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지역주간지 '남해시대' 30대 편집국장의 오늘
[지역언론인 인터뷰] 전병권 남해시대 편집국장 "이익이 중요한 시대, 젊은 기자들 지역 신문에 올 이유 많지 않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경상남도 남해군을 취재하는 풀뿌리 지역주간지 '남해시대'의 전병권 기자는 펜기자 3명 중 가장 젊다. 2017년 초 남해시대에 입사했고 2021년 7월 이후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와 지역소멸, 사회초년생이 부족한 인구 4만391명(지난 4월 기준)의 남해에서 만 35세 편집국장은 귀하고, 외롭다.
전 국장을 비롯해 20~30대 풀뿌리 지역신문 기자들은 또래 동료가 부족하다. 사내뿐 아니라 지역 내에서 2030 기자가 본인 하나뿐인 경우가 많다. 도 단위 지역일간지에서 온 주재기자들은 취재현장에 잘 보이지 않거나 보이더라도 5060세대가 대다수다. 10년 넘게, 때로는 청춘을 바쳐 지역신문을 지탱해온 선배 세대의 삶을 외면하기도 어렵지만 따라가기도 부담스럽다. 30대의 한 풀뿌리 지역신문 편집국장은 “후배기자들이 3~5년차 정도 되면 '선배처럼 살 수 없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데 제대로 잡지도 못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활발하게 취재하던 또 다른 지역신문의 30대 부국장 퇴사소식이 전해졌다.
전병권 국장을 지난달 28일 경남 남해에서 만났다. 그는 어쩌다 지역신문 기자가 됐고 국장까지 맡았을까. 남해시대에서 무슨 일을 해왔고, 어떤 동력으로 버티고 있을까. 지역신문사마다 들이닥친 세대교체 압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등 공적지원 체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들어봤다. 그에게 지역신문의 희망을 찾으려 했지만 그는 미래를 말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남해시대를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이정원 남해시대 대표, 한중봉 전 남해시대 편집국장. 두 분은 창간 34년을 맞은 남해신문에서도 같이 일했다. 남해는 섬 지역이고 창원(도청소재지)에서도 멀어 지역신문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이 높았다.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눈독을 들였다. 합리적인 분들이 남해신문에서 나와 2006년 4월17일 남해시대를 창간했다.”
-남해에 정착하고 남해시대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부산과 남해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음악을 하려고 서울에 가서 2년 정도 있다가 결과적으로 남해로 다시 왔다. 집세가 비싸 아르바이트로 버티기 어려웠다. 남해 집에서 축사 일을 좀 돕고 있었다. 제 전공이 심리철학인데 그걸 주변에서 알고 '글 좀 쓸 줄 알면 남해시대 기자 뽑는데 넣어보라'고 권유했고, 말랑말랑한 글이 아니라면 쓸 수 있겠다 싶어서 지원했다.”
-남해시대에서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20년 지역신문 컨퍼런스(지역신문발전위원회 주최)에서 '남해시대, 작은학교살리기 중심에 서다'란 기획기사로 대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을 때다. 보통 각 읍면에 하나의 학교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시행하는데 당시에는 고현초·도마초 두 학교를 모두 살리고자 (남해시대 뿐 아니라) 많은 분과 두 학교 교장 선생님이 애써주셨고 두 학교 모두 살렸다.”
-남해의 지역신문 역사가 30년이 넘었지만 지역신문 컨퍼런스 수상은 이때가 처음이다.
“한국기자협회 등에 풀뿌리 지역신문은 소속이 안 돼 있다. 지역신문 기자들이 월급도 적고, 제대로 취재하면 욕도 많이 먹지 않나. 이달의 기자상이나 사진기사상 등이 없으니 지역신문 기자로서는 지역신문 컨퍼런스 말고는 사기진작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 그래서 2019년 '제10회 건설근로자의 땀과 보람, 그 행복한 동행'이란 사진공모전에도 처음으로 도전해봤는데 건설근로자 부문에서 상(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았다. 누가 기회를 찾아주지도 않으니 내가 무언가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도전했다.”
-젊은 연차에 편집국장이 됐다.
“처음에 입사할 때는 40대 중반 정도에 국장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일찍 찾아왔다. 선배들이 퇴사해 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잘하고는 싶은데 부담이 크다. 신문사 이름을 달고 방송 출연이든 뭐든 할 수 있는 걸 다해보려고 한다.”
남해시대는 지난 2022년 3월부터 지난 4월까지 KBS경남 '뉴스7 풀뿌리언론K'에서 남해 소식을 알리는 일을 같이 했고, 서부경남 지역의 서경방송과도 협업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말부터는 경남MBC '엠키타카'에 전 국장이 출연해 남해소식을 전하고 있다. 첫 방송에선 남해축협 사태를 다뤘다. 통상 적금상품들이 연 5.2% 이자를 주는데 남해축협에서 10.25% 금리를 적용한 상품을 실수로 비대면 출시하자 사람이 몰려 예산이 바닥날 위험에 처했다. 별도로 전 조합장의 갑질이 드러나는 등의 여러 문제가 벌어졌는데 남해시대가 가장 자세하게 보도했다.
-지역신문 기자로서 어떤 고충이 있나?
“축협 기사 나가고 '그만 써라'라고 아버지뻘 되는 주민들 전화를 받았다. 지역일간지나 방송사에서도 같이 보도한 사안이다. 저널리즘은 지켜야 하고, 지역주민으로서 그냥 넘어가야 되나 고민되는 문제도 있다.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도 문제다. 신문산업 전반에 대한 얘기이기도 한데 귀농·귀촌한 분들을 만나보면 남해시대를 모르기도 하고, 귀농했다가 다시 지역을 떠나는 분들도 많다. 이제 곧 인구도 3만명대로 떨어질 것 같다.”
-경남에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와 어떻게 다른가?
“경남도에서 중앙지발위를 모티브로 만들어서 서로 비슷하다. 기획취재 지원, 장비대여, 인턴지원, 우편발송료지원, 지역신문 제안사업 등 형식이나 규모가 거의 비슷하다. 지역축제활성화 사업 정도만 경남지발위에 있다. 둘 중 하나만 하라고 하면 경남지발위를 하는 게 낫다. 비슷한 사업을 하는데 중앙지발위는 서류작업이 너무 까다롭다. 내가 신문사 대표라면 중앙지발위를 하는 게 낫겠지만.”
-중앙지발위가 더 돈을 많이 지원해줘서 그런가?
“따져보면 금액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그냥 우리가 경남지발위보다는 중앙지발위 우선지원대상사로 선정됐다는 타이틀이 더 좋아 보여서 그렇다. 지발위 우선지원대상사 선정되려면 언론윤리 교육하고 독자위원회 운영하고 지역사회공헌사업도 해야한다. 기사만 쓰는 게 아니라 문화·복지 관련 강의나 전시회 개최하는데 장소 대관, 섭외, 사람 모객까지 한다. 세명밖에 없는데 정말 갈아넣어야 요건을 맞춘다. 그러면서 지면 마감은 마감대로 해야 한다.”
-기자가 세명인데 24면이나 된다. 지면이 많아 보인다.
“평균 32면이었다가 줄어서 24면이다. 남해에 남해시대, 남해미래, 남해신문 세곳이 있다. 젊은 국장으로서 다른 두곳과 1면을 안 겹치게 만들고 싶다. 최소한 발굴기사는 1인당 1개 이상 만들자고도 제안한다. 남해시대 구독하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려면 옆집 신문들이 뭘 1면으로 낼지 고민해서 차별화하려고 한다.”
-얼마 전 지발위 20년을 맞아 미디어오늘이 지금의 공적지원 체계가 건강한 지역신문을 육성하겠다는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우린 올해 처음으로 기획취재 사업 신청서를 내지 못했다. 최소비용이 300만 원으로 기준을 올렸더라. 교통은 무조건 대중교통을 타야되는데 국내에서 열심히 기획취재하면 식비·숙박비·전문가 자문비 써도 하루에 30만 원 쓰기가 어렵다. 그러면 10일 넘게 기획취재에 투자해야 하는데 어떻게 10일 넘게 자리를 비울 수 있나. 지면 막기도 벅찬데. 그럼 해외로 가야 하는데 지역성을 살리기 위한 아이템으로 독일의 맥주축제(옥토버페스트)를 생각해봤다. 남해에는 독일마을이 있고 10월경 맥주축제를 여니까 독일에 직접 가보자는 취지다. 1년 전에는 예약을 해야하고 숙소가 너무 비싸서 수백만원이 들어간다. 그런 지원은 안 해준다. 올해 남해는 비가 많이 와서 단호박, 마늘 농사가 잘 안됐다. 가격은 오르는데 농민들 받는 돈은 적고 보상금도 제대로 안 나온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문제 신청하면 뻔한 아이템으로 여긴다. 위원들 중에는 '기후위기 핑계대고 해외에 놀러간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더라.”
-지원 기준을 금액으로 조절하는 건 문제다. 지발위 선정과 지원 과정이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나오겠다.
“제대로 지원하려면 심사하는 분들이 고생을 해야 한다. 지발위 전문위원들은 재계약을 해야하는 불안정한 지위고, 일반 위원들은 회의비가 적다고 들었다. 경남에 있는 위원들은 서울에 회의 한번 다녀오면 차비와 숙소비용 내고 남는 돈도 별로 없다. 지발위원들 처우라도 개선이 돼야 편하게 비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발위 비판하기도 어렵다.”
-남해시대에도 20대 기자가 들어오고 세대교체를 준비해야 할 텐데, 가능할까?
“어렵다. '남해미래'에 젊은 기자 둘이 최근에 들어왔는데 그 두 분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다. 그 둘이 오기 전에는 내가 마지막이겠거니 생각했다. 남해신문도 혼자서 만든다. 요즘같이 이익이 중요한 시대에 젊은 기자가 올 이유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왜 지역신문 기자를 하나?
“현실적인 얘기를 하면 남해에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내 이름 걸고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대전, 서울, 부산에서 다 살아봤지만 임금이 많을지 몰라도 고정비용이 또 많다. 엄청난 사명감으로 한다기보다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이 좋다. 처음 교육복지 분야를 취재했는데 조금 힘든 사람이 있으면 같이 해결해볼 수 있고 그런 면이 기자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남해에 대나무가 많이 죽는다. 행정에 문의해봤는데 원인을 모르겠다며 알아보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따로 원인을 찾아봤다. 대나무가 죽을 시기가 되기도 했고 기후위기로 겨울이 따뜻해져서 그렇다고 썼다. 그 다음주에 남해군에서 보도자료가 나왔는데 처음에 답변한 것보다 깊이가 생겼다. 공무원들도 많이 물어본 거다. 그렇게 공무원을 움직이게 하고 군민들이 좀 편해질 때 보람을 느낀다. 지역신문이 3곳 있지만 다들 행정을 제대로 비판할 여력조차 없을 만큼 바쁠 거다. 군정 비판도 제대로 하고 싶다.”
-요즘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유튜브나 인터넷 기사도 중요하지만 본질은 종이신문이다. 종이신문 경쟁력은 편집에서 나온다. 우리 디자이너 두명과 함께 7월에 디자인전시회도 갈 계획이다. 편집에 대한 독려도 해주고 교육도 시켜줘야 편집기자도 의욕이 생긴다. 2022년 바지연(바른지역언론연대) 세미나에서 풀뿌리언론상 편집부문에 우리 박은옥 기자가 우수상을 받았다. '신문의 잡지화'다. 잡지는 예쁘지 않나. 뒤집어도 보고 볶아도 보고. 종이신문의 종말은 못 막더라도 노력은 해야 안 보던 신문에 한번이라도 눈이 가지 않겠나.”
-지역신문은 어렵고 지역신문 기자로 사는 건 힘들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굳이 희망을 찾아보자면, 젊은 국장으로서 제보는 제일 많이 받는다. 처음에 인턴하면서 아이템을 어떻게 발굴할지 고민이 많았고 선배들이 아이템 던져주면 정리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적어놓은 아이템들로 어떤 건 바지연 기획기사로 내고, 지발위와 경남지발위에 각각 신청할 아이템으로도 배치한다. 양질의 제보를 해주는 분들이 있고 언론의 필요성을 아는 분들이 있어서 남해시대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역신문은 계속되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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