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봄, 폭설 내리더니 과일나무가 타들어갔다 [전국 인사이드]

박서화 2024. 7. 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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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평창에 걸친 대관령 일대, 한반도의 척추를 가로지르는 강원 산간지역에 지난 5월15일 갑작스러운 눈이 내렸다.

양돈 농가가 밀집해 있는 강원 접경지역에서는 지난 5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또다시 발생했고, 중부지방 과수 농가에는 농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재해인 과수화상병이 유행 중이다.

강원 지역 내에서만 보면 5월21일 철원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고, 사흘 뒤인 5월24일에는 홍천의 한 배 농가가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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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5일 강원도 대관령 일대에 폭설이 내려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김봉래 제공

강릉에서 평창에 걸친 대관령 일대, 한반도의 척추를 가로지르는 강원 산간지역에 지난 5월15일 갑작스러운 눈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아닌 ‘화이트 석가탄신일’에 농민도, 이웃들도, 재난 당국도, 모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끝없는 산자락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대관령 산간지방 일대는 배추와 무 주산지이자 이른 봄이면 산나물 농사가 한창인 곳이다. 눈이 내리던 그 전날까지도 이곳에서는 봄을 맞아 산마늘과 곰취, 두릅 농사가 한창이었다. 파릇파릇하던 산나물 잎은 5월 중순에 내린 폭설로 모두 까맣게 죽어버렸다. “이제 다 끝났어. 되살릴 방법이 없어.” 안반데기 일대에서 농사를 짓는 김봉래씨(58)는 절망스럽게 말했다.

기후 부정의, 기후위기에 극히 미미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기후위기로 인한 큰 재앙을 감당하는 현상. 지금 농촌은 ‘기후 부정의’ 시대 속에 있다. 양돈 농가가 밀집해 있는 강원 접경지역에서는 지난 5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또다시 발생했고, 중부지방 과수 농가에는 농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재해인 과수화상병이 유행 중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2019년에, 과수화상병은 2015년 첫 발생 당시 반짝 눈길을 끌었으나 이제는 관심의 비중과 빈도 모두 이전만 못하다. 반대로 농촌에서의 근심거리는 커져간다. 비단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과수화상병만 문제가 아니다. 매년 집계도 되지 않고 병명조차 알 수 없는, 그러나 식물과 동물을 병들게 하고 농사를 어렵게 하는 새로운 위기가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다. 강원 지역 내에서만 보면 5월21일 철원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고, 사흘 뒤인 5월24일에는 홍천의 한 배 농가가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6월 현재까지 횡성·원주 등 영서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과수화상병이 잇따라 번지는 중이다.

‘금채소’ 뒤에서 미소 짓는 주범

동물 질병을 관할하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기후변화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2022년 발표한 바 있다. 바이러스를 실어 나르는 주요 감염원인 야생 멧돼지의 개체수를 증가시킨다는 점이 가장 직접적 요인으로 꼽혔다. 이 ‘멧돼지’를 통한 전파는 한국 농장에서 발생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주된 감염경로이기도 하다.

토양과 기상이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식물 감염병에서도 기후위기는 주요 원인이다. 과수화상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매년 따뜻해지는 겨울을 틈타 과수 속에 숨어서 겨울을 난다. 날씨가 더워지는 늦봄이면 과수를 불에 탄 듯 까맣게 감염시키고, 거센 비가 쏟아지는 여름엔 인근 지역 곳곳으로 퍼지곤 한다. 이뿐일까,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밭 농업이 중심인 강원 지역 소농에게는 고추와 오이 등에서 유행하는 탄저병과 토마토 모자이크 바이러스도 큰 골칫거리다. 사정 모를 도시민들은 비싸진 채솟값을 두고 ‘금채소’ 운운하지만, 금채소 뒤에서 미소 짓는 주범은 기후위기다.

위기는 언제나 일상에 숨겨진 권력구조를 드러낸다. 지금 기후위기가 덮친 농촌에는 무관심과 불평등, 그리고 보상받을 길 없는 농민의 삶이 남았다. 근심 가득한 농민의 눈동자 위로 도심 빌딩에서 펑펑 쏟아지는 에어컨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송전로가 보인다. 글로벌 자본주의 속 서울공화국은 기후 부정의를 땔감 삼아 오늘도 건재하다. 당신의 일상은 안온하신지 나는 무척 궁금하다.

박서화 (〈강원일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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