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코인은 증권인가
193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오렌지 농장을 운영하던 하위컴퍼니(Howey Company)는 사업을 확장하고 싶었다. 이 회사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오렌지 농장의 절반을 직접 경작하고 나머지 절반은 투자자들에게 분할 매각한 뒤 재임대받아 오렌지를 재배했다. 투자자들은 직접 농장을 운영할 필요 없이 임대소득과 오렌지 재배 소득의 일부를 보장받았다. 1937년 회사는 경영 문제로 파산을 선언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하위컴퍼니가 증권법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법원에 제소했다. 1946년 연방대법원은 SEC의 손을 들어주며 4가지 조건을 만족하면 ‘투자계약증권’이라고 봤다. ①공동 사업에 ②돈을 투자하고 ③타인의 노력으로 ④투자 이익을 기대했다면 증권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주식이나 채권이 아닌 경우 어떤 것이 증권인지 판단하는 법적 기준인 하위 테스트(Howey Test)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하위테스트는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겐 익숙한 개념이다.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에 따라 투자 성패가 갈린다.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가상자산은 상장폐지 될 수도,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에 대한 논쟁은 중요한 이슈다.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닌 한국거래소를 통해 거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증권 유통을 목적으로 필요한 인허가를 받지 않았기에 거래를 지원할 수 없게 된다. 가상자산 발행 과정에서 공시의무 등 각종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가상자산은 불공정거래규제의 대상이 된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가상자산의 증권성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몬테네그로의 외국인 수용소에 수감돼 있는데, 미국이 아닌 한국 송환을 바라고 있다. 미국 검찰은 그를 증권 사기를 비롯한 8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SEC 역시 권씨를 증권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미국 법원은 테라·루나를 증권으로 규정했다. 권씨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100년형 이상의 중형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되면 자본시장법 위반을 제외한 사기 혐의로만 형사적 책임을 지게 돼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가상자산의 증권성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있다.
가상자산의 증권성은 코인마다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 코인의 기능과 역할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유일하게 증권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코인이다. 비트코인은 처음 만든 주체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오직 채굴을 통해서만 발행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금이나 석유 같은 투자자산으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될 만큼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금융 당국이 유통 중인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성 판단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팀(TF)을 꾸렸지만 성과는 없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주요 코인이 증권으로 규정되면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투자자 피해에 더해 증권으로 판단된 코인을 상장한 가상자산 거래소는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법적 분쟁이 이어지고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7월 19일 국내에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다.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1단계 입법이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지만 여전히 규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각지대가 크다. 2단계 입법에서는 가상자산의 발행·공시·상장 등 시장 전반을 포괄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특히 가상자산의 증권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해당 법은 증권으로 인정되지 않은 코인만을 대상으로 한다. 증권으로 인정된 코인은 자본시장법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645만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거래액이 3조6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거대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가상자산 시장의 ‘육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가지 숙제가 2단계 입법에 주어졌다. 다만 2단계 입법이 국회에서 얼마나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제대로 갖춰지기 전까지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의 지적처럼 가상자산 시장은 ‘무법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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