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시대 언제 와? 난기류 휩싸인 수소 항공기[딥다이브]
배출되는 건 수증기밖에 없는 완전한 무탄소 비행. 바로 ‘수소항공기’가 그리는 미래 항공의 모습이죠. 지난해 수소연료전지를 장착한 항공기가 속속 시험 비행에 성공하면서, 이런 미래도 곧 열릴 것만 같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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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꺾인 수소항공기 선두주자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이 회사를 청산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확인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투자를 마무리하는 데 실패했고, 이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6월 30일 미국의 수소항공기 스타트업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의 마크 커즌 CEO가 이런 공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20년 설립한 지 4년 만에 날개를 접은 거죠.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은 태동 단계에 놓인 수소항공기 업계에서 선두주자였습니다. 명성 높은 창업자(에어버스 최고기술책임자 출신인 폴 에레멘코)와 유수의 투자자(에어버스, GE 에비에이션, 도요타, 아메리칸에어라인 등)가 든든히 받쳐줬고요. 투자금도 1억 달러 넘게 모았습니다. 미국 지역항공사를 포함한 12개국 16개 항공사에서 247대의 주문서도 확보했죠.
지난해 3월엔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습니다. 40인승 항공기를 수소연료전지 비행기로 개조해, 미국 워싱턴주 중부에서 캘리포니아 모하비까지 15분 동안 날아간 건데요. 미국 경제월간지 패스트컴퍼니는 지난 3월 ‘2024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이 스타트업을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커즌 CEO는 “운영을 위한 충분한 자본 또는 대출을 확보하지 못했고, 사업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회사 청산 이유를 설명했죠. 수소항공기 출시까진 추가로 2억 달러의 자금이 필요했지만, 끝내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겁니다. 2026년에 첫 상업용 수소 항공기를 띄우겠다던 야심 찼던 비전은 이렇게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비행기 띄울 그린수소는 어디에
약 7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1955~58년 미국 공군이 방산업체 록히드와 비밀리에 진행했던 ‘선탠 프로젝트’ 이야기인데요. 액체수소를 연료로 하는 항공기를 개발하기 위해 공군이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지만, 결국 프로젝트는 취소됐습니다.
수소엔진 개발이 어려웠냐고요? 아니요. 엔진은 두 개나 성공적으로 제작·테스트됐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수소엔진을 가동할 만큼의 충분한 수소를 공급할 방법을 찾지 못한 거죠. 결국 수소의 생산·저장·운송이 가장 큰 문제였던 건데요. 바로 이 점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이제 수소는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지 않냐고요? 무슨 색깔이냐에 따라 다르죠. 수소는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색깔을 구별해 이름 붙이는데요. 천연가스로 만든 ‘그레이수소’는 싸게 많이 만들 수 있지만, 무탄소와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친환경 수소항공기에 필요한 건 탄소배출이 없는 ‘그린수소’인데요. 깨끗한 재생에너지(풍력이나 태양광)로 만든 전기를 가지고,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린수소는 생산단가가 ㎏당 4.5~12달러(미국 기준)에 달하는데요(그레이수소는 1달러 안팎). 전해조가 비싼 것도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전기료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비용의 3분의 2가 전기료).
기술 발전과 정부 지원(미국은 그린수소 생산 시 보조금 지급)으로 생산비용이 점점 내려갈 거란 전망은 있지만 그린수소 생산량은 아직 미미하죠. 전 세계 수소 생산량 중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린수소의 공급 부족(그리고 너무 비싼 단가)은 이제 막 시작된 수소항공기 산업의 날개를 꺾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게다가 수소연료는 운반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닙니다. 기체 수소는 너무 분자가 작아서 아주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새어 나가고요. 액체로 만들려면 극저온(영하 253도 이하)을 유지해야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 아닌데요. 또 대량의 수소를 항공기에 싣고 몇시간씩 날아다녀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보통 항공기가 항공유를 어디에 저장하시는지 아시나요? 바로 항공기 날개 내부에 연료탱크가 있는데요. 액체수소는 날개에 저장해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연료탱크 표면적이 이렇게 넓으면 바깥과의 온도차이(액체수소는 영하 253도 이하) 때문에 수소가 너무 많이 기화돼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죠. 이런 증발을 최대한 줄이려면 가급적 연료탱크를 구형으로 동그랗게 만들어야 하는데요.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의 경우, 이런 이유로 액체수소 연료탱크가 날개가 아닌 항공기 동체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문에 좌석을 세 줄이나 줄여야 했죠. 그만큼 항공사 입장에선 손실인 겁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이밖에 미국 하이드로플레인, 스위스 시리우스 에비에이션 등 수소연료 소형 비행기를 개발 중인 기업도 여러 곳이죠. 수소항공기를 향한 여정은 이제 막 시작 단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도전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수소 말고는 탄소배출이 완전히 제로인 비행으로 갈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 5월 항공·정유업계의 뜨거운 이슈라며 딥다이브에서 소개했던 지속가능 항공유(SAF, Sustainable Aviation Fuel)를 기억하시나요. 폐식용유·동식물성기름·바이오에탄올 등을 원료로 만드는 항공연료인데요. 이 지속가능 항공유는 연소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저탄소’이지 ‘무탄소’는 될 수 없죠. 게다가 원료 공급의 한계를 생각하면, 이름처럼 지속가능하진 않다는 비판도 나오고요.
수소 산업은 보면 볼수록 수소의 생산, 저장, 운반이 가장 큰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는데요.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를 향한 이 수많은 도전의 끝에 뭐가 오게 될지가 궁금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탄소배출이 없는 수소 항공기를 만들기 위한 도전 하나가 좌절됐습니다. 업계 선두주자로 꼽히던 유니버설 하이드로젠이 회사를 청산하게 됐습니다.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수소를 연료로 한 항공기를 만들자는 생각은 70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수소를 공급받는 건 그때도, 지금도 어렵습니다. 친환경의 그린수소 생산단가는 여전히 너무 비쌉니다.
-지속가능 항공유는 무탄소가 될 수 없고, 전기항공기는 커질 수가 없습니다. 수소 항공기로 가는 길이 울퉁불퉁하지만, 항공산업의 탄소중립을 위해선 그래도 여전히 가야할 길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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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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