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시청역 사고에 ‘고령운전’ ‘급발진’ 논란 재점화…해결책은?

변문우 기자 2024. 7. 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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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사고 원인’ 모두 열어놓고 대책 마련 촉구…“전화위복 기회 삼아야”
與, ‘고령운전자 급가속 예방법’ 발의…野, 급발진 책임 물을 ‘도현이법’ 집중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7월2일 오전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역주행하다 인도를 덮쳐 13명의 사상자를 낸 운전자가 몰던 제네시스 차량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렇게 황망한 죽음이 어디 있나" "어쩌면 나였을지도…"

지난 1일 밤,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한 제네시스 차량이 돌연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한 뒤 인도를 덮쳤다. 사고 직후 인도와 도로 분리대는 엿가락처럼 휘고 파편이 곳곳에 흩어지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결국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당시 차를 몰았던 운전자 차아무개(68)씨는 40년 경력을 가진 시내버스 기사였다. 하지만 '베테랑'도 대형 교통사고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해당 사고 직후 운전자 차씨가 주장한 사고 원인은 '급발진'이었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도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제동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급발진이 아닌 '운전 부주의' 가능성일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통상 급발진 사고의 경우 차량을 제어할 수 없어 벽이나 가로등을 들이받고서야 끝나지만 해당 사고의 CCTV 영상에선 차량이 감속하다 스스로 멈춰선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누리꾼들의 갑론을박 설전이 벌어졌다. 일부 누리꾼들은 "영상에서 차 브레이크등(후미등)에 불이 들어온 걸 봐서는 급발진이 아니다", "인명 사고만 나면 급발진 주장이냐"라며 고령운전자의 부주의를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선 "급발진일 가능성도 있으니 섣부른 판단은 안 된다", "고령자 운전을 막으면 그들의 이동 자유는 어떻게 보장하나", "40년 버스기사 경력을 가진 전문가의 말도 들어봐야 한다"는 반박도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일단 사고의 원인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관계 당국은 사고 경위를 철저히 파악해 유사 사고 재발 방지 및 안전 강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원내대책회의에서 "당국은 사고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오세훈 서울시장은 핵심 원인으로 거론되는 두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재발 방지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시청 직원들 빈소를 방문해 "그간 고령자 및 초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내지는 조건부 면허 발급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페달 오작동 또는 오조작이 발생했을 때 기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어떻게 의무화할지도 논의가 이뤄져 앞으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한 민사소송이 진행된 18일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왼쪽)와 하종선 변호사(오른쪽)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도현이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 청원 참여를 촉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령자 조건부 면허제' 도입도? '이동권 제한' 역풍에 신중 접근

일단 '고령자 운전'과 관련된 법안은 최근 국민의힘에서 먼저 발의됐다. 한지아 의원은 5일 '고령운전자 급가속 예방법'을 대표 발의했다. 자동차에 급가속 억제장치를 장착하거나 구비된 자동차를 구매하는 경우 그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고령운전자의 급가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차원에서다. 한 의원은 "고령운전자의 이동권은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자동차 급가속으로 인한 교통사고와 인명피해를 막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에선 고령자에 대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까지 검토됐다. 사실상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는 셈이다. 지난 5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을 통해 고령 운전자 운전 자격 관리와 운전 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운전 능력에 따른 운전 허용 범위를 차등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해당 정책은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한다'는 역풍을 맞으며 결국 백지화됐다.

여야 정책위에서도 고령자 운전 제한은 논쟁의 소지가 많은 만큼 신중하게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정책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내 주요 연령층이 60대 이상인 만큼 이들의 운전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에 마이너스일 수 있다"며 "특히 고령층 제한 연령을 설정하는 것도 민감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필요성이 부각되면 민감한 부분을 피하는 선에서 정책화를 검토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도현이법' 다시 추진…급발진 입증 책임은 '제조사 몫'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근절의 필요성에도 정치권은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현행법상 사고 원인이 자동차 결함으로 의심될 경우 소비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3월까지 14년간 접수한 급발진 의심 사고 791건 중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현재까지 한 건도 없다. 2년 전에도 강원도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사망하면서 급발진 문제가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정치권에선 급발진 입증 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에 묻도록 하는 '도현이법'이 등장하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국회 입법청원에서도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된 바 있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5건 추가로 발의됐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제대로 된 논의도 못한 채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해당 법안에 대해 '신중 검토 의견'을 내며 사실상 기업의 손을 들었다.

이에 이도현군의 아버지 이상훈씨는 지난달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다시금 '도현이법'을 법제화하기 위해 재청원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5일 기준 7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으며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 대상으로 접수된 상태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의 허영 의원도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법안들을 바탕으로 '도현이법'을 다시 발의할 계획이다. 시청역 사고를 통해 각계에서 포괄적 대책마련을 촉구한 만큼, 해당 법안도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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