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해리포터 무게, 미국판 1.5배…'책'이 꼭 하얗고 반짝여야 할까

김성진 기자 2024. 7. 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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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석회가루 코팅하는 한국책...무거울 수밖에
간편히 들고다니기 힘들고 손도 자주 베어
한국은 흰 종이, 반짝이는 표지 선호...재활용 어려워져
'석회가루 코팅'이 책을 과하게 무겁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씨와 그림을 선명하게 만들기 위한 코팅이지만 코팅을 안한 국내 만화방의 만화책들과 미국 원서가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지도 않아 독서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세한 돌가루 코팅...튼튼하지만 무거워
같은 '해리포터 : 마법사의 돌' 책인데 미국 원서는 207g, 한국 책은 299g이었다. 거의 50% 차이가 난다. 미국 원서는 한국 책보다 페이지가 많은데 무게는 가벼웠다. 종이 때문이었다./사진=김성진 기자.
6일 본지가 같은 '해리포터 : 마법사의 돌'의 한국 책과 미국 원서를 구매해 무게를 측정한 결과, 한국 책은 299g, 미국 원서는 207g이었다. 한국 책이 약 50% 더 무거웠다. 페이지는 미국 원서(310쪽)가 한국 책(267쪽)보다 오히려 많았고 종이의 면적도 미국 원서가 넓은데 결과적으로 무게는 한국책이 더 무거웠다. 페이지 한장당 무게를 계산하면 한국 책은 1.1g으로, 미국 원서(0.6g)보다 약 두배 무거웠다.

한국 책의 종이가 무거운 건 '코팅'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국의 복사용지는 표면에 미세한 '석회 가루'를 코팅한다. 종이의 반발성을 높여 잉크를 잘 먹고, 글자와 그림이 선명하게 찍히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석회 코팅을 안한다고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도 흔히 만화방에서 볼 수 있는 만화책들은 석회코팅 없이 인쇄하는 게 많은데, 읽기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석회 가루 코팅을 하는 건 책의 가독성보다 '보존성'을 위해서란 해석이 더 힘을 얻는다. 석회 코팅을 하면 종이가 오래간다. 습기나 공기 중 산소, 직사광선에 내구성이 생겨 쉽게 뒤틀리지 않는다. 신문지나 갱지, 미국 원서는 습한 데나 햇볕에 두면 색이 쉽게 변하고 뒤틀린다.
반짝이는 표지...재활용 못해
한국 책은 표지에 라미네이트 코팅을 해 빛을 반사한다. 미국 책은 규제상 표지에 라미네이트 코팅을 하지 못한다. 대신 표지도 재활용할 수 있다./사진=김성진 기자.
미국 책은 석회 코팅을 하지 않아 가볍다. '일본인 이야기', '문헌학자의 현대 한국 답사기' 등을 쓴 김시덕 박사는 "책은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가 카페, 벤치에 앉아 편하게 꺼내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며 "미국 책은 가벼워 들고 다니기 편한데, 한국 책은 들고 다니며 읽기 불편하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인 2017년 OECD 조사에서 한국인의 한달 평균 독서량은 0.8권, 미국인은 6.6권이었다.

종이에 손을 벨 우려도 적다. 한국 책은 석회 코팅 때문에 종이가 빳빳하다. 시중의 A4용지에는 손을 자주 베고 만화책과 신문지, 갱지 등은 그렇지 않은 게 석회 코팅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다.

미국 책은 친환경 규제 때문에 대체로 재생지(폐지)를 재활용한 중질지로 만든다. 시커멓고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종이자원의 순환을 활성화한다. 한국은 책의 종이에 규제가 없다. 어떤 종이를 쓰는지는 순전히 출판사 몫이다. 중질지가 재생지를 섞어 만들었다고 크게 저렴한 것도 아니라100% 새 종이로 만든 책이 많다. 1톤당 중질지는 약 130만원, 100% 새 종이는 140만원이다.

한국은 '흰 종이 선호'가 강해 복사용지에 과산화수소 표백량도 외국보다 많다. 또 '반짝이는 표지'를 선호해 대부분의 책이 표지에 '라미네이트' 코팅을 한다. 라미네이트는 약품을 묻힌 비닐을 표지에 열로 붙이는 작업이다. 해당 코팅을 하면 책의 표지가 반짝이지만 재활용을 할 수 없다. 미국은 규제상 라미네이크 코팅을 할 수 없다. 한국은 재활용업체들이 책을 수거하면 표지부터 떼어낸다.
한국의 책은 장식재?
한국도 과거에는 서민 도서나 문학 잡지처럼 중질지에 무코팅 종이로 만든 책이 많았다. 요즘에 이런 책이 적은 것은 책을 장식용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책을 사놓고 오래 안 읽어도 형태가 변하지 않아야 하지 않나"라며 "가뜩이나 책 소비가 줄어든 와중에 책을 누리끼리 하게 출간하는 모험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시덕 박사는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처럼 책을 읽기 위한 상품이 아니라 장식재와 위신재(소유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음을 알려주는 물건)로 간주하는 경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최근 책의 장식재로서 역할이 커졌다지만, 미국처럼 무게도 줄이고 재활용 가능성을 키울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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