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정보공개, 어디까지 해야 할까[IGM의 경영 전략]
[경영전략]
협상에서 어렵고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정보공개다. 상대에게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 솔직하게 털어놔도 되는 것인가. 그랬다가 역이용당하는 것은 아닐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해관계가 크다면 고민은 더 커진다. 물론 서로 믿고 거래하는 사이라면 별 문제없다. 웬만큼 잘 알고 있다면 속내를 털어놔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 아닌가. 어떤 협상을 하든 처음 만나는 상대라면 정보 공개는 조심스럽다.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우선 교과서적으로는 접근해보자. 소위 ‘윈-윈 협상’을 위해선 양측이 정보를 허심탄회하게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맞다. 그래야 무엇을 더하고 어떻게 나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 윈-윈하려고 나섰는데 상대를 만나보니 영 아니다 싶다. 그러면 윈-윈하려던 마음이 싹 달아날 것이다. 늘 그렇듯 덜 주고 더 받기 위해 감추고 속이고, 때로는 위협까지 한다. 다른 사람 얘기라고 생각하지 말자.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 좀 더 이해가 될 것이다.
윈-윈 협상을 하는 방법
P 사는 얼마 전 해군으로부터 향후 18개월 동안 전기모터를 납품하는 대규모의 방산 계약을 따냈다. 생산에 필요한 각종 부품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에 착수했다. 부품에는 2만 개의 배선 장치도 포함돼 있었다.
배선장치는 공정상 다른 것보다 우선 구매해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기존 공급업체들이 이미 다른 주문으로 생산라인이 꽉 차 있는 상태였다.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했다.
구매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외 부품업체 모두 뒤진 끝에 겨우 한 업체를 찾아냈다. 수도권 외곽에 위치하고 있는 소규모 생산업체인 W 전기공업사다.
두 회사 모두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였다. 협상장에서 만난 양측은 서로 정보공유를 꺼리고 있었다. 특히 중요한 사항은 특히 그랬다.
예를 들어 구매 측은 자신들이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 상대 측이 알기를 원치 않았다. 알게 되면 자신들의 상황을 상대는 거꾸로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해 터무니없이 높은 단가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W 전기공업사 사정은 좀 달랐다. 창고에는 재고가 잔뜩 쌓여 있고 공장 가동률은 40%밖에 안 된다. 이 사실을 만약 상대가 알게 되면 터무니없는 단가를 요구할 것이다. 악성 재고를 처리하고 가동률도 올려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상대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런 정보는 감추고 싶었다.
이런 상황이 공감 가는가. 양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P 사는 원활한 물량 확보가 필요하고, W 전기공업사는 가동률 제고와 매출 확대를 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로 정보공개를 꺼리고 있다. 속사정을 털어놓지 않는다면 더 나은 거래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양측이 자신들의 니즈와 비즈니스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P 사는 적정 가격의 배선장치를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고, W 전기공업사도 공장가동률을 올리고 장기적인 공급선을 확보할 수 있다.
가격이라는 가치뿐만 아니라 적기공급, 재고처리, 공장가동률, 장기공급선 확보라는 중요한 가치가 창출된다. 이것이 윈-윈 협상 영역이다. 교과서적으로 접근해볼 때 아래 표의 좌측 상단이다.
이 표를 보면 바로 생각나는 것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다.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수학자 존 내시가 고안한 게임이론이다. 사건의 용의자로 잡혀온 2명이 협력할 경우 서로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결과가 나오지만 서로 믿지 못하고 개인 욕심을 앞세울 경우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P 사와 W 전기공업사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욕심 때문에 불리한 정보는 감추고 도리어 상대를 압박한다. 이 경우 당연히 정보를 감추는 회사가 더 많은 이득을 보게 된다. 서로 손해를 보는 협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쥐어짜는 협상이다. 그런데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양측이 모두 정보를 숨기고 속인다면 어떻게 될까. 양사는 자신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서로 버티고 힘 겨루기까지 하다 보면 둘 다 패자가 된다.
받고 싶으면 먼저 줘야 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P 사는 해군에 전기모터를 제때 납품하지 못하거나 W 전기공업사는 낮은 공장가동률에 재고 누적으로 고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먼저 ‘상호 호혜의 심리’를 활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상호 호혜란 거창한 것 아니다. 그냥 주고받기(give and take) 정도의 의미다. 예를 들어 동료가 커피를 사주면 다음에 자신도 커피를 한 잔 사야겠다는 마음의 빚이 생기는 것과 같다.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인류학자 카를 폴라니는 호혜의 대칭성을 강조한다. 혜택(benefit)이든 손해(harm)든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를 협상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정보공개도 상호주의에 입각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어느 한쪽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한다면 자신도 본능적으로 그 수준만큼 정보를 공개하려고 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아보자. 정보공개는 조심스럽고 상호적이며 점진적으로 진행하라는 것이다.
말이 좀 애매한가. 이렇게 해봐라. 약간의 위험을 부담하면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관한 정보를 일부 공개하라.
‘상대가 공개 안 하는데 내가 왜 하냐’고 버티지 말고. 만약 받고 싶으면 먼저 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라.
“저희 측 상황은 이렇습니다. 이제 귀사 측은 어떻습니까? 상황이 어떤지 얘기 좀 해주시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간이라는 단어다. 다 털어놓지 말고 조금씩 하라는 것이다. 협상에서 이런 말이 있다. ‘가져간 보따리는 한꺼번에 풀지 말라’는 말이다. 다행히 상대로부터 호혜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분위기는 좀 더 진전될 수 있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양측 간에 신뢰가 쌓일 것이다. 작은 믿음이 생기면 더 많은 정보가 양측 간에 공유될 것이다. 작은 믿음은 큰 믿음으로 이어진다. 자신들의 중요한 카드를 하나둘 협상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결국 나눌 수 있는 파이는 커지고 가치 창출의 기회는 넓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여전히 감추고 숨길 수 있다. 만약 정보공유를 기피하거나 심지어 악용하려 한다면 거기서 멈추라. 어떤 정보도 추가로 공개하지 마라.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
둘째 방법은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협상 자리에서는 조금 다르다. 솔직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요소나 민감한 정보는 감추려 한다. 물론 대놓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일부 정보를 누락시키거나 얼버무린다. 이때 노련한 협상가는 다르게 행동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상대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한다. 질문한다고 상대가 제대로 답변하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물론 끝까지 감추고 속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노련한 협상가는 물었던 질문을 기록해 둔다. 사람들은 답변을 하다 보면 질문의 요지를 잊기 때문이다. 특히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그러한 경향은 더 심해진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언급하거나 이것저것 빼고 얘기한다. 답변이 미심쩍을 경우 처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거꾸로 부정적으로 질문한다. “그게 정말 사실일까요”라는 식이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 감추고 속이는 비율이 그만큼 줄어들고 사실을 들을 수 있는 확률은 올라간다.
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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