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차·배 타고 그 섬에 갔다…아들과 함께 한 저탄소 여행 [ESC]
대중교통 이용한 ‘저탄소 여행’
목포에서 50분…30여가구 정주
사람 발길 닿지 않은 숲길 매력적
모처럼 느긋한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깍둑썬 수박을 우물거리며 각자의 하루를 묻고 답하던 중 아들이 말했다. “아빠, 기후변화 때문에 여름이 빨리 오고 있대. 그런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대!” 갑작스레 식탁 위에 올려진 묵직한 주제에 나와 아내는 아이를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기를 아껴 쓰고, 자동차 대신 버스를 타는 게 좋대. 참, 물을 절약하는 것도 기후변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어!" 학교에서 일상생활 속 온실가스 감축에 관해 배운 모양이었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와, 중요한 걸 배웠네. 음, 뭐부터 실천하면 좋을까?” 내가 다음 말을 이었다. “아들, 우리 다음 백패킹은 대중교통으로 가볼까? 버스도 타고 기차도 타고. 그리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옆자리 나란히’ 여행의 즐거움
6월의 셋째 토요일 아침, 묵직한 배낭을 메고 세종시 집을 나선 우리는 손을 맞잡고 바로타(세종시 간선급행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 백패킹 가면서 버스 타는 건 처음이다, 아빠! 그치?” 아들과 함께하는 여정은 대부분 차를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이동했었다. 하지만 이번 여정은 두 다리와 대중교통에 오롯이 의지하는 저탄소 여행이다. 바로타를 타고 20분, 오송역에 도착한 우리는 목포행 케이티엑스(KTX)에 몸을 실었다. 아빠는 운전대를 잡고 아들은 뒷좌석 카시트에서 각자 만끽하던 여행길이 옆자리 나란히 앉아 가는 새로운 즐거움으로 변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마지막 역인 목포역에 도착합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차창 밖 풍경을 감상하던 우리는 익숙한 멜로디와 함께 흘러나오는 도착 안내 방송에 눈을 뜨고 시계를 봤다. 오전 9시6분, 정시 도착이다. 기지개를 켜고 배낭을 둘러멨다. “아빠, 우리가 가는 섬 이름이 외달도라고 했지? 몇시 배야? 배 타는 데까진 얼마나 걸려?” 목포역 광장을 나서며 아들이 물었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수없이 찾아봤던 길이지만, 나는 다시 한번 지도 앱을 열어 봤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로 50분을 가야 하는 섬이야. 어디 보자, 여기서 목포항까지는 1.3㎞, 20분만 걸어가면 되겠네. 오전 10시30분 배거든. 시간은 충분해.” 횡단보도를 건넌 우리는 ‘여객선터미널’ 이정표를 따라 표구점과 화랑이 즐비한 도로를 지나쳤다. “외달도는 3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이래. 얼마 전 아빠 강연에 참석했던 분이 추천해줬어. 너무 예쁜 섬이라며, 서진이랑 꼭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다고.”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해 배표를 발권한 우리는 외달도행 차도선에 올랐다. 선박명은 ‘슬로아일랜드’.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출발한 배 뒤로 한 무리의 갈매기떼가 따라왔고, 나와 아들은 새우과자 한 봉지를 들고 갑판에 올라 그들을 맞이했다.
파도가 잔잔한 바닷길은 평화로웠다. 달리도와 율도를 거쳐 도착한 외달도에 하선한 우리는 관광안내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손끝으로 섬의 해안선을 따라 그리며 오늘의 코스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해안선을 따라 섬 구석구석을 유람하다가 적당한 곳에서 야영을 할 계획이었다. 썰물에도 해수욕을 즐길 수 있도록 바닷물을 끌어 조성했다는 ‘해수풀장’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왐마, 아빠랑 아들이랑 둘이 캠핑 왔납네. 날씨가 더븐디(더운데), 그늘에서 쉬엄쉬엄 가소!” 해수풀장 앞 나무 그늘에서 목에 건 수건으로 땀을 닦던 섬 주민이 나와 아들의 묵직한 배낭을 보고는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그러게요, 완전 여름이네요. 외달도는 처음인데, 섬이 조용하고 참 예뻐요.” 그러자 섬 주민은 텅 빈 해수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야 조용하제. 7~8월 되면 시끌벅적하당께. 학생들이 방학 하고 휴가철 되고 하면 허벌나게 들어와부러. 이제 곧 수영장에 바닷물을 끌어올리기 시작하겠구먼.” 섬 주민은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보고 느끼게 될 외달도와 한여름의 외달도는 서로 다른 재미가 있으니 해수풀장 개장 이후에 다시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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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덩굴, 키 큰 억새, 백사장
수풀이 우거진 둘레길에 접어들며 본격적인 섬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의 반복, 육지의 산과는 다른 매력이었다. “아빠, 마치 아프리카 밀림에 온 것 같아!” 가슴팍까지 자란 풀과 바닥을 메운 덩굴을 헤치며 걷던 아들이 외쳤다.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숲길은 자연을 한껏 머금고 있었고, 우리는 그런 섬 길을 탐닉했다. 아들과 함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메뚜기를 쫓기도 하고 흰 날개를 펄럭이며 주변을 맴도는 나비와 숨바꼭질도 했다. 6월의 폭염에 갈증이 일었다. 우리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앉아 이온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 먼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의 엔진소리,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소리…. “아빠, 일어나! 우리 이제 가야지!” 아들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쉼이었는데, 마치 긴 잠을 자고 일어난 듯 개운했다. 기지개를 켜고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고즈넉한 바닷가 앞에 자리 잡은 멋스러운 기와집과 형형색색의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을 지나 목재 계단을 오르며 다시 시작된 숲길은 우리를 외달도 등대로 이끌었다. 등대를 지나 언덕을 오르자 이번엔 아들 키만 한 억새가 즐비한 평원이 우릴 반겼다. 억새 군락지를 지나자 푸른 바다와 맞닿은 백사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외달도해수욕장’이었다. 해수욕장 한편에 배낭을 내려놓은 우리는 신발을 벗고 백사장으로 향했다. 햇볕에 달궈진 모래가 지친 발을 따듯하게 감싸주었다. 아들과 손을 잡고 한걸음 또 한걸음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발목을 적시는 시원한 바닷물에 더위가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때였다. ‘쏴아’ 예상치 못한 큰 파도에 일순간 허리까지 젖어버렸다. 당황스러움은 잠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바탕 바다를 만끽한 아들이 말했다. “하늘빛이 물든 바다가 참 예쁘다. 우리 여기 꼭 다시 오자, 아빠!”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하고 대답했고, 아들은 한동안 말없이 석양이 붉게 물든 아름다운 다도해의 풍광을 만끽했다.
글∙사진 박준형 작가
평일에는 세종시와 여의도를 오가며 밥벌이를,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배낭을 메고 전국의 산과 섬을 누비고 있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연으로 한 걸음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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