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러 온 거 아닌데…죽음에 내몰리는 이주노동자
[주간경향] 그는 손으로 허공에 선을 그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내 인생 끝났어요.”
방글라데시 청년 자파(가명·37)는 2011년 처음 한국에 왔다. 소방설비 제조업체, 원단 염색가공업체, 철근 가공업체를 거쳐 2021년부터는 경기 안성시의 농기계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금속기계의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그라인딩 작업이 그의 일이었다.
“그라인딩할 때 철먼지가 많이 생겨요. 숨쉬기가 힘들어서 방진마스크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반장이 이렇게 말해요. ‘그냥 이걸(면마스크)로 해, 괜찮아. 아니면 나가.’”
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자파는 계단 오르는 것도 힘겨울 만큼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해 12월 폐가 딱딱하게 굳어 기능이 정상의 60%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간질성 폐질환)을 받았고, 대학병원에서 수술했다. 이후 산재 신청을 했지만 불승인 처분이 나와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조사를 나와서 제가 철먼지 마시는 일 얼마나 많이 했냐고 물었어요. (저에게 배정된 일감의) 80%는 철먼지를 마시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반장은 5%라고 했고, 그 사람들(근로복지공단 조사원)은 5%라고 적었어요. 그것 때문에 산재 안 됐다고 생각해요.”
자파는 산재 재심 결과를 기다리다 비전문취업(E-9) 비자가 만료돼 정기 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의료 수준으로는 다루기 어려운 질병이라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산재 인정 못 받으면 결국 고통스럽게 죽게 될 것”이라 말하는 그에게 18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화성 참사’는 남 일이 아니었다.
“우리 한국에 죽으러 온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하면 사고가 안 날지 알려줘야 하는데 안 해요. 대신에 ‘X새끼야, 빨리해’ 욕해요. 때리는 경우도 있어요. 한국 사람들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 안 해요. 동물로 생각해요.”
지난 6월 24일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리튬전지 공장 화재는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사회는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에 이주노동자들을 종사케 하면서 ‘생명 보호’라는 최소한의 안전관리마저 손을 놓았다. “죽으러 오지 않았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외침은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야만적으로 대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일하다 죽을 확률 3배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규모는 97만5000명(통계청·2023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여기에 41만9000명으로 추정되는 미등록자 수(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올해 3월호)를 합하면 한국의 이주노동자 규모는 13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주노동자가 죽음에 내몰리는 현상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었다. 국내 취업자 수(약 2891만명)로 미루어볼 때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 100명 중 4명은 이주노동자다. 그런데 지난 4년간 한국에서 산재 사고로 죽은 노동자의 100명 중 10명이 이주노동자였다(표 참조). 일하다 죽을 확률이 한국 노동자의 2~3배라는 얘기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길래 이토록 위험한 걸까. 2015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인도네시아인 라야(가명·32)의 사례를 보자. 그는 4년 전 정부가 연계해준 일자리인 금속주조 공장에서 도망쳐 ‘미등록’ 신세가 됐다. 이유는 다름 아닌 “살기 위해서”였다.
“뜨거운 금속이 금형(틀)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사람을 감지하는) 센서가 없으면 언제든지 금형이 닫힐 수 있어요. 손, 얼굴 다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그 공장에 센서 없는 기계가 있어서 수리해 달라 얘기해도 사장은 ‘일단 해봐, 일단 해봐, 조심조심’이라고만 했어요. 손 잘린 건 많이 봤고, 제 친구는 팔 위까지 잘렸어요. 다른 데 가고 싶다고 (근로계약 해지와 사업장 변경에 동의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 달라고 했지만 사장은 ‘사인 안 해준다,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했어요. 결국 미등록밖에는 (방법이)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미등록이 됐어요.”
방글라데시에서 온 손조이(32)가 2017년 금속주조 공장에서 겪은 일도 판박이다. “사장은 빨리하라는 얘기만 해요. 그런데 기계에 손 들어갈 수 있고, 사람 죽을 수도 있어요. 같이 있던 스리랑카 친구들이 얘기해줬어요. 저 오기 전에 여기서 사람 죽었다고”,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근로계약 해지 및 사업장 변경 동의를 요구했던 그에게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인 안 해줘. 다른 데도 똑같아. 어디 가든지 다 똑같아. 여기 있어. 일해.’ 손조이는 결근으로 사장과 맞섰고, 사장이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다행히 합법적으로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안전장치 고쳐 달라는 말에…“일단 해봐”
일터에서 도망친 라야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는 대신 일자리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이후 그는 브로커들을 통해 일자리를 구해왔다. 브로커 연락처는 인도네시아인 동료들이 건네주거나, 페이스북 등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근로계약서 쓰는 건 없고, 일단 월급은 주야간 일하면 이 정도다 이렇게 말해줘요.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하면 거기(브로커가 말해준 업체)로 가면 돼요. 그리고 브로커가 한 달에 (수수료로) 3%, 5% 잘랐어요. 10% 가져가는 사람도 있어요.”
23명의 사망자가 나온 화성 참사에서 ‘메이셀’이라는 업체가 유사한 방식으로 ‘아리셀’에 인력을 공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29일 화성 참사 희생자 임시분향소를 찾은 동료 노동자는 기자들에게 “우린 근로계약서도 쓴 적 없고, 인터넷으로 구인 공고가 떠서 연락해 몇 시까지 모이라는 말을 듣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업계에서는 너무 만연해 불법이라는 인식조차 희미한 ‘불법 파견’이 이런 식이다. 채용은 인력업체가 하지만 업무지시는 원청에서 받는다. 원청은 인력업체를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람을 받아 쓴다. 원청 입장에선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인력이라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할 이유가 부족하다.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또 온다
죽음에 내몰리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바꾸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단체들과 노조, 당사자 등의 진단을 종합하면 크게 두 가지 해결책이 절실하다.
먼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부터 풀어야 한다. 이번에 화재 참사가 발생한 리튬전지 공장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죽음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전문취업(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이 기계 고장 등 심각한 위험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일을 시키는 사례가 잦다고 토로한다. 화성 참사 발생 다음 날 대구 칠곡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사고가 전형적인 사례다. 콘크리트관을 제조하는 이 업체의 사장이 고정장치가 고장 난 크레인으로 거푸집을 옮기다가 뚜껑이 떨어져 네팔 이주노동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주변 노동자들이 크레인이 고장 났다며 말렸음에도 사업주가 무리하게 일을 강행하다 사망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7일 화성의 철골 자재 도장공장에선 지게차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지게차에서 떨어진 철재 더미에 깔려 사망했다. 이곳에서도 지게차의 철재물을 고정하는 줄이 풀려 사고가 일어났다. 안전장치만 정상 작동했어도 막을 수 있는 죽음들이었다.
안전장치가 미비한데도 이주노동자에게 ‘그냥 일하라’고 하는 현실에 대해 손조이는 이렇게 말했다. “너네 죽어도 다른 사람 또 온다는 거죠. 사장님들은 ‘너네 죽어도 나랑 상관없다’ 그런 느낌이에요.”
포천이주노동자센터의 김달성 목사는 “현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사실상 강제노동을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고용주가 고용허가 기간 연장 권한(3→4년 10개월)까지 갖고 있어서 이주노동자와 사업주 사이가 철저한 주종관계가 돼버린다”면서 “사업주가 절대군주인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위험하다’는 말도 감히 할 수가 없고, 산재 신청서를 썼다가도 사업주가 종용해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 센터 자료와 여러 연구 결과로 추정해볼 때 이주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은 80%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헛도는 안전교육
또 다른 대책은 중소 규모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지난 6월 24일 발생한 화성 리튬전지 공장의 첫 발화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노동자들은 배터리 상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맨손으로 옮기고 소화기로 불을 끄려 한다. 리튬전지의 특성상 분말소화기로는 불을 끌 수 없고, 연쇄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니 즉각 대피해야 한다는 점을 숙지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성 참사로 희생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로 발이 묶여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취업이 자유로운 재외동포(F-4) 비자, 방문취업(H-2) 비자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고용허가제의 이주노동자와 달리 일터를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노동시장 최약자인 이들을 받아주는 업체는 대개 안전관리에 손을 놓은 곳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최명선 민주노총 보건안전실장은 “‘안전교육이 이뤄지고 정보만 제공됐어도’라는 탄식이 나오는데 업체가 왜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자기 사업장의 위험이 뭔지 알고 그 위험에 맞춰 안전교육도 하고, 위급 시 매뉴얼도 만들 사람이 필요하다. 현재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안전관리자 선임 의무가 면제돼 있는데, 중소업체라서 사업장마다 1명씩 두기 어렵다면 산업단지 내 유사 업체들을 묶어 ‘공동안전관리자’를 고용케 하는 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향후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아리셀 수사에서 안전교육은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분향소를 찾았던 동료 노동자들은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비상구도 몰랐다”고 증언한 반면 아리셀은 “상시적으로 (안전) 교육을 하고 있다”(지난 6월 25일 박순관 대표 기자회견)고 주장한다. 내·외국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산업안전관리법은 사무직과 판매업 종사자는 1년에 12시간, 그외 노동자는 1년에 24시간의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일용직으로 고용됐을지라도 1시간은 안전교육을 받아야 하고,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면 별도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이주노동자들 인권침해에 대한 여러 소송을 이끌었던 최정규 변호사는 “사측에서 ‘교육이 충분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형식적인 교육은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왜 ‘불붙으면 도망가야 한다’가 학습이 안 됐을까 하는 점”이라면서 “법이 현장에서 작동을 안 하는데 노동부는 감독할 의지가 없다. 2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근로감독이 사업주 입장에서 무서울 리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부의 느슨한 관리·감독이 현장의 빈껍데기 같은 안전관리를 초래했다는 얘기다.
아리셀이 ‘위험성 평가’를 우수하게 했다고 인정받아 산재 보험료까지 감면받을 정도로 관련 제도가 헛돈 데 대해서는 “책임자 징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험성 평가는 사업주가 노동자 참여 하에 사업장의 무엇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따져 감소대책을 세우는 제도를 말한다. 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장을 지낸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위험성 평가를 정말 잘했다면 사측이 ‘위험 감소대책’을 세웠을 테고, 노동자들에게 ‘리튬전지 화재 때는 열폭주가 발생하니 빨리 대피해야 한다’면서 대피 방법 등을 제대로 알려줬어야 한다. 리튬전지 수만개를 한꺼번에 보관했을 리도 없다”면서 “위험성 평가 실적이 급급하다 보니, 안전보건공단이 실제로 업체가 잘했는지를 따져보지 않은 것 같다. 정부는 각성해야 하고 책임자 징계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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