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산 정상이 눈앞에…7년 전처럼 물러서지 않으리 [ESC]
갑자기 내린 비, 바람에 휘청이며
다시 마주한 3710m 산정 화구
3776m 미지의 겐가미네봉으로
이윽고 거대한 후지산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한시라도 서둘러 산속으로 들어서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제야 후지산 등산로 초입에 도착한 것이다. 노점인 듯한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었다. 주인아저씨가 나오더니 웃으면서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기웃대다가 들어가 시원한 콜라 한 캔을 사서 목 끝까지 들이켰다. 오두막의 마당에 마련된 작은 마루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후지 요시다구치 5합목(옛날에 산에 오를 때 불 밝힌 등잔의 기름이 타기 시작해 불이 꺼질 때까지의 거리를 뜻함. 합목당 거리는 1㎞ 남짓)까지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가보기로 했다.
서늘한 바람 부니 붉은 모래 먼지가
3합목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저 멀리 방울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간격을 좁혀 그에게 다가갔다. 오늘 날씨가 좋다고, 몇시에 어디서 출발했냐고, 먼저 갈 테니 조심히 오라고 그를 뒤에 두며 안심했다.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 반가웠다. 그러다 머지않아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만났다. 그는 하산 중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통에 말을 나눌 수는 없었다. 다만 그저 그가 어디에서 오는지, 그의 정상은 어디였을지, 그가 사라진 길 위에서 그가 오고 갔을 길에 대해 짐작해볼 뿐이었다.
후지산을 오르는 동안 무너져내린 과거의 신사와 마주쳤다. 에도 시대 당시 후지산 신앙을 따르던 수행자들이 걸었던 길. 한때는 성행했으나 이제는 쇠잔해진 풍경을 보며 지나간 한 시절의 영광에 대해 생각했다. 영원할 것 같아도 결국에는 끝이 있는 모든 일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최선이었을 모든 일들. 마치 영원할 거라 믿는 지금 이 시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궁극의 목표를 향해 극진히 오르고 올랐을 선대의 사람들과 지금의 내 모습은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사이 중천에 떠오른 태양 아래 어느덧 후지 요시다구치 5합목에 도착했다. 이곳이 전에 없는 활기를 띠는 것은 버스를 타고 후지 스바루라인 5합목까지 단번에 올라온 인파 때문이었다. 이곳에 이르기 전까지 홀로 오른 하부의 산길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여정이 전반부였다면 이제부터는 후반부였다. 후반부이자 수직의 산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저 사면의 산길 위로 벌써 수많은 사람이 후지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을 따라 서둘렀다. 갈지자로 하염없이 뻗어가며 꾸준히 고도를 높여가는 산길 위에 나의 거친 숨을 보탰다. 길 위에서 낯선 숨과 숨이 스쳤다. 그러다 멈춰 서서 위아래로 까마득히 펼쳐지는 풍광을 번갈아 바라봤다. 지금부터 걷는 모든 길은 그 자체로 거칠 것 없는 야생 전망대였다. 왜냐하면 5합목부터 정상까지 후지산에는 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기 때문이었다. 고산의 화산인 후지산에는 수목한계선(고산 및 극지에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경계선)이 있고 나무나 풀, 꽃 등의 생명은 그 너머에서 살 수 없다.
고지대의 서늘한 바람이 불 때마다 후지산의 붉은 모래가 먼지처럼 일어났다. 그것은 마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 같았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이 텅 빈 산이 무엇도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내 마음의 배경이라면, 그 속에서 차츰차츰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붉은 모래는 내 마음에 숨어 있던 어떤 상처 같았다. 숨길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그래서 결국 작은 바람 앞에서조차 견디지 못하고 끝내 흘러내리는 나의 오래된 상처 속을 한동안 말없이 비척대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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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을 저벅저벅
7합목 산장 앞 벤치에는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이 한데 뒤섞여 쉬고 있었다. 7합목 산장에 도착하니 새삼 7년 전 이 산을 오르던 때가 떠올랐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기와 패기만 가지고 후지산 정상을 향했던 그해 여름. 이곳 산장의 매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스니커즈(초코바)를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일. 물자가 귀한 산인데 하물며 여기는 최고봉인 후지산이었다. 스니커즈 하나를 우리 돈 5천원에 사서 요기했다. 추억의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산중에서 요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잠시 벤치에 배낭을 벗어두고 지금까지 올라온 길을 내려다봤다. 켜켜이 쌓여 있는 안개가 걷힐 때마다 세상이 열리고 또 닫혔다. 있는 것이 돌연 거짓말처럼 없는 것이 됐고,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저 그 시간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러다 보면 보이지 않았던 것이 희미하게 보이기도 했고, 없는 것이 돌연 있는 것이 되기도 했다. 한데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사방이 환하게 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터져버리는 감탄은 도무지 막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아름다운 것을 선명하게 보고 싶었다.
모래와 자갈뿐인 불모의 산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았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흩날리는 비바람에도 아찔하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7년 전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 방수 재킷의 모자를 정수리까지 단단히 뒤집어쓰고 정상에서 내려오는 비바람을 뚫으며 바윗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리고 이윽고,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강하게 밀려오는 순간, 9합목의 관문을 지나 후지산 산정 화구(해발 3710m)에 도착했다. 돌연 화창한 하늘 아래 어디선가 올라온 무수한 사람들이 산정 화구에 도달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화구 근처로 다가갔다. 7년 전 처음 마주했던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의 아득한 소행성 같았다. 저 멀리 반대편으로 후지산 정상인 해발 3776m 겐가미네봉이 보였고, 또 그쪽으로 부지런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다. 7년 전 그날의 장면이었지만 오늘 이 산은 나에게 새로운 산으로 다가왔다.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아직 시간이 있었다. 신발 끈을 고쳐 묶고 겐가미네봉으로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미지의 땅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장보영 등산여행가
스물다섯 살에 우연히 오른 지리산에 매료된 이후 히말라야와 알프스, 아시아의 여러 산을 올랐다. 그러다 산을 달리기 시작했고 산악 잡지도 만들었다. 지은 책 ‘아무튼, 산’은 산과 함께한 청춘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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