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예측 불가?… 시스템 부재가 낳는다
기업, 재해 원인 인간의 과실·부주의 전가
사고 초래 위험한 환경·정책 부재 등 추적
“취약층 맞춰 예방 초점… 시스템 바꿔야”
사고는 없다/ 제시 싱어/ 김승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2만3000원
미국에서는 3분마다 1명이 사고로 죽는다. 교통사고로 1명, 화재로 1명, 일터의 노동자가 1명…. 대형 재난이 아닌 한 이런 사고들이 사회의 관심을 끌기는 힘들다. 하지만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면 시각이 달라진다.
사고 원인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인간의 과실에 무게를 두거나 위험한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모든 인적 과실이 환경의 문제로 귀결된다며 확고하게 한쪽 입장을 취한다. 인간의 실수는 불가피하기에 과실을 예상하고 그것이 생사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고를 환경이 아닌 인간의 문제로 보도록 교묘하게 인식을 바꾼 사례로는 교통사고가 있다. 포드가 모델 T를 내놓은 1908년부터 1935년 사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50배 증가했다. 당시 미국인들을 이를 ‘차량 살인’이라 불렀다. 상류층 신사 클럽인 뉴욕시티클럽은 매년 아동 사망 교통사고 지점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고, 이를 ‘도시 살인 지도’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이 섬뜩한 표현들은 도로가 보행자의 것이고, 사람이 차보다 우선한다는 시각을 반영한다.
자동차 로비 세력은 이에 맞섰다. 차량사고를 보는 관점을 교묘하게 바꾸기 위해 체계적으로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은 ‘무단횡단자’라는 새 단어를 밀었다. 1920년대 이전에는 ‘무단횡단자’란 단어는 ‘무단운전자’와 함께 드물게 쓰인 모욕적 표현이었다. 인간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는 자동차 로비 세력의 전술은 수십 년 뒤 총기 로비 세력이 이런 구호로 이어받는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실제 2015년 포틀랜드주립대 연구진이 신체조건·옷차림이 같고 인종만 다른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실험을 한 결과, 흑인이 길을 건너려고 서 있을 경우 운전자가 무시하고 지나가 버리는 일은 백인보다 2배 많았다. 흑인 보행자는 길을 횡단하려면 백인보다 평균 32% 오래 기다려야 했다. 흑인이 길을 건너려면 더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력과 사고 발생의 관계도 유사하다. 지난 20년간 사고사율이 가장 높은 주는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뉴멕시코로, 미국에서 빈곤율 상위권에 드는 지역이다. 미국에서 보행자 사망 사고가 가장 많은 60개 도로 중 4분의 3은 평균보다 소득이 낮은 주에 있었다.
이런 상황은 악순환을 일으킨다. 지역 경제가 쇠락하면 일하기 위해 더 먼 곳까지 차를 몰게 돼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또 절박한 상황이니 위험한 일이라도 감수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다 사고가 나면 의료 빚에 시달린다. 자연히 세금을 적게 낼 수밖에 없다. 세수가 줄면 주정부는 도로를 포장하기 힘드니 다시 사고 위험이 늘어난다.
사고를 둘러싼 담론은 강자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1950년대 미국 코넬대는 자동차 충돌로 인한 손상 연구의 하나로 충돌 내구성 테스트 방식을 정교화했다. 거의 모든 충돌 테스트 인형이 175㎝에 78㎏ 정도의 남성 신체를 모델로 한 것이 문제였다. 여성에 맞는 충돌 테스트용 인형은 없었다. 그러니 여성은 전면 충돌 사고에서 사망 확률이 남성보다 최대 28%, 부상 확률은 최대 73% 높았다.
저자는 사고 증가 추세를 막으려면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방 대책은 몸이 느리고 약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이들, 즉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맞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전 관련 규제 완화로 사고가 났을 때 그 비용을 피해자 측이 아닌 기업과 규제 기관이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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