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급발진 의심 사망사고’ 70대 운전자 1심 무죄

2024. 7. 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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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자적·기계적 오류, 사고원인 됐을 의심 배제할 수 없어”
수원지법, 지난달 13일 ‘급발진 주장’ 70대 운전자에 무죄 선고
사고차량 EDR 미설치…법원 “급가속 원인 구체적으로 확인불가”
수원지방법원[연합]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급발진 의심 사망사고를 일으킨 70대 운전자가 최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차량 내 전자적·기계적 오류가 사고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같이 판단했다.

수원지법 형사5단독 공현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13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70대 여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코란도C 차량을 타고 경기도 수원에 있는 제한속도 50㎞인 한 도로를 시속 약 87.3㎞로 주행하다 인근 교통섬에 서있던 50대 여성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도로 반대편에서 좌회전하던 벤츠 차량 우측을 들이받은 혐의도 있다. 당시 벤츠 차량은 사고 충격으로 뒤로 밀리면서 교차로에 대기 중이던 쏘렌토 차량과도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50대 여성 보행자가 현장에서 사망하고, 벤츠와 쏘렌토 차량 차주들도 각각 전치 4주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A씨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60대 여성도 전치 9주의 상해를 입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당시 차량이 갑자기 급발진하고,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을 뿐 자신의 과실로 인한 사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보고서에서 “A씨 차량에서 제동장치의 기계적 결함을 유발할 만한 사항은 식별되지 않고, 사고 발생 시 A씨 차량의 제동등이 점등되지 않은 상태인 점과 제동 페달을 밟을 시 제동등이 점등되는 상황으로 볼 때 A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 부장판사는 “A씨 차량에 어떤 전자적·기계적 오류가 발생해 사고 원인이 됐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며 “A씨 차량에는 EDR(사고기록장치)이 적용돼 있지 않고 사고로 엔진 구동이 불가능해 동력장치 검사가 불가능하다. 급가속 원인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공 부장판사는 “지인과 식사를 마친 A씨가 차로 주차장을 빠져나올 당시 차량 제동등이 켜진다”며 “추돌 당시 A씨 차량이나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A씨 차량은 전혀 멈추지 않고 횡단보도 교통섬에 서 있던 보행자를 추돌하고, 충돌한 벤츠 차량도 충격 여파로 튕겨나가면서 다른 차량과 추돌하기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어 “보행자를 추돌하거나 벤츠 차량을 부딪치기까지 차량이 감속하는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며 “A씨는 도로에서 유턴한 직후 차량이 가속하자 동승자에게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소리쳤고, 동승자도 ‘브레이크를 밟아보라고 했으나 차가 붕 날라갔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 부장판사는 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도 무죄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당시 5차선에 있던 한 차량 운전자는 “갑자기 6차선 뒤쪽에서 ‘부웅’하는 굉음이 들리더니 우회전 차로라 차가 빨리 달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흰색차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가 그대로 교통섬에 서 있던 보행자를 충격한 뒤 반대편에서 좌회전하던 벤츠 차량을 충격했다”고 진술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또 다른 목격자도 “엔진 소음이 굉장히 크게 들려 그 쪽을 쳐다보게 됐고, 차가 속도를 줄이는 것 같지 않고 가속하는 것 같았다. 사고 직후 운전자가 ‘차가 말을 안 들어요’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공 부장판사는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서를 근거로 A씨 차량이 통상적인 가속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교통공단 분석서에 따르면, A씨 차량은 사고 발생 지점 전에 ▷69.4㎞/h(9m, 0.467초) ▷82.6㎞/h(22.2m, 0.967초) ▷87.3㎞/h(20.2m, 0.833초) 단계로 급가속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A씨 차량과 같은 차종은 통상 70㎞/h에서 80㎞/h에 이르는 시간이 1.5초, 80㎞/h에서 90㎞/h에 이르는 시간이 1.8초 정도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 부장판사는 “A씨는 사고 당시 60대 후반 여성으로 25년 이상 차량을 운전했고 사고 전력도 없다”며 “유턴한 사거리에서 사고 장소까지 대략 600m 정도인데, A씨가 유턴 후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계속 가속만 했다는 것이 정상적인 운전자라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속 페달을 잘못 밟았더라도 제동을 할 만한 거리인데 계속 가속했다”며 “A씨나 동승자, 목격자 진술, A씨 차량의 가속 속도, 유턴 후 계속 가속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점, A씨의 운전 경력이나 당시 사고 상황 등을 고려하면, 검사 제출 증거들만으로는 A씨에게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y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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