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대성공일 수도,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빅딜의 추억
KBL 역대 최초의 트레이드는 1997년 6월 20일 이뤄졌다. 신생팀 LG가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안양 SBS에 현금 1억 2000만 원을 넘겨주며 오성식, 박수호를 영입했다. 오성식은 원년 시즌 SBS의 주전이었던 데다 LG가 창단 첫 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에 힘을 보탰지만, 리그 판도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트레이드는 아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첫 빅딜’은 1998년 5월 29일에 이뤄졌다. 부산 기아가 ‘농구 대통령’ 허재를 원주 나래에 넘겨주며 정인교, 1999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는 데에 합의했다. 기아가 지명권 양도를 통해 받은 신인은 1라운드 7순위로 지명된 장영재였다.
실업 시절 기아자동차의 농구대잔치 7연패 주역이었던 허재의 트레이드라는 사실만으로도 떠들썩했지만, 사실 허재는 오성식과 박수호에 앞서 KBL 역대 1호 트레이드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KBL 출범 직전 음주운전 파문을 일으켜 물의를 빚었던 허재는 최인선 당시 기아 감독과의 마찰까지 겹쳐 챔피언결정전에서 전력 외라는 수모를 겪었다. 5경기 중 3경기 평균 15분 40초만 소화하는 데에 그쳤고, 에이스 자리도 통합우승을 이끈 강동희에게 넘어간 터였다.
“우승이 확정된 날 축하한다고 말을 건네는 후배가 없었다. 그 순간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했다”라고 결심한 허재는 곧바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나래로 트레이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까지 나왔지만, 이는 금세 ‘없던 일’이 됐다. 트레이드 요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기업의 부도, 기아의 매각설이 나돌아 일단 잔류해 한 시즌 더 치르기로 결정한 것.
기아에 남은 허재는 대전 현대와의 1997-19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오른손 골절, 발목인대 및 허벅지부상을 입고도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가는 투혼을 보여줬다. 허재는 준우승팀 소속으로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된 유일무이한 선수로 남아있다. 기아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허재의 ‘라스트 댄스’였다.
허재는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직후 다시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리며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이번에는 1년 전 허재 영입에 관심을 표했던 나래와 더불어 삼성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은 제대한 양경민을 트레이드 카드로 제안했지만, 허재는 용산고 출신 최형길 사무국장(현 KCC 단장)과 이재호 코치 등이 있는 나래 행을 희망했다. “나래에 많은 선배가 있어 더 친근감이 있었고, 은퇴 후 지도자도 보장해주기로 했다.” 당시 허재가 남긴 말이었다.
허재는 우승 직후 은퇴 의사를 밝혔다. 스스로의 힘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 때 명예로운 은퇴를 원했고, 신기성도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TG는 여전히 허재가 필요했다. “정상에서 아름답게 떠나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허재는 단 1분을 뛰더라도 팀에 큰 힘이 되는 선수다. 우승을 통해 증명이 됐다.” 최형길 당시 TG 부단장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기아를 떠나기 전 치른 마지막 챔피언결정전이 그랬듯, 허재는 TG에서 치른 마지막 시즌에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KCC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3승 4패 준우승에 그쳤다. 허재는 2003-2004시즌 종료 후 유례가 없었던 은퇴 경기가 성사돼 준우승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기아 시절 허재와 함께 ‘허동만 트리오’로 활약했던 강동희, 김영만을 비롯해 서장훈, 문경은 등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해 허재의 은퇴 경기를 빛냈다.
1998-1999시즌의 대전 현대는 완전체라 불릴 정도로 완벽한 전력을 자랑했다. ‘이조추 트리오’와 조니 맥도웰, 재키 존스로 구성된 외국선수 조합을 통해 압도적인 시즌을 치렀다. 10개 팀 체제 후 처음으로 정규리그에서 7할 이상의 승률(33승 12패 승률 .733)을 기록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기아를 4승 1패로 꺾으며 역대 최초의 2연패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신선우 당시 현대 감독은 변화를 원했다. 외국선수 2명 모두 재계약했지만, 수비력에 3점슛 능력까지 겸비한 존스보다 강력한 골밑장악력을 지닌 외국선수가 있어야 정상을 지킬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현대는 외국선수 드래프트 전 트레이드를 추진했고, SK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SK가 로렌조 홀을 2순위로 지명한 직후 존스와 맞바꿨다.
현대가 홀을 영입하기 위해선 또 하나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당시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었던 골드뱅크가 홀을 지명하는 불상사를 막아야 했다. 현대는 이를 위해 골드뱅크에 박재현과 정진영을 넘겨주며 최명도를 받았다. 현대와의 트레이드로 국내선수 전력을 보강한 골드뱅크는 1순위로 홀이 아닌 에릭 이버츠를 선발했다. 사실상 삼각 트레이드였던 셈이다.
현대는 1999-2000시즌에도 33승 12패를 기록하며 사상 최초의 정규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이때만 해도 홀과 존스를 바꾼 게 부메랑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서장훈과 존스가 트윈타워를 이룬 SK는 단숨에 현대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여기에 빅딜을 추가했다. 서장훈, 현주엽 조합으로 대권에 도전할 수 없다고 판단한 SK는 슈터 보강을 추진했다. 현주엽이 지닌 기량이나 스타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포지션별 밸런스가 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SK는 현주엽을 원한 삼성에 문경은과 +α를 요구했지만, 카드가 맞지 않아 급선회해 골드뱅크와 빅딜을 성사시켰다. 이를 통해 현주엽이 골드뱅크로 이적했고, SK는 1999 드래프트 1순위 신인 조상현과 현금 4억 원을 받았다. 발표가 1999년 12월 24일 이뤄져 여전히 ‘크리스마스 빅딜’이라 회자되고 있는 트레이드다.
존스를 영입하며 서장훈의 부담을 덜어줬던 최인선 당시 SK 감독이 감독 자리를 걸고 진행한 추가 트레이드였다. “나로서도 모험이었다. 현주엽이 워낙 거물이었기 때문에 팀 입장에서 쉽게 보낼 수 없었다. 반대가 심했지만, 우승을 담보로 단장님을 설득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밀어붙였던 건가 싶다.”
SK가 단행한 두 건의 트레이드가 아니었다면, KBL 역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3연패는 울산 현대모비스가 아닌 현대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을까. 현대는 간판이 KCC로 바뀐 이후인 2001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지명, 존스와 재회했다.
트레이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추진하는 일종의 모험이다. ‘밑지는 장사’를 하려는 팀은 없기 때문에 논의가 길어지기 마련이고, 카드를 맞추다 보면 판이 커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에 따라 총 5명 이상의 선수가 팀을 맞바꾸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SK는 2005년 11월 20일 방성윤을 영입하기 위해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을 KTF에 넘겨줬다. 방성윤과 함께 정락영, 김기만이 SK로 향했다. 2019년 11월 11일에는 이전 시즌 플레이오프 MVP 이대성이 팀을 옮기는 초유의 트레이드도 이뤄졌다. 현대모비스는 이대성과 라건아를 KCC에 넘겨주며 리온 윌리엄스, 박지훈, 김국찬, 김세창을 영입했다.
무려 8명의 선수가 오간 트레이드도 있었다. 최초의 4대4 트레이드는 2001년 12월 12일 이뤄졌다. ‘트레이더’라 불리는 등 과감한 트레이드를 즐겼던 김태환 당시 LG 감독의 작품이었다. LG는 마이클 매덕스, 칼 보이드, 김병천, 김동환을 영입했고 코리아텐더에 이버츠, 말릭 에반스, 황진원, 이홍수를 넘겨줬다. 외국선수 2명이 모두 포함되는 등 양 팀 모두 트레이드를 통해 새 판을 짜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특히 LG는 공격농구로 무장한 2000-2001시즌 챔피언결정전에 올랐지만, 삼성에 1승 4패로 밀린 경험이 있었다. 골밑에 무게감을 더해 우승에 재도전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트레이드 전(9승 8패 승률 .529)보다 트레이드 후(19승 18패 승률 .514) 승률이 낮았고, 챔피언결정전 진출에도 실패했다.
오히려 효과를 본 쪽은 코리아텐더였다. 코리아텐더는 2001-2002시즌 7위에 그쳤지만, 트레이드 이전(6승 11패 승률 .353)과 이후(20승 17패 승률 .541) 승률이 큰 차이를 보이는 등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를 토대로 200-2003시즌 4강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고, 이버츠와 황진원은 코리아텐더의 4강 신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역들이었다.
2번째 4대4 트레이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2013년 12월 18일, KT과 고양 오리온스가 주인공이었다. KT는 포인트가드 보강을 위해 판을 키워 전태풍, 김승원, 김종범, 랜스 골번을 영입했다. 오리온스는 장재석을 영입해 골밑을 메웠고, 앤서니 리처드슨이라는 득점원도 얻었다.
김도수, 임종일도 함께 오리온스로 향했는데 트레이드 합의 후 문제가 생겼다. 김도수가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을 보여 9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은 것. 오리온스는 이 부분을 문제삼았고, KT는 보상의 의미로 2014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추가로 넘겨줬다. 전창진 감독은 트레이드 발표 후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추일승 감독과의 악수를 거부하는 등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트레이드를 통해 팀컬러에 변화를 준 KT와 오리온스는 2013-2014시즌에 나란히 27승 27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오리온스는 이어 2014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이승현을 지명했고, KT로부터 양도받은 7순위 지명권으로 손에 넣은 신인이 이호현이었다. 이호현은 데뷔 시즌 중반 오리온스가 리오 라이온스를 영입하기 위해 단행한 트레이드로 인해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줄곧 삼성에서 커리어를 쌓은 이호현은 2023년 FA 협상을 통해 KCC로 이적, 돌고 돌아 전창진 감독과 한솥밥을 먹게 됐다. 2023-2024시즌에는 데뷔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의 기쁨까지 누렸다.
국내선수 전력도 중요하지만, KBL은 외국선수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리그다. 기업이 팀을 운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승리 자판기’를 감수하며 리빌딩이라는 위험 부담을 떠안는 팀이 나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안양 정관장(혼란을 줄이기 위해 현재 팀명으로 통일했다)이 진행한 리빌딩은 역사에 남을 트레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관장은 2008-2009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직후, MVP 주희정을 SK에 넘겨주는 빅딜을 단행했다. SK는 2년 차였던 신인상 출신 김태술, 김종학을 넘겨줬다.
최전성기인 주희정을 영입한 SK는 윈나우를, 정관장은 리빌딩을 원했다. 김태술은 트레이드 직후 정관장의 계획에 따라 곧바로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대체했다. 양희종이 상무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정관장으로선 이들이 돌아오는 2011-2012시즌에 승부를 걸겠다는 계획이었다.
인고의 세월은 길고 쓰렸다. 정관장은 2009-2010시즌 16승 38패 8위에 머물렀고(아이러니하게도 주희정을 영입한 SK 역시 16승 38패에 그쳤다), 정식 감독 승격 직후 리빌딩에 돌입한 이상범 감독도 끊임없이 외풍에 시달렸다. “사직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였다. 리빌딩, 그거 할 게 못 된다. 누가 한다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러 갈 것이다.” 이상범 감독의 회고다.
이 와중에도 퍼즐을 모으기 위한 정관장의 작업은 계속됐다. 정관장은 2009-2010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2009 외국선수 드래프트에서 실질적 4순위로 선발한 나이젤 딕슨은 자유계약제 시절부터 검증을 마친 빅맨이었다. 대권을 노리는 팀 입장에서 군침 흘릴만한 카드였다.
마침 이전 시즌 하위권에 머물러 1순위 확률 25%를 갖고 있었던 부산 KT(현 수원 KT)가 딕슨 영입을 위한 승부수를 띄웠고, 도널드 리틀과 2010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넘겨줬다.
정관장은 이를 통해 리빌딩의 중간 단계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했다. 2010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KT로부터 넘겨받은 지명권도 2순위라는 행운으로 이어졌다. 사상 최초로 1, 2순위 지명권을 독식한 정관장은 박찬희와 이정현을 지명하며 앞선을 보강했다. 반면, KT는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으나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는 등 트레이드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정관장이 2시즌에 걸쳐 진행한 리빌딩은 독자들이 알고 있듯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정관장은 2시즌 동안 모은 전력으로 2011-2012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동부산성’이라 불릴 정도의 수비력을 뽐냈던 동부(현 DB)를 꺾고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또한 이정현이 2016-2017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확정짓는 위닝샷을 성공하는 등 2022-2023시즌까지 총 4차례 우승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상받았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기자), KBL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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