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쉽게’ 뽑고 자르다, 곪을 대로 곪은 제조업

이효상 기자 2024. 7. 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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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제조업에 불법파견 만연 원인과 이주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
지난 2022년 4월 충북 음성군의 한 아파트 앞 도로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통근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주간경향] “저도 제 아들이 그런 데 간다고 하면 안 보내죠.”

일손이 필요한 곳에 이주노동자를 보내는 일을 하는 A씨는 그와 거래하는 사업장들을 이같이 평가했다. “가서 보면 대부분이 다 위험해요. 그런 데니까 외국인 쓰지. 아유, 한국 사람들이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3D에서 일 안 해요. 거의 안전시설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많이 어렵죠.”

A씨에게 이 일은 “용돈벌이” 부업이다. 정식으로 직업소개소 간판을 내건 사무실을 운영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보통 페이스북 등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한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출신 국가별로 만든 네트워크를 통해 구인·구직 광고를 한다.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연락이 많이 온다. 그를 취재하게 된 것도 페이스북 구직 광고 글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국가명) 여자 5명 있어요. 청소 일 구해요”라는 글과 함께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게시했다.

그는 “저는 가급적이면 불법 안 해요”라고 했지만, 음지의 취업 알선이 완전히 합법으로만 이뤄지긴 어렵다. 체류 기간이 끝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도, 취업할 수 없는 유학생들도 구직을 바라고 연락해온다. 공장이든 농장이든 사업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 매칭이 성사되는 순간부터 불법이 된다. 합법 경로로는 일을 구할 수 없는 이 신분상의 불안정함은 줄줄이 불법을 낳는다. 법대로라면 사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기숙사비·식대를 노동자가 내고, 4대 보험 가입이 안 되거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기 일쑤다. A씨는 “우리나라에 불법 없으면 공장 못 돌려요. 외국인들, 불법 노동자 없으면 공장 문 닫아야 합니다”라고 했다.

수두룩한 불법 속에는 ‘불법파견’도 꼭 들어가 있다. 제조업체는 원칙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일을 자신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에게 맡겨야 한다. 인력업체가 보낸 노동자에게 이 일을 맡기면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불법이다. 파견법에 이런 조항을 만들면서 국회가 고려했던 건 제조업 경쟁력이었다. 기간산업인 제조업에서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합당한 임금을 줘야, 기술을 축적하고 사고를 예방해 제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리라 봤다. 달리 말해 제조업에 파견이 만연해지면 당장은 저렴하게 노동력을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제조업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불행히도 우려가 현실이 됐다. 대부분의 중소 제조업체는 값싸게 언제든 자를 수 있는 노동력을 인력업체로부터 공급받는다. A씨 같은 인력파견업자는 ‘사람 장사’로 10% 안팎의 수수료를 챙기고, 일부 이주노동자는 불법파견을 통해 열악한 일자리나마 생계를 이어갈 수단을 얻게 된다. 이 불법 상태에 모두가 만족하는 듯 보이지만, 위험부담을 모두가 공평하게 지는 건 아니다. 약한 고리인 이주노동자는 거의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때로는 그 대가가 이주노동자의 목숨일 때도 있다. 경기도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 보듯 사망자 23명 중 20명은 불법파견 가능성이 매우 큰 인력파견업체 소속이었다.

불법파견은 이 고용시장에서 대수롭지 않은 불법으로 여겨지지만, 중소 제조업체가 작업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원인이자 노동자의 일하는 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기능한다. 이주노동자와 내국인이 함께 일하는 곳도 적지 않은 만큼 그 해악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중소 제조업 고용시장에 불법파견이 만연해진 원인과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위험을 짚어봤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관리·감독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다 잡으면 소는 누가 키워?” 단속 비웃는 인력업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B씨는 4년 전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다. 고용허가제는 일할 사업장이 입국 단계부터 정해지고, 이를 변경하기가 쉽지 않다. B씨는 일이 험해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싶었지만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사업장을 이탈했고, 일반적인 경로로는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다.

이후 그는 “중간사람”, “브로커”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인력파견업체다. B씨는 “중간사람 사무실이 따로 있어요. 물어보면 일자리가 있다, 없다 얘기를 해요”라고 했다. 일자리만 있으면 방문 당일에도 일할 수 있다. 다만 근로계약서를 안 쓰고, 월급에서 다달이 일정 액수를 공제한다. 많게는 10%까지 떼인 적이 있다. 1년 이상 일해도 퇴직금을 안 주거나, 마지막으로 일한 달 월급을 떼먹는 때도 있다. 꼬박꼬박 가져가는 수수료만큼 노동자에게 책임을 다하는 건 또 아니다. B씨는 “만약에 일하다 다치거나 문제가 있으면 회사도 잘 안 해주고, 브로커도 잘 안 해줘요”라고 했다.

이 경로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통상 회사는 두 곳이다. 일하는 곳이 따로 있고, 명목상으로라도 고용을 해서 월급을 주는 인력업체가 따로 있다. 사업장이 제조업이라면 대개 불법파견일 가능성이 크다. 파견법상 제조업체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에만 다른 회사에서 보낸 노동자에게 일을 맡길 수 있다. 예컨대 기존 노동자의 출산·질병·부상으로 일시적인 빈 자리가 생겼을 때 최장 6개월 이내로 다른 회사의 노동자를 파견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적법한 사유에 따라 이뤄지는 파견은 극소수에 그친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상반기 파견사업 현황을 보면, 제조업·화물업 등에 일시적으로 파견된 노동자는 7400여명에 그쳤다. 제조업 파견노동자로만 한정한다면 수는 더 적을 수 있다. 실제 파견이 적어서가 아니라 대부분 불법이라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상시·지속 파견을 받는 경우가 많다.

파견업체에 하청을 준 것처럼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 제조업에서 다른 회사의 노동력을 쓸 수 있는 또 다른 예외적인 경우는 여러 작업 중 일부를 통째로 다른 회사(이른바 ‘하청업체’)에 맡긴 경우다. 일을 완성하면 대가가 지급되는 도급계약으로, 하청업체는 자신들이 고용한 인력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면 된다. 그런데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 제조업체의 지시·감독을 지속해서 받는다면, 이는 겉으로는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를 파견 받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른바 위장도급으로 불법파견에 해당한다.

아리셀에서 일하다 참사를 당한 노동자들은 이 경우일 가능성이 크다. 아리셀 공장에서 일했던 C씨는 지난 6월 29일 화성시청에 마련된 추모 분향소를 찾아 취재진에 “우리는 용역업체 메이셀을 통해서 아리셀에 투입됐고, 작업 지시 같은 건 아리셀 관계자들이 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역 인근 거리에 인력을 모집하는 구인 광고가 붙어 있다. 이준헌 기자

공단 지역 인근에서는 도급을 가장한 제조업 불법파견이 일상이 됐다. 반월·시화 공단 등이 밀집해 있는 안산시의 인력파견업체에서 일하며 몇몇 공장으로 인력을 공급하고 15%가량 수수료를 챙기는 D씨에게 ‘파견업체가 업무 지시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파견업체에서 진두지휘하겠어요? 도급이 되려면 일 자체를 떼어줘야 하는데 제조업 현장에서 일 떼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차를 만든다고 할 때 ‘이번 주 500대 만든다’고 원청에서 지시하면 우리는 물량이나 맞추는 거지, 우리가 뭘 안다고 결정을 하고 지시를 해요”라고 했다. 이어 “안산시나 노동부도 그걸 모르겠어요? 아는데 왜 단속을 안 하겠어요? 다 잡아 버리면 소는 누가 키워요? 언젠가는 강원도 지자체에서도 사람 좀 보내 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불법 외국인한테 물어도 갈까 말까인 것 같다’라고 했더니 불법은 자기들이 어떻게든 해결해볼 테니까 일단 보내달래요. 오죽 급하면 공무원이 안산까지 전화해서 그러겠어요”라고 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얘기다.

불법파견에 병든 제조업

불법파견은 단기 이득이 보장되는 방식이다. 중소 제조업체는 불법파견을 통해 싼값에 사람을 쓸 수 있다. 정식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자면 고용허가제를 통해야 하는데 요건도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불법파견을 받으면 인력파견업체에 수수료를 줘야 하지만 인력관리비용도 덜 수 있으니 별 손해가 아니다. 핵심은 필요할 때만 사람을 쓰고 쉽게 자를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도 취업제한과 무관하게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별 노동자들이 이 구조에서 취하는 장점은 각각 다른데, 이는 불법파견을 이용하는 노동자들의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내국인도 있고 이주노동자도 있다. 이주노동자 안에서도 비자에 따른 차이, 언어능력에 따른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정규직을 원하지 않는 재외동포 여성, 결혼이민자 등은 여유가 생길 때마다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일용직 일자리를 얻고 용돈 벌이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취업할 수 없는 유학생은 이 음성적 경로를 통해서 돈벌이를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불법파견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고착화하고, 산업의 경쟁력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경기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2020년 12월)’에 참여한 박재철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이렇게 말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대놓고 불법파견을 쓴다. 불법파견이 제조업에 접근하는 가장 쉬운 채용 구조가 됐다. 여기에 주로 노동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내국인 중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단절된 분들이 들어간다. 이주노동자 중에서 언어가 안 되는 사람, 내국인 중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은 이보다 더 마이너리그로 떨어진다. 이런 제조업체들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우니 불법파견을 쓴다고 하는데, 원인과 결과가 거꾸로 돼 있다. 작업환경이 안전하고 급여를 제대로 보상해준다면 사람이 안 오겠나. 그런데 불법파견으로 마이너리그를 형성하고 약자를 끌어들여 노동하는데, 언어도 잘 안 통하고 신분이 취약한 약자들이다 보니 발언권이 없다. 사업체는 인권과 안전에 점점 더 둔감해진다.”

불법파견은 산업재해를 키우는 원인이기도 하다. 산업재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예방할 수 있다. 하나는 사업장에 안전설비를 충분히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 제조업체에 있어 불법파견으로 언제든 충원할 수 있는 노동력의 존재는 열악한 작업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방치하는 유인이 된다. 또 다른 예방법은 노동자들에게 작업장의 위험요소를 충분히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쉽게 고용하고, 쉽게 해고하는 불법파견은 이마저 어렵게 한다. ‘경기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에서 이주노동자 304명에게 파견업체를 통해 일한 기간을 물었을 때 1년 미만이라는 응답이 46.4%로 가장 많았다. 3개월 미만 초단기 근무에 그쳤다는 응답은 14.5%였다. 짧은 근속기간은 산재 발생의 주된 원인이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산업재해 현황분석’을 보면 업무상 사고로 사망한 874명 중 근속기간이 6개월 미만인 사람이 528명으로 60%를 넘었다.

유성규 성공회대 겸임교수(노무사)는 “노동자들이 짧게 짧게 바뀌니까 제대로 안전교육을 받기가 어렵다. 사업주 입장에서 오늘 하루 일 시킬 건데 3시간 안전교육을 하겠나. 교육을 받는 처지에서도 1주일 일하러 왔는데 교육을 한들 제대로 듣겠나. 이번 아리셀 사고도 불법파견이라 사고가 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불법파견이기에 피해가 커진 건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문제를 오래 지켜봐 온 사람들은 불법파견을 바로잡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다. 노동부의 철저한 감독, 처벌의 강화다. 문제는 이 요구가 10여년간 이어졌지만 당국은 좀처럼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불법파견으로 기업이 처벌받는 사례 자체가 드물다. 형사처벌을 받아도 형량은 가볍다. 대기업이 수천개의 공정에 걸쳐 불법파견을 벌인 사례에서도 수천만원 벌금형이 대부분이다.

유성규 겸임교수는 “위반 건수도 많은 대기업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걸 보면서 중소기업 대표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나. 처벌은 사회적 메시지로 기능하는데 노동부나 검찰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과거 불법파견 사건에 강한 처벌이 이뤄졌다면 노동시장 상황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법파견을 사용하지 않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어기는 기업에 강력한 페널티를 주는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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