기사 고(故) 이수영씨(사망 당시 59세)의 아들 중훈씨(34)가 취재진과 동행했다. 고인은 버스가 물에 잠기자 승객들을 내보낸 후 남은 사람의 탈출을 돕다가 숨졌다. 이날은 그의 기일이기도 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현장으로 이중훈씨가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오직 하나다. "아직도 지하차도는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려야죠.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주지 않으니까요."
궁평2지하차도로 들어가는 길목은 통행이 금지돼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진입하자 전체 길이 685m의 왕복 4차로 지하차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2~3분 만에 6만 톤의 물이 가득 찼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깨끗하게 정비돼 있었다.
문제는 터널 구간에 들어서자 보였다. 사고 발생 시 잡을 수 있는 대피용 손잡이(핸드레일)는 지면으로부터 2m 높은 위치에 달려 있었다. 발판을 딛고 올라가야 잡을 수 있는 구조였다. 기자가 침수 상황을 가정하고 직접 대피해 봤다. 손잡이를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신장 163cm인 기자가 40cm 간격으로 된 계단 세 칸을 딛고 발판에 올라가서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 평균 키는 122cm 정도다. 초1 여학생이 대피하려면 자신의 키 높이 발판에 올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손잡이마저 재개통 예정일 열흘 전까지 한쪽 면에만 설치돼 있었다.
힘들게 잡아도 불안한 손잡이…"실효성 無"
가까스로 손잡이를 붙잡았다고 해도 두 번째 문제가 있었다. 발판의 폭이 좁아 가만히 서있는 것도 힘들었다. 탈출하기 위해 옆으로 섰을 때 230mm짜리 운동화가 난간에 꽉 찰 정도였다. 세 발자국만 움직여도 금방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발판의 표면이 미끄러운 점도 위험요소였다. 흙탕물이 밀려들어 시야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발판이 안전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중훈씨가 꼬집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물살이 엄청 세게 몰아칩니다. 성인 남성인 저도 버티기 힘들 정도예요. 운 좋게 발판을 밟아도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바로 추락하는 수준입니다. 실효성이 없어요."
터널 안에 있는 '인명구조 장비함'도 재난 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장비를 꺼낼 때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구조함을 열기 위해 우선 옆에 있는 걸쇠 세 개를 풀어야 했다. 장비함엔 구명조끼, 튜브, 로프 등이 들어있었는데 로프는 플라스틱으로 된 매듭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매듭을 손으로 푸는 방법 등은 설명돼 있지 않았다.
이 같은 사고 대비책은 이웃 지자체인 전북도와 확연히 비교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북도는 행정안전부로부터 특별교부세 8억원을 확보해 전주 시내 3곳에 손잡이 등 인명 탈출 시설을 설치했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데다 인근에 전주천이 흐르고 있어 대규모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전주 완산구 서신지하차도에는 총 6개의 손잡이를 벽면에 부착했다. 키가 작은 어린이나 노약자도 쉽게 손잡이를 잡고 탈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지하터널 외부에는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계단도 놓았다.
이를 두고 충북도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진희 충북도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전북도와 충북도가 설치한 손잡이를 비교했다. 그러면서 "타 지자체는 오송 참사를 통해 배워 예방책 마련에 철두철미한데 충북도는 참사의 흔적을 지울 생각에만 몰두해 있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최선책은 인근 미호강이 범람하지 않도록 제방을 튼튼하게 축조하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오송 참사는 도로 확장을 위해 기존 제방을 허물고 새로 쌓은 임시제방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참사 책임소재 규명을 맡은 1심 재판부도 부실한 임시제방이 참사를 부른 근본 원인이라고 봤다. 충북도는 참사 이후 기존 임시제방 자리를 그대로 두고 1.68km 길이의 제방을 하나 더 만들어 이중으로 대비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자는 충북도가 새로 짓고 있는 해당 제방에 유족과 함께 가봤다. 궁평 지하차도 인근에 있는 이 제방은 장마철이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공사장 근처 흙을 퍼올리던 포클레인은 비가 와 잠시 일을 중단한 상태였다. 제방 곳곳에는 빗물에 파인 흔적이 역력했다. 손가락 두 마디가 전부 들어갈 정도였다. 둑 하층부에는 빗물이 흘러 들어와 버티지 못한 구덩이가 발바닥 모양으로 숭숭 뚫려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 제방은 오송 참사 때와 같은 '흙깎기' 방식으로 건설 중이었다. "새 제방도 안전하지 않다"고 유족들이 걱정하는 가장 큰 이유다. 흙깎기는 공사 현장 바깥에서 토사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공사 현장의 흙을 긁어모아 활용하는 방식이다.
시사저널은 오송 참사 당시 임시제방 공사를 맡은 금호건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저렴한 축조 방식인 흙깎기 방식을 선택해 사고를 야기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2023년 12월22일자 "1000만원 아끼려던 금호건설, '오송 참사' 초래했다" 기사 참조). 당시 본지가 입수한 실정보고서에는 외부에서 순성토를 운반하는 방식보다 공사 현장 주변의 흙으로만 쌓으면 1000만원을 아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금호건설 현장사무소도 흙깎기의 장점에 대해 '공사비 최소화' '공사기간 단축' 등을 언급했다.
전문가도 흙깎기 방식이 외부 순성토를 이용하는 방식보다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백경오 한경국립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하천의 흙을 이용해 제방을 쌓으면 사이즈가 비슷한 균일토가 유입되는데 이렇게 되면 물의 침투성 측면에서 불리하다"며 "크고 작은 흙이 섞여야 간격이 메워져 물 샐 틈이 줄어드는데, 흙의 크기가 모두 같다면 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흙으로 막을 건가"
신설 제방 축조를 담당한 환경부 산하 금강유역환경청은 "검수 과정을 거친 흙으로 만들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청은 올 하반기 완공이 예상되는 제방 포장 공사까지 끝나면 작년과 같은 피해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천공사과 관계자는 "제방을 보호하는 공정이 추가로 들어가기 전이라 경사면에 물길이 보일 수 있지만 발견 즉시 보강 직업을 하고 있다"면서 "기존 제방도 견고하게 보강됐기 때문에 지난해 수준 이상의 비가 내려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의 입장은 달랐다. 비가 내려 제방이 무너지면 그 자리를 흙으로 메우는 '땜질식 처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구 오송지하차도 참사 유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비가 조금밖에 오지 않았는데도 흙이 쓸려간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런 조짐을 보이면 어떡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중훈씨도 "전에 왔을 때는 한 뼘 깊이의 구덩이가 큼지막하게 파여 있었는데 다시 와보니 메워진 것 같다"며 "근본적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그때그때 흙으로 막아버리기만 할 건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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