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통선 사람들] ③ 장엄한 임진강에 배 띄우고 황복·참게·장어 잡는 어부

최재훈 2024. 7. 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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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출입 통제에 황금어장된 임진강…서울과 가까워 판매 용이
장석진 파주 어촌계장 "임진강에는 여러 기회가 있다"

[※ 편집자 주 =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이 설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민통선을 넘는 것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엄격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민통선을 넘나들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획 기사 10꼭지를 매주 토요일 송고합니다.]

(파주=연합뉴스) 최재훈 기자 = 지난달 10일 장석진 파주 어촌계장을 만나기 위해 임진강 포구로 가는 데는 군사 경계시설을 통과해야 했다.

파주 어촌계 장석진 계장 [촬영 임병식 기자]

철조망을 지나 들어간 포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곳 특유의 적막함과 함께 바닷가 어촌 같은 소금기 냄새가 났다.

장 계장이 전날 설치한 그물에 걸린 고기는 숭어. 보통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라고 인식되지만 강으로도 자주 올라오는 기수 어종이다.

숭어는 바닥을 훑으며 먹이 활동을 해서 회로 먹으면 특유의 흙내가 나는데, 임진강 바닥의 좋은 뻘의 영향으로 임진강 숭어는 육질이 좋다고 한다.

장 계장은 "임진강은 민물이지만 이곳은 바다와 강물이 섞이는 기수 지역이어서 다양한 어종이 잡힌다"고 설명했다.

임진강 조업 [촬영 임병식 기자]

육질 좋은 임진강 숭어 회 한 점을 맛보거나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숭어는 이미 떠난 뒤였다.

새벽에 거둬들인 그물에 잡힌 숭어는 활어 상태로 해가 뜨기 전 서울 노량진 시장으로 가 전량 도매로 팔렸다. 차가 없는 시간이라 파주 임진강 산지에서 노량진까지 1시간이면 넉넉하다.

"주 소비지인 서울과 가까운 점은 확실히 생선 선도에는 강점"이라고 장 계장은 말했다. 그는 이날 새벽 조업만으로 숭어 수백㎏을 잡아 꽤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올해 60세인 장 계장은 서울 소재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회사 생활과 사업을 하다가 1990년대 말 고향인 파주에 정착하며 어부 일을 시작했다.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고요한 접경지 자연 속에서 일하는 순박한 어부보다는 재기발랄한 사업가 혹은 호기심 많은 과학자에 가까웠다.

"임진강에서는 고부가가치 어종이 계절별로 다양하게 잡혀 아이디어만 있으면 농업보다 적은 자본으로 돈을 벌 기회가 많습니다."

이날 숭어 그물에 '손님 고기'로 잡힌 임진강 황복을 보니 장 계장의 임진강 자랑이 피부에 와 닿았다. 황복이 많이 잡히는 산란기는 봄철. 이날 늦깎이 황복이 숭어 그물에 걸려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황복 [촬영 임병식 기자]

귀한 식재료로 유명한 황복을 먹으려면 한 마리에 최소 십수만원을 쓸 각오를 해야 한다. 돈이 있다고 언제든 먹을 수 있지도 않다.

숭어와 함께 웅어도 한가득 잡혔다. 멸치를 확대한 것 같은 모양의 웅어는 맛이 좋아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갔다고 한다.

군사 접경 지역에서의 어업이 순탄치만은 않다. 조업 대상지는 대부분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이어서 군의 출입 통제를 따라야 한다.

기상 여건이 조금만 안 좋아도 군은 안전상 이유로 출입을 통제해 불편함이 있다.

남북 관계가 안 좋아지면 통제도 더 강해진다.

거기다 장마철 북한 황강댐에서 방류라도 하면 수온이 급격히 변해 고기들이 사라진다. 방류 물살에 어구가 떠내려가기도 해 남북 정세 관련 뉴스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월북 등 불의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배의 크기나 성능도 제한된다. "성능 좋은 배를 운영하고 싶고 자본도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며 "긴급하게 강에 나가 대응해야 할 상황이 생겨도 군사 지역이라 대응을 잘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장 계장은 설명했다.

웅어를 옮기는 장석진 계장 [촬영 임병식 기자]

이런 군사적 엄격한 통제는 임진강의 환경과 어족을 보호한다. 출입 통제가 엄격해 다른 지역 강이나 바다에 비해 환경 오염이나 남획, 진상 낚시꾼의 위험 등이 없는 편이다.

봄에는 황복, 여름에는 숭어나 뱀장어, 가을에는 참게가 고수익 돈벌이며 기수 지역이라 민물과 바다 어종이 동시에 잡힌다.

내륙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쏘가리 등 민물 낚시꾼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 어종들도 많이 잡힌다. 이렇게 잡힌 민물고기에 참게를 더해 국물을 낸 매운탕은 파주 임진강 지역의 명물이며 주말에는 서울 등 타지에서 온 손님도 많이 찾는다.

장 계장은 임진강 어족들을 활용할 방법 연구에도 부지런하다. "내가 파는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리는 것이 기본"이라는 그는 임진강 어종의 식생, 특성과 상품화 가능성 등을 끊임없이 탐구한다.

과거 어른들의 말씀에 착안한 연구 사례도 있다. "예전에 부모님이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꼭 참게장 한 숟갈을 먹게 하셨다"는 장 계장은 조상의 말씀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대학에 임진강 참게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그는 "연구 결과 참게의 내장과 껍질 등에 항균과 면역력에 효과 있는 성분이 다른 게보다 훨씬 많았다"며 "참게를 먹으라고 한 것은 상갓집에 있을 수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 독성을 없애기 위한 조상의 지혜였다"고 말했다.

장 계장을 비롯한 파주 어촌계에서는 또 웅어나 황복 등 어종을 소비자가 쉽게 접하게 하기 위해 밀키트화 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그는 "웅어는 중국에서 제사상에 올라갈 정도로 인기가 많고 비싸다"며 "판로만 개척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진강 [촬영 임병식 기자]

장엄한 임진강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하게 한다. 거기에 철책이 둘러싸인 접경지 특유의 분위기가 더해져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을 자아낸다.

장 계장은 "임진강은 관광지로도 매력적인 곳"이라며 "많은 어민이 어업과 함께 관광지 숙박 시설이나 식당을 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통선 내 어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어업권이 필요하다. 어업권과 정착을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지만, 어업 후계자 지원 제도 등을 활용할 수 있다.

그는 "접경지의 삭막한 이미지 때문에 일반인들이 꺼리긴 하지만 임진강에는 여러 기회가 있다"며 "임진강 어업과 관광업이 파주시를 먹여 살리는 대표 산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hch79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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