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디스트 윈터』 핼버스탬 “미국의 최대 실수는 중공군 고려 않고 압록강까지 진격한 것” [김용출의 한권의책]

김용출 2024. 7.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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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치명적이었고 고통스러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적군의 대규모 공격과 참기 힘든 추위 때문에 참전 부대원들은 이중으로 고생했다고도 했다. 베트남에서 만난 남베트남 공군 제9사단 고문관 프레드 래드 중령은, 자신이 참전한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중공군에게 기습 공격을 당하면서 예상보다 더 힘들어졌다고 회고했다.

인천상륙작전을 지켜보는 맥아더(오른쪽 두 번째)
중공군이 한국전쟁 안으로 육박해 들어온 순간의 이미지가 좀처럼 잊히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뒤에도, 1950년 11월과 12월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일을 듣고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했다. 1963년,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한국전쟁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겠다고 생각했다. 책은 래드가 그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날로부터 무려 44년이 지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최고의 엘리트들이 집단 사고에 갇힐 경우 어떠한 치명적인 오류와 실수를 범할 수 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준 『최고의 인재』로 유명한 탐사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책 『골디스트 윈터』(정윤미 이은진 옮김, 살림)에서는 ‘잊힌 전쟁’ ‘잘못 이해된 전쟁’ 등으로 불린 한국전쟁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더글라스 맥아더를 비롯해 당시 미국 수뇌부의 공과, 오판과 실수를 추적한다.

작가는 이를 위해 미국 전역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는 등 30년 넘게 취재와 구상을 이어갔고 10년 동안 집필했다고 한다. 책의 진가는 ‘감사의 말’에 실린 인터뷰 대상자 목록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알렉산더 헤이그 전 국무장관과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를 비롯해 무려 130명에 이른다.

한국인 모두 아시다시피, 한국전쟁은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 8개 사단이 일제히 38선을 넘으면서 발발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한국군과 유엔군은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면서 전황을 역전시킨 뒤 북진을 이어간 끝에 압록강 부근까지 이른다. 하지만 10월 하순 중공군의 참전으로 다시 뒤집힌 뒤 1951년 1월4일 서울까지 빼앗긴다. 전열을 가다듬은 국군과 유엔군은 3월 15일 다시 서울을 회복했고, 이후 전황은 교착상태에 빠진 뒤 긴 협상 끝에 1953년 7월 27일 휴전했다.

책은 중공군의 전격적 참전으로 대규모 국제전쟁을 비화하고 이후 재조정을 통한 전황이 팽팽하게 고정되는 상황과 과정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과 전쟁의 주요 국면 등을 추적해 한국전쟁의 가장 극적인 순간과 그 의미를 포착해 보여준다. 15년만의 전면 개정판.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책은 미군에게 특히 가혹했던 1950년 10월과 11월 그날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운산 전투는 맥아더에 대한 중국의 경고였다

“압록강이다!” 1950년 10월 하순 마침내 압록강에 도달한 백선엽 장군의 부대원들이 소리쳤다. “드디어 압록강이다.” 바로 그 10월25일, 이미 한반도에 은밀하게 잠입해 있던 중공군이 보급선도 확보하지 않은 채 북쪽 깊숙이 진격한 한국군과 유엔군 부대를 전격 공격했다.

좌측에 있던 한국군 제1사단 20연대가 타격을 받았고, 백선엽이 이끄는 제15연대도 무섭게 퍼붓는 박격포화 때문에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이어서 사단 예비대인 제11연대 역시 측면에서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을 당했다. 백선엽은 즉각 사단 전체를 운산까지 후퇴시켰다.

교전 첫날 연대 예하 부대에서 포로 한 명을 사로잡았는데, 놀랍게도 중공군이었다. 30대의 광둥 지방 출신 정규 공산군으로, 두꺼운 누비로 만든 군복을 입고 있었다. 한쪽은 카키색이고 다른 쪽은 흰색인 양면 군복이었다. 두껍고 무거운 귀마개가 달린 모자를 쓰고 고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포로는 인근 산악에 수만 명의 중공군이 있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백선엽이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고, 미 군단장 프랭크 밀번이 포로를 다시 심문하고 백선엽이 통역했다.

“어디 출신인가?”

“중국 남부에서 왔다.”

“소속 부대는?”

“39군.”

“전투 경험은?”

“국공 내전 때 하이난 섬 전투에 참가했다.”“중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인가?”

“아니다. 중국인이다.”말번은 즉각 제8군 사령부에 새로운 사실을 보고했고, 8군 사령부는 이를 더글라스 맥아더의 핵심 정보참모 찰스 윌러비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압록강 북쪽에서 중공군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다는 최초 보고도 무시했던 윌러비는 중공군 포로의 진술도 거짓으로 꾸몄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뛰어든 사실은 분명해졌다.

11월1일, 중공군이 나팔을 불면서 운산으로 후퇴한 한국군 제15연대와 미 제8기병연대를 공격했다. 중공군은 사방에서 포격과 총탄을 쏟아내면서 미군과 한국군 진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중공군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누가 지휘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전투가 종료됐을 때 미 8기병연대는 병력 2400명 가운데 8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탱크 9대와 트럭 129대 등 많은 장비를 잃었다. 유엔군은 청천강 반대편 진지로 물러나 중공군의 2차 공격을 대비했다. 하지만 중공군은 출몰했을 때와 똑같이 불가사의하게 사라져버렸다.

“한국전쟁은 소규모 전쟁이 대규모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던 미 극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사격이었다.”(24쪽)

생경한 추위에 떠는 미군
●“맥아더,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북진 거듭”

저자는 맥아더가 태평양 전쟁 승리의 주역, 인천상륙작전의 기적 등 많은 성취에도 미국과 한국전쟁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판한다. 즉, 그는 중공군의 참전 가능성을 줄곧 경시했고, 대규모 중공군이 참전했을 때에도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위기를 맞았으며, 중국 본토 공격이나 대만의 장제스 군 활용, 심지어 핵무기 사용까지 주장하는 등 무리한 작전을 주장하며 미국을 위협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중공군이 참전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면서 압록강까지 적군을 추격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맥아더의 부대는 압록강 근처에서 아무런 지원 없이 처절하게 싸우다 패배하고 말았다.”(970쪽)

특히 책의 후반부에는 맥아더의 해임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 의회 청문회에서 보인 맥아더의 발언과 태도, 미군 주요 인사들의 증언들, 청문회 결과들은 실로 충격적이다. 맥아더와 그를 지지하던 공화당의 예상과 달리, 맥아더는 청문회를 통해서 대중의 스타가 아닌 복잡한 세상에서 자기기만에 빠진 군인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장교들 역시 맥아더가 상부의 명령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중공군이 개입했을 때에도 자기 책임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고 군에 대한 정부의 권위에도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946쪽) “(조지) 마셜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맥아더와 행정부 사이의 갈등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깊은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사사로운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고 지적했다. 전역사령관이 자신의 권한이 한층 줄어든 데 불만을 품고 상부에서 내린 명령을 거부한 결과라는 말이었다.”(949쪽)

“이번 청문회는 미국 시민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북잡한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교육의 장이었다. 정부가 공산주의 세계에 대한 더욱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제서야 정부 정책의 의중을 파악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학습 과정은 반대 세력을 확실히 넘어뜨릴 기회라 확신하고 청문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공화당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였다.”(951쪽)

동료 군인을 위로하는 미군
●오판 초래한 ‘에치슨라인’... 스탈린도 오판

한국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애치슨 라인’에도 비판적이다. 즉, 극동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이를 대외에 공포함으로써 김일성과 스탈린을 자극하고 오판을 초래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산 진영에 너무나 위험한 신호를 준 꼴이었다.”(78쪽) “미국은 극동방어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킴으로써 다양한 공산주의 세력이 행동을 개시하도록 자극했다. 결국 소련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략해도 좋다고 허락했다.”(970쪽)

미국과 중국이 싸우도록 한 스탈린 역시 오판했다고 지적한다. 즉, 스탈린은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오판했고, 중국을 도와주지 않으면서 앙금이 쌓여 나중에 중소분쟁에 영향을 줬으며, 특히 미국이 안보를 중시하는 대외전략으로 선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김일성 역시 미국이 참전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잘못 판단했고, 남한에서 농민들이 봉기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저자는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의 입맛에 딱 맞았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승만 정부는 형편없고 부패하고 무능력했다고 비판한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대해선 우호적이다. 트루먼은 얼핏 보기에는 대학도 나오지 않고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방대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애서가에, 진정성이 있었으며, 결단할 때는 단호히 결단하는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휴전협상의 모습
●역사에서 결국 인간이 중요하다고 본 핼버스탬

저자인 핼버스탬은 소설 『고상한 로마인』과 베트남전을 다룬 논픽션 『최고의 인재』를 비롯해 모두 21권의 저서를 남긴 탐사논픽션의 대가였다. 사건과 사람 사이에 숨겨진 연결고리를 추적했고, 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그 의미를 들려주려 시도했다. 퓰리처상 수상작가 러셀 베이커의 이야기다.

“개인을 중시했던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려면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쏟아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핼버스탬은 사람과 사건 사이에 숨겨진 연결 고리를 찾아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종 우수한 인재를 지도자로 세우고 높은 야망을 가진 나라가 왜 종국에는 수렁에 빠지고 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역사의 발전에는 항상 인간이 중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연히 인물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발문> 중에서, 1026쪽)

이를 위해서, 그는 늘 인터뷰를 하러 다녔다. 미국 방방곡곡으로, 세계로. 2007년 봄, 이 책의 교정을 모두 마친 그는 닷새 후 스물두 번째 책을 위해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를 만나러 가다가 캘리포니아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살림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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