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기지 앞바다 얼음덩이도 막을 수 없었던 이별
남극에서 배운 작별 인사
연구팀 떠나는 날 바다 위 장애물
유빙 헤친 조디악에 탑승 완료
소주·컵라면·오예스 등 ‘이별 선물’
기상 악화 대비한 비상식량으로
설날 저녁이 되자 내가‘월동 천사’라고 이름 붙인 월동연구대원 엠(M)이 독수리연을 준비했다. 각자 소원을 적어 남극 하늘에 띄우는 것이었다. 주식 대박, 건강한 월동의 완수, 연애 성공, 내면의 평화, 안전제일 같은 소원을 담고 독수리연이 남극 하늘로 날아올랐다. 남극에 모여든 기지 사람들은 다재다능한 이들이 많았다. 지구물리학을 전공한 월동 천사는 오랫동안 동굴 탐사를 해왔고 편집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으며 드럼을 쳤다. 연안생태팀의 ‘양 연구원’은 생물다양성 및 보전생태학을 연구한 박사이자 다이버 그리고 밴드 두 곳의 멤버였다. 적지 않은 곡들에 ‘19금’이 붙어 있는, 절규와 저항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헤비메탈 밴드였다. 그래서 한국의 집사람에게 그를 설명하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생물학자와 다이버와 헤비메탈 밴드 보컬은 도무지 한 사람으로 합쳐지기 어려운 코드였기 때문이었다.
‘빙원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아, 나는 또 다이빙 하는 분이 밴드를 하신다는 줄 알았지.” 나름 직장인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집사람은 말했다.
“다이빙 하는 분이 밴드 보컬이라니까.”
“밴드 보컬이 다이빙 하려고 남극까지 온 거야?”
“아니, 생물 연구를 하려고 왔다니까.”
그런 전인적인 사람이 놀랍게도 남극 기지에 있었고 나는 ‘f***’이 난무하는 밴드 음악을 들으며 “나갈 곳도 도망갈 곳도” 없다며 소리치는 이 가사는 혹시 현재의 기후 위기와 관련 있을까 상상했다.
저녁 메뉴는 쟁반짜장과 무려 유린기였다. 윤기 나는 면발과, 고소한 튀김옷에 둘러싸인 닭고기를 먹으며 엘(L) 박사가 “오늘 완전 치팅데이네!”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대체로 고열량 음식들로 식단이 짜여 있었으니 속속 도착하는 탄수화물과 지방이 우리 위장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일이면 떠나는 기상팀의 최 선생과 함께 기지를 산책했다. 카밀라 언니와 원파고 등 여럿이 같이였다. 최 선생은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 관측을 나갔다가 발목을 다쳐 다리를 절고 있었는데,가 아니라 대원들과 탁구를 치다가 부상을 입어 기지 닥터로부터 게걸음으로만 걸으라는 진단을 받은 상황이었다. 귀국길에 다친 것이 불편할 텐데도 내색 없이 기지 역사 박물관의 기록물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내후년쯤 장보고기지에 갈 계획은 있지만 세종기지는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눈에 공간을 담았다. 20여일이 지나면 나도 저런 이별 전야를 맞고 있겠지 하니까 마음이 스산해졌다. 다음날 비행기가 뜨는지는 저녁 8시 칠레 프레이기지에서 연락이 와야 확실해지는데 연착으로 며칠 더 함께 있었으면 싶기도 했다. 나머지 사람들도 가지 말고 같이 남자며 농담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초기 월동대원들의 관측기기와 생활용구들을 둘러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며칠 전 자칭 남극 플로깅을 할 때 주운 ‘영라면’ 봉지가 그 시절의 중요 기록물로 소장되어 있는 게 아닌가. 당황했지만 봉지는 이미 쓰레기로 처리돼 컨테이너로 반출되었을 거였다. 기지에서는 종이·나무·음식물은 소각기로 태우고 고철·병·캔·비닐·플라스틱 등은 칠레나 한국으로 옮기고 있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안타까워하며 조용히 다음 전시물로 넘어갔다. 세종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빙원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남극을 찾았을 초기 연구대원의 수첩이었다. 40여년 전 그는 한국에서 남극으로 오는 과정을 자세히 남겨놓았다. 자신의 하루하루가 언젠가는 나 같은 작가의 마음을 두근두근하게 만들리라 예견한 것처럼. 시간 단위로 기록한 수첩에는 여러 번 갈아탄 비행 여정뿐 아니라 그 비행기가 언제 어떻게 흔들렸는지 칠레 산티아고에 내려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사말을 건넬지 어떤 지도들을 한가득 챙겨 갔는지 적혀 있었다. 쓸 곳이 모자라면 호텔 메모지를 이용하기도 했다. “우리는 극지를 연구하고 있다. 휴머니티를 위해, 미래를 위해.” 그가 내다본 미래가 내가 있는 2024년의 2월이기도 하리라 생각하는 순간 중요한 연결선이 생겨나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벅차올랐다.
상추·치커리를 위한 바이올린 연주
박물관을 나와 농장 문을 열자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연습하다 벌떡 일어났다. 남극에 바이올린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청중이 농장의 상추와 치커리들이라니. 그는 옆새우를 연구하는 안 대원이었다. 우리가 한곡만 연주해달라고 조르자 그는 취미일 뿐이라며 겸손해하더니 비발디의 ‘봄’을 들려주었다. 기지의 식물뿐 아니라 되도록 많은 존재들이 그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인간이 발명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까, 우리가 자연을 향해 보내는 가장 근사한 친교의 신호이니까.
“전에는 안 대원이 박물관에서 연습을 했었거든요. 그걸 모르던 때에 완전 놀란 사람도 있어요. 지금은 쓰지 않는 옛 숙소 컨테이너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니까 혼비백산한 거죠.”
우리는 와르르 웃으면서도 여기까지 악기를 들고 온 안이 멋지다고 입을 모았다. 기지에는 다른 월동대원이 가져온 전자드럼, 전자피아노, 기타까지 있으니 다 같이 합주 한번 하면 너무 좋겠다고. 8시가 지나자 예정대로 비행기가 뜬다는 방송이 나왔다. 떠나는 사람은 안도의 탄성을, 남는 우리는 아쉬움의 탄성을 냈다. 카밀라 언니가 했던 말처럼 마음이 허전해져서 놀랐다. 며칠을 함께했을 뿐인데.
다음날 떠날 분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하며(오전 관측을 나가고 나면 가고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아침을 먹었다. 식당에는 기지에서 준비한 선물이 놓여 있었다. 컵라면과 오예스와 소주와 믹스커피였다. 오예스란 기지에서 정말 귀한 과자가 아닌가.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갔다. 한정된 간식을 먹으며 지내다 보니 그 흔한 과자가 별식처럼 느껴졌다. 그 선물은 비상식량이기도 했다. 조디악을 타고 바다 건너 공항에 갔다가도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대기소나 타 기지에 머물러야 할 때를 대비하는 거였다. 아쉬운 마음을 표하고 식당에서 나오니 마치 그 마음을 헤아리듯 특별한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기지 안으로 불쑥 들어온 그는 턱끈펭귄이었다.
“너 여기서 뭐 해?”
내가 물었지만 멋진 붓꼬리도 없는 인간쯤은 무시한 채 턱끈펭귄은 보트동 앞을 지나 기지 앞마당까지 들어섰다. 혹시라도 길을 잃을까 싶어 얼른 막아섰다.
“그만 가, 이쪽은 바다가 아니거든.”
그러자 턱끈펭귄은 앞날개를 사선으로 뻗으며 소리를 꽥 질렀다. 부리도 날개도 꼬리도 없는 주제에 감히 나를 가로막다니 불쾌해하는 듯했다. 엘 박사가 내게 턱끈펭귄과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나는 어색하게 포즈를 취했다. 그 잠깐 사이에 약간 성질머리 있어 보이는 녀석이 다리를 쪼지 않을까 염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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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곳 ‘세종곶’
짐을 챙겨 우리는 다시 우리의 일상을 살기 위해 나섰다. 홍 선생과 함께 온도와 수분 센서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완전히 병든 것과 반만 병들어 있는 것 그리고 건강한 것들로 나누어 낫깃털이끼의 생장 환경을 확인해볼 계획이었다. 실험실로 가져가기 위해 비슷한 조건의 낫깃털이끼들을 토양까지 떠서 채취했다. 센서를 설치한 뒤 남극좀새풀 밭으로 가서 관측 데이터를 다운받고 장비 배터리를 갈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홍 선생과 동행한 건 작업에 터프북(Toughbook)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터프북은 사막이나 극지 같은 가혹한 환경에 견딜 수 있게 제작된 고가의 노트북 컴퓨터였다. 연구대원들 중에서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세종기지 앞바다를 유빙이 뒤덮고 있었다. 이대로는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기 위험하다고 했다. 포클레인으로 치워보려고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혹시 오늘 떠나지 못하게 되는 건가! 하지만 기지 대원들은 유빙을 헤치고 조디악을 남쪽으로 몰고 가 ‘세종곶’에서 사람들을 태웠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쪽으로 열심히 걸어가는 뒷모습만 보였다. 카밀라 언니가 배웅을 위해 함께 가고 있었다. 그 뒷모습에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반 정도가 빠져나가자 기지가 텅 빈 듯 느껴졌다.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연구동 1층에 모여 앉았다. 수십번 남극해를 다이빙한 관록의 해양 조류학자 고 연구원과 그 메이트인 양, 안, 식생팀 전부와 대기연구팀까지 모여 커피를 마셨다. 양과 고 연구원이 핸드밀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고 필터로 내려 각자의 앞에 놓아주었다.
“이제 아무도 먼저 나가기 없기예요.”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우리 모두 나가고 나면 월동대원들 마음도 허전하겠어요.” 또 누군가 말했다. 우리는 저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커피는 맛있고 따뜻했다. 지금은 지금이고 그때는 또 그때에 알맞은 작별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글·사진 김금희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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