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통제 가능한 ‘반일 민족주의’는 없다…쑤저우 일본인 모자 공격 사건의 교훈[사건으로 본 중국]

박은하 기자 2024. 7.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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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스쿨버스를 기다리다 괴한에게 칼부림 공격을 당하던 일본인 모자를 구하고 숨진 중국인 여성 후유핑. /쑤저우시 공개

지난 2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 정부는 주요 공직자와 유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스쿨버스 안내원 후유핑(胡友平·사진·사망 당시 55세)의 추모식을 거행했다.

후유핑은 지난달 24일 정류장에서 일본학교 스쿨버스를 기다리던 일본인 모자가 흉기를 든 괴한에게 공격당하자 범행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칼에 찔렸다. 후유핑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인 26일 숨졌다. 용의자는 다른 학부모와 안내원에게 제압됐다. 칼에 찔린 일본인 모자도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생명은 건졌다.

쑤저우시는 휴유핑과 현장에서 범행을 제압한 3명에게 ‘옳은 일을 보고 용감히 뛰어들다’는 뜻의 ‘견의용위(見義勇爲) 모범 칭호’를 수여했다. 많은 시민이 후유핑의 묘지에 꽃을 들고 찾아가 추모했다.

중국 매체에서 쉬쉬하던 쑤저우 일본인 모자 공격 사건은 ‘의인 후유핑’의 추도식으로 마무리됐다. 중국 정부는 이 사건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국이 몇 년 동안 펼쳤던 ‘전랑(늑대전사)외교’가 부른 참극이라는 시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 미국인 강사 4명 중국 공원서 흉기피습…50대 용의자 경찰 체포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406112231001

지난달 11일 지린성 지린시의 한 공원에서 미국인 대학강사 4명이 칼에 찔렸다. 중국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목격담과 영상이 올라왔고 미국 언론이 먼저 보도했다.

지린 사건만 하더라도 해당 공격 사건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인지 불분명한 구석이 있었다. 중국 공안은 용의자와 미국인 강사들이 충돌해 우발적으로 칼부림이 벌어졌으며 주변에 있던 중국인 1명도 함께 다쳤다고 전했다. 중국 곳곳에서는 원한 등의 이유로 칼부림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개중에는 지난달 3일 산시성 창즈시의 한 철거민이 철거 업무를 담당하던 공산당 지역 지부 지도자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약 2주일 만에 명백히 일본인 여성과 아이를 겨냥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 사건 역시 중국 당국이 쉬쉬한 가운데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지린시와 쑤저우 사건에 관한 질문을 받자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이라고 답했다 .

포털과 SNS 플랫폼의 움직임은 달랐다. 소후, 넷이즈 , 시나, 텐센트, 더우인 등은 지난달 29일 ‘중·일 대결 선동 및 극단적 민족주의 감정 조장 관련 불법 콘텐츠 처리에 관한 공지’를 발표하고 범죄를 옹호하거나 ‘반일감정’을 선동하는 게시물을 일제히 삭제했다.

삭제된 게시물에는 “쑤저우 의인은 사실 일본 간첩이었다”, “일본을 침몰시키고 하루빨리 학살을 자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의 극단적 발언이 포함됐다. 쑤저우 사건 관련 게시물에 항일영화 클립을 함께 올리며 범행을 옹호하는 게시물도 있었다. 자신이 민간 반일·방첩 활동가라며 일본학교 정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중계해 오던 스트리머도 계정이 차단됐다.

바꿔 말하면 이 같은 발언이나 행동은 지금까지 별다른 제재 없이 할 수 있던 것들이었다. 홍콩계 독립매체 단전매는 “중국에서 최근 5년 간 ‘반일’, ‘반미’는 ‘정치적 안전지대’였다”며 인터넷 기업들의 조치와 외교부의 입장이 배치된다고 짚었다.

중·일 관계가 악화하고 중국 정부가 애국을 강조하면서 일본을 상대로 증오심을 표출하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당국도 가담했다. 2022년 8월 쑤저우의 한 여성이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 경찰에 체포된 일이 단적이다. 중국의 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이 사건 1년 후 ‘중화민족의 감정 또는 정신을 훼손하는 복장’을 착용하면 처벌하는 법안 제정을 추진했다. 이 법안은 최근 여론 반발에 밀려 철회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일 관련 게시물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보장하는 데다 정치적 부담도 없어, 손쉬운 돈벌이 수단이 됐다. 중국 정부가 청랑(淸浪)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정화 캠페인을 펼치면서 온라인에서 부를 과시해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유해·불온 게시물을 차단하는 동안에도 반일 게시물은 살아남았다. 이는 반일 행동에 국가가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됐다.

2023년 10월 산둥성의 한 중학교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모의 암살 공연을 벌여 논란이 됐다./중국 온라인

지난해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이후 반일행동은 한층 더 과격해졌다. 2023년 10월 산둥성의 한 중학교 운동회에서 학생들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암살을 재현하는 공연을 해 중국사회를 경악시켰다. 올해 초에는 유명 생수회사의 병뚜껑이 빨간색이며 이는 일장기를 상징한다고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반일 스트리머들은 자신을 “애국자” “현대판 의화운동가”라고 정당화했다.

중국 정부는 극단적 반일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단단하게 굳어진 반일 비즈니스는 일시적 차단으로 뿌리 뽑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반일 콘텐츠에 중독된 이들의 감정 수위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반간첩법 시행 1년] 중국 국가안전부 “안보의 만리장성 쌓았다” 자찬
     https://m.khan.co.kr/world/china/article/202407011615011

지난해 11월 미·중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이후 중국 정부는 상대국을 거칠게 압박하는 ‘전랑외교’ 기조에서 다소 변화한 태도를 보인다. 미국을 상대로 ‘판다 외교’를 재개하고, 프랑스, 독일, 스페인, 호주 등 서방 국가를 상대로 일방적 비자 면제를 확대하며 투자와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안보 위험도 강조한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지난 1일 개정 반간첩법 시행 1주년을 맞아 “국가 안보의 강철장성(만리장성)”을 쌓았다고 자평하며 간첩신고를 독려했다. 국가안전부가 잠재적 외국인 간첩의 국적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일본·미국인이 반간첩법의 주된 대상으로 거론된다. NHK에 따르면 2014~2023년 17명의 일본인이 중국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일본인 모자 공격 사건까지 발생하자 일본 언론은 중국 내 자국 주재원의 안전을 우려하고 철수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중국 매체 경제관찰보에 따르면 쑤저우에는 약 3000개의 일본 기업이 있다.

휴유핑의 추모식이 끝나자 온라인에는 “후유핑이 (일본인을 구했으니까)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등의 조롱 댓글이 또 다시 나타났다. 국가가 수년 동안 ‘애국’을 강조하면서 일각에 지핀 ‘적대’의 불길은 ‘의인’의 희생에도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 ‘중화민족 정신·감정 훼손’ 처벌법, 일단 없던 일로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6261835001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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