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보호? 주주부터 대접하라 [자본시장 이야기]

이관휘 2024. 7. 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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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경영권 방어는 주주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지배주주 일가의 지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경우가 대다수다. 일본은 정책주를 규제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유도하고 있다.
2023년 3월31일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제41기 주주총회 회의장에 한 KT 주주가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한 기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주주, 즉 지배주주는 대주주여야 할까, 아니어도 될까? 다시 말해 대주주가 아니라도 지배주주가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가능하다. 지배주주들의 이해를 보호하는 여러 ‘장치’들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법률로 보호되는 합법적 장치들이다.

그런 장치 중 하나가 ‘자사주’다. 회삿돈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우호 세력이 보유토록 하면 낮은 지분만으로도 지배주주의 지위를 지킬 수 있다. 두 회사가 각자의 자사주를 맞교환해 보유할 수도 있다. 상호 간 주식 보유, 또는 ‘상호주’를 통해 서로 상대 회사의 주주가 되는 셈이다. ‘주식을 상호 보유하면 사업을 다각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전략적 제휴 및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자주 인용되는 상호주 보유의 긍정적 효과다. 그러나 사실 지배주주의 지위가 위협받을 때 서로 백기사 역할을 하기로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것이 주된 목적인 경우가 대다수다.

경제개혁연구소(ERRI) 이은정 연구위원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자사주를 이용한 상호주 형성 사례는 모두 33건이었다. 이 33건 중 21건이 최근(2020~2022년)에 집중되었다. 거래 규모로는 네이버-KT-삼성물산-고려아연 등의 순이었다. 이들은 경영진의 지분율이 낮거나 지배권 분쟁으로 인해 우호 지분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회사들이었다.

다른 주주들은 해당 기업에 ‘성과(배당과 주가 상승)’를 기대한다. 그러나 지배주주들은 보유 주식으로부터 얻는 배당수익이나 주가 상승에 딱히 관심이 없다. 더욱이 다른 수익성 높은 프로젝트나 연구개발 등에 쓰일 회삿돈이 주식 보유에 쓰이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하락할 수 있다. 단지 우호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 자산을 사용했다면 배임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재벌’의 원조 ‘자이바쓰’의 탄생

상호주 보유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경영진(지배주주)은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기거나 혹은 상대 회사와 상호주를 보유하는 방식으로 더 안정적(?)인 지배권을 얻어 자신의 이해관계에 주주의 부(富)를 종속시킬 수 있다. 이는 ‘대리인 문제(경영진 또는 지배주주가 일반주주의 부를 착취하는 문제)’가 더욱 확대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도요타는 지난해 2500억 엔 규모의 KDDI 주식을 KDDI에 재매각했다. 사진은 도요타 본사.ⓒKyodo News

2023년 KT 정기 주주총회(주총)에서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은 KT와 네이버가 보유한 상호주가 서로 간 우호 지분으로 악용되어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경고하며, 상호주 취득 시 주총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주주 제안을 가결시켰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제어하기 위해 상법 369조(의결권) 3항은 회사 A가 회사 B 발행주식 총수의 10%를 초과해 보유하는 경우, 회사 B가 보유한 A 주식의 의결권이 소멸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호주를 통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기 위한 조항이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10% 이하라면, 마음대로 상호주를 보유해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2년 9월, KT는 자기주식 7459억원(7.7%)어치를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현대자동차와 모비스는 각각 자기주식 4456억원(1.04%)과 3003억원(1.46%)어치를 KT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주식을 상호 보유했다.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상호 보유한 주식들을 ‘정책 보유 주식(이하 정책주)’이라고 부른다. 일본 금융 당국은 정책주를 오랫동안 꾸준히 규제하며 그 보유 규모를 줄여왔다. 2014년 4월 도입된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이사회가 정책주의 목적과 적절성을 검증하고 이를 설명토록 하고 있다. 최근에는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은행권을 포함한 기업들이 정책주 보유를 줄이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최근 일본 자본시장이 오랜 부진에서 벗어나면서 한국 언론들로부터도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은 일본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정책주 감소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현재 일본 자본시장에서 핵심적 이슈의 하나다. 규제 성과는 상당하다.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사들의 전체 시가총액 대비 정책주 비중은 1991년 50.7%였으나 점점 하락해 2022년에는 11.7%까지 떨어졌다. 1990년대 초 증시 거품 붕괴 이후 주가 부진으로 금융기관들이 보유 정책주들을 적극적으로 매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꾸준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4대 손해보험사(도쿄해상, 미쓰이스미토모해상, 아이오이닛세이손보, 손보재팬)들은 올해 금융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6조5000억 엔(약 58조원) 규모의 보유 정책주를 수년에 걸쳐 모두 팔기로 했다. 금융권뿐 아니다. 지난해 여름, 도요타는 보유하고 있던 2500억 엔 규모의 KDDI(NTT에 이은 일본 2위의 민간 통신회사) 주식을 KDDI에 재매각했다.

일본 기업들에서 정책주 보유의 역사는 1868년 메이지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의 혁신 세력은 막부(오랫동안 일본을 통치했던 무가 권력)에 대항해 왕정을 복구하면서 중앙집권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서구 열강을 따라잡기 위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을 시행했다. 메이지유신은 특히 이미 에도 시대(도쿠가와 막부가 지배하던)부터 존재하던 소위 ‘4대 재벌(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이 급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이들은 창업자 일족이 최상위에 위치하는 지주회사 형태였다. 정치권력과 밀착해 비즈니스를 하는 데 유리한 지배구조였기 때문일 것이다. ‘재벌’이라는 단어의 원조가 되는 ‘자이바쓰(財閥· 일본의 옛 대규모 기업집단)’는 이런 배경에서 태어나고 강화되었다.

2차 대전 종전 후 일본에 진출한 연합군은 자이바쓰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이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책 목표는 일본의 비군사화와 함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심는 것이었다. 1945년 11월 유엔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는 ‘지주회사 해체에 관한 각서’에서 재벌 해체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지주회사 해체’ ‘재벌 가족의 지배력 축소 및 배제’ ‘경영진 교체’ 등이었다.

유엔이 설치한 ‘지주회사정리위원회’는 재벌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인수한 후 이를 다시 매각, 처분했다. 재벌 일족이나 1% 이상 보유 주주에겐 팔지 않았다. 1947년에는 지주회사를 금지했고, 이듬해 1948년에는 ‘재벌동족 지배력 배제법’을 제정해 재벌 가족 및 이들과 관련된 주요 재벌회사의 임원들을 추방했다.

이러한 일련의 강력한 조치들로 인해 기업들에서 지배주주가 사라지게 되었다. 재벌과 그 가족이 보유했던 주식들은 자본시장으로 유입되었다. 기업들은 자금조달을 위해 대규모 증자(주식을 팔아 자본을 확충)를 시행했는데, 이 또한 재벌 이외 투자자들이 재벌의 주식을 확보할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재벌 외부 세력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실행하는 데 용이한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재벌들은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3자에게 할당하고, 금융기관들이 지분을 확보토록 했다. 기업들은 서로 증자된 주식을 인수하면서 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정책주 보유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945년 9월2일 미국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 외무 장관 시게미쓰 마모루가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다.ⓒUnited States Navy

미국은 1950년 전후 중국의 부상과 한국전쟁 발발로 국제정세가 바뀌자 일본의 재벌 해체 전략을 대폭 수정하게 된다.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에서 반공의 기지로 삼기 위해서는 그 경제력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재벌 해체 관련 여러 법규들이 폐지되고 독과점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그리고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일본과 48개 연합국이 맺은 전쟁 종식 및 평화조약) 발효를 기점으로 옛 재벌계 기업들이 다시 통합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쓰비시상사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재탄생은 상징적 사건이다.

주식 상호 보유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새롭게 탄생한 기업집단에서 주거래 은행이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동일 계열의 기업들이 제3자가 보유했던 자사주나 금융기관 보유 주식을 재인수하는 과정에서 은행으로부터 주식 매입 자금을 빌려야 했는데, 이때 은행이 주도적으로 기업들이 매입할 주식을 할당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기업집단체제를 ‘게이레쓰(系列)’라고 불렀는데 자이바쓰와는 다음의 측면에서 달랐다.

게이레쓰는 지배주주가 없고 전문경영인들이 회사를 운영하는, 다시 말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형태의 기업집단이었다. 자이바쓰가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총수 일가가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체제였음에 비해, 게이레쓰는 기업들끼리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수평적 결합으로 맺어졌다. 또 은행이 동일 계열 내 기업들의 지분을 어느 정도 보유하는 것이 허용된 점도 게이레쓰만의 특징이다. 은행은 전통적으로 채권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게이레쓰에서는 주주로서의 위치까지 함께 갖게 된 것이다.

최근엔 흐름이 바뀌었다. 정책주 감소가 외국자본이 일본 기업들에 투자를 확대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주가 해소되면 그만큼 유통 주식 수가 늘어 외국인 등 다른 투자자들이 해당 주식을 매입하기에 유리하다. 주주행동주의의 확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최근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나 ISS는 기업들이 상호 보유한 정책주가 순자산 대비 10% 또는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사 선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경영권을 보호하는 방법

글로벌 투자자들은 정책주 감축을 거버넌스(기업지배구조)를 넘어 일본 시장의 신뢰성과 국제 경쟁력 관련 이슈로 본다. 정책 당국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 이슈가 이상할 정도로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자사주나 상호주까지 규제하면 무엇으로 경영권을 보호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벌써 들려오는 것 같다. 일본은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미국 자본시장에서 허용되는 경영권 방어 장치를 대부분 갖추고 있으니 정책주를 줄여도 경영권을 지킬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새겨들을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일본 시민이 6월18일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앞에 있는 닛케이 평균주가지수 전광판 앞을 지나고 있다.ⓒAP Photo

다만 한국 기업들의 방어책은, 능력 있는 경영진이 안정적으로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저 지배주주 일가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꼼수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안정적인 경영권 보장이 ‘주주들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여은정, 이윤석 연구위원의 2009년 발표 논문에 따르면,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이미 안정적으로 지배권이 확립된 기업이 상호주를 보유하면, 시장에서도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기업가치가 높아진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여은정 위원이 2008년에 발표한 또 다른 연구의 결과도 흥미롭다.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낮은(기업 소유가 분산되어 있는) 경우, 상호주 보유 확대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받아들여져 기업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지배주주 지분이 높은 경우엔 상호주 보유가 사업 다각화 및 네트워크 강화 등을 위한 긍정적인 것으로 해석되어 기업가치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심오하다. 시장은 상호주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책으로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차이는 해당 기업의 주주들이 어떻게 대접받을 것으로 기대되느냐에 달려 있다.

안정적 경영을 위한 경영권 방어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지배주주들이 해온 일을 생각하면 고개를 쉬이 끄덕일 수가 없다. 팀 쿡이 2011년부터, 제이미 다이먼이 2006년부터 지금까지 각각 초거대 기업인 애플과 제이피모건체이스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하고 있는 이유가 경영권 보장책 덕분은 아닐 터이다. 그보다는 이들이 최고 수준의 경영 능력을 가진, 주주들의 신뢰를 듬뿍 받는 능력 있는 경영자이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 지표인 PBR(주가-순자산 비율)이 1 미만인 기업들이 너무 많다고 한다. 이 지표가 1보다 낮다는 건 영업을 중단하고 기업이 가진 모든 자산을 지금 당장 내다 팔아버리는 쪽이 ‘계속기업’으로서의 가치보다 더 높다는 이야기다. 거버넌스 전문가인 나의 동료 교수는 어떤 중견기업 대표 때문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대표가 ‘낮은 주가가 뭐가 문제냐. 도대체 주가를 왜 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이야기에 경악했다. 그렇다면 PBR이 1도 안 되는 회사의 지배주주나 경영진을 보호해줘야 하는 이유는 뭔데? 이 또한 아마도 꽤 극단적인 생각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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