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서 30년, 그가 타로카드를 펼쳤다

한겨레 2024. 7. 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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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타로심리상담 활동가
노조 30년 활동가, 타로 배우며
‘타인도 나와 다르지 않음’ 깨달아
노동자 등 대상 강좌·글쓰기 진행
“자기 돌보고 편안해지기 바라며”
성희씨가 타로 강좌를 글쓰기와 연계해 만든 문집.

성희씨는 타로심리상담 활동가다. 2018년, 정년을 몇년 앞두고 오래 몸담은 일터를 그만둘 때는 머릿속에 전혀 없었던 일이다. 그해 우연히 만난 ‘여성주의 타로’가 그이를 타로마스터와 타로심리상담사의 길로 이끌었다. 자격을 얻기까지 몇년간 함께 공부한 여성들과 이후에도 계속 만났다. 서로 “스승과 제자가 되어” 배움을 나누다 보니 타로에서 확장해 명상 수련을 하고, 국제 싱잉볼 치유사와 아로마 테라피스트, 레이키 힐러(생명에너지를 손으로 전달해 치유하는 사람)도 겸하게 됐다. 누군가 “순수한 나, 자신의 본성”을 찾고자 할 때 안내자 혹은 길잡이가 되는 일들이랄까. 타로의 길에 들어선 지 7년. 지난해 회갑을 맞고 보니, 성희씨는 예순 이후의 삶으로 이 길을 죽 가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평등한 사회·관계 꿈꿨는데…”

“56살에 다니던 직장, 사회활동, 인간관계를 멈추었어요. 그러자 많은 게 새롭게 보였어요. 타로를 배우면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했죠. 나를 이해하고 내 마음을 읽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보이더라고요. ‘이래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너무 많이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지금을 잘 살면 된다는 걸 알았어요.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었죠.”

성희씨는 20대부터 50대까지 상급 노동조합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했다. 일찍이 고등학생 때부터 사회현실에 눈떠 현장르포집을 읽던 학생이었다. 고3 때는 좋은 성적에도 대학을 안 가겠다고 직업반에 들어가 부기와 타자를 배운 당찬 학생이었다. 언니의 설득에 그해 시험을 보고 간호학과에 진학해서는 서클활동과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얼마 전이었고, 선배들이 강제징집을 당하던 때였다. 전공 실습 시기에 연행돼 졸업장은 없지만, 미련 없이 공장으로 갔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합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어디든 들어가면 일을 잘했는데, 구속 이력이 있어 공장마다 3개월을 못 넘기고 쫓겨났다. 그렇게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버티기를 2년, 그 뒤로는 노동자를 지원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내가 갈구했던 건 평등한 사회였어요. 평등한 관계를 꿈꿨던 거죠.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라고 하는 건 평등한 사회가 아닐까요? 그런데 아직 평등한 사회는 되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변하지 않아야 할 게 변하고, 변해야 할 게 변하지 않는 어떤 시스템과 사람, 부족한 사업들에 성희씨는 불평과 불만이 일었다. 퇴직 뒤 타로를 만나고 삶을 되돌아보니 가장 문제는 ‘자신’이었다.

“그게 결국 내 문제였다는 걸 알았죠. 내가 적극적으로 해서 풀어야 하는 건데 자꾸 남 탓을 했어요. 내 기준에서, 내 양에 안 찬다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폄훼한 거죠. 내가 나를 인정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인정해야 그 사람이 보일 텐데, 나는 내 잣대로 ‘쟤는 저게 문제야’, ‘왜 쟤는 저거밖에 안 되지?’ 이러니까 그 사람을 인정하지 못했던 거죠. 타인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이제야 실천한달까요.”

성희씨가 타로 강좌를 글쓰기와 연계해 만든 문집.

성희씨는 그간 ‘타로와 나의 시그널 찾기’, ‘여자로 나이 든다는 것’, ‘타로의 상징으로 자기 이해와 마음 읽기’, ‘살아온 세상과 살아갈 세상’, ‘타로와 나 인터뷰’를 주제로 타로 강좌를 진행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여성단체와 노동단체가 주관하는 강의도 있었고, 어린이집에서 요청해 교사들을 만났다. 해고 투쟁을 마무리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해고노동자들, 회갑을 맞는 노동운동가들 앞에서 타로카드를 펼쳤다.

“말은 쉬운데 자기를 돌아보는 일, 자기를 깨닫고 알아차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강좌 한번 듣는다고 알아차림이나 깨달음이 바로 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자기를 돌보고, 좀 편안해지고, 괜찮아지기를 바라죠.”

성희씨는 타로 강좌를 글쓰기와 연결했다. 상황에 따라 일주일에 1회씩 몇주간 진행하기도 하고, 1박2일로 이틀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진행하기도 하는데, 강좌를 다 마치면 같은 제목으로 문집을 만들어 수강생들에게 건넸다. 이제까지 총 8권을 만들었는데, 문집에는 타로카드를 질문 삼아 수강생들이 되돌아본 과거와 현재,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강좌만 하고 끝내도 될 일이었다. 대개 타로 강좌가 그렇다. 그런데 성희씨는 왜 타로를 글쓰기와 연결해 녹취하고, 교정·교열하고, 편집하고, 제본하는 수고를 들일까.

“수강생들과 타로를 펼치는데 거기서 나온 이야기가 공중에 다 날아가 버리고 축적되지 않는달까요? 타로가 자기를 돌아보는 도구라고 하는데, 할 때뿐이고 사람들이 금방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글로 남긴다면 나중에 객관화된 자기를 보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 보고 그러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요. 내가 타로를 처음 배우던 해, 동네 노동자복지센터에서 글쓰기 강좌를 들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문집을 만들어줬어요. 6주간 수강생들이 쓴 글을 다 받아서 각자에게 일일이 어디를 고쳐 보면 좋겠다 의견을 줬어요. 내 이야기를 원고 마감해서 넘기고, 그게 활자화되는 걸 사실 처음 본 거예요. 30년 넘게 노동조합 일 하면서 성명서 쓰고, 회의 자료 만들고, 사업계획서와 평가계획서, 공문 이런 걸 날마다 쓰고 만들다시피 했는데, 그런 거 말고 실제 내 얘기를 내가 써서 활자화된 걸 보니 다르더라고요. 나는 그게 참 좋았던 거예요.”

그간 노동운동에서 쌓아온 기획력과 추진력, 실무 능력이 남달랐으니, 성희씨는 그 좋았던 것을 수강생들에게 바로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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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기 때 찾은 ‘다른 길’

몇가지 겹치는 일들이 있었지만, 성희씨가 인생의 다른 길을 찾게끔 한 데는 “완경기”도 한몫했다. 타로카드를 이용해 만든 성희씨의 인생 연표를 보자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어 암울해지고, 미국발 경제위기로 노동 현장이 어려울 때”였고, 사회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홀로 고통스럽게 싸울 때”였다.

“그때가 완경기, 갱년기였죠. 내가 45살인가 그랬는데, 생리가 불규칙해지고 막 짜증 나고 무엇보다 불면증이 컸어요. 날마다 하루에 2시간 잤나? 몸이 면역력도 떨어지고, 아토피도 생기고, 55살 완경 될 때까지 그 시기가 한 10년 걸린 것 같아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허리가 엄청 아픈 사람들, 땀이 너무 흥건하게 나는 사람들, 어깨가 아팠다는 사람들, 이렇게 갱년기가 다 다르게 오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회의에서 다 결정한 사항을 한 동료가 찾아와 자꾸 번복하려고 했다. 성희씨는 여간해서는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아니라는데 그날은 달랐다.

성희씨가 타로 강좌를 글쓰기와 연계해 만든 문집.

“갑자기 화가 훅 올라와서 정말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질렀어요. 그런 감정이 처음이었어요. 일방적으로 내가 퍼부었죠. 그 사건이 저한테는 너무 크고 창피해서, 감정이나 마음 상태가 변하는 걸 잘 보고 잘 대처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갱년기를 받아들였어요. 50살이 되면서는 컴퓨터에 ‘50대 일기’라는 폴더를 만들어서 일기를 썼어요. 50대가 나한테는 새로웠어요. 60 이후에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이런 고민도 했는데, 이런 얘기를 다른 사람과는 한번도 해본 적은 없어요. 혼자 책을 찾아 읽고 내 마음이나 심리 상태의 변화 이런 개인적인 어떤 것은 그냥 일기에다만 썼어요. 이제 토로를 시작했죠.”

성희씨는 타로심리상담 활동가다. 타로마스터나 타로심리상담사로 쓸 수도 있지만, 활동가라는 이름이 좋다. 노동운동과 사회변혁운동 일선에서는 벗어났지만,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와 노동 현장이 있다면 타로카드를 가져가 펼쳐두고 그이들 이야기에 귀 기울일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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