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인사이드] 주가조작 577억 챙겨도 벌금은 고작 3억... ‘솜방망이 처벌’에 ‘범죄자 놀이터’ 된 韓 증시
경제학에서는 범죄도 인간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고 본다. 범죄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처벌로 받게 되는 불이익보다 크다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범죄에 대한 선고 형량이 낮다면 범죄에 나설 동기가 커진다고 볼 수 있다. 한 법조인은 6일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시장 관련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유사 범죄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주가조작 577억원 이익 챙겼는데 벌금은 고작 3억원
코스닥 상장사 에스모 전 대표 A씨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그의 혐의는 기업사냥꾼 일당과 함께 2017년 에스모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하고 주가조작을 하는 데 가담했다는 내용이었다. 허위 보도자료를 배포해 주가를 띄운 뒤 2018년 보유 주식을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팔아서 챙긴 이득이 577억원이나 된다는 게 수사 결과였다.
그러나 A씨는 작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 벌금 3억원의 처벌을 확정받았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이렇게 처벌이 약하니 주가조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국내에서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돼 왔다. 최근 3년간 대법원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단일 범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 35명 중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최대 벌금액은 20억원이다.
◇미국, 내부자 거래에 벌금 1조9000억원 중형
반면 미국에선 증권시장을 교란하고 부당이득을 거둔 이들에게 징역 수십년형에 수천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2014년 미국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은 미국 헤지펀드 SAC캐피탈의 펀드 매니저 매튜 마토마에게 징역 45년을 선고했다. 마토마는 투자하던 제약사 신약 개발 기밀정보를 활용해 2억7500만달러(당시 약 3000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 이후 SAC 캐피탈은 1999~2010년 내부자 거래로 수백만달러의 이익을 올린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기소됐다. 회사는 정부에 18억달러(약 1조9000억원)의 벌금을 냈다.
미국 변호사 자격이 있는 한 법조인은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로 적발되면 다시 시장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만드는 수준으로 엄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 시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 주는 범죄는 엄벌해야”
왜 한국과 미국 간에 이런 형량, 벌금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우선 양국 간에 형벌 기준이 다르다. 미국은 범죄자가 여러 범죄를 저질렀을 때 죄의 수만큼 징역형을 단순 합산하는 ‘병과(倂科)주의’를 채택한다. 징역 10년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10번 저지른다면, 총 100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가중(加重)주의’를 적용한다. 여러 차례 죄를 범할 경우 형량이 가장 높은 혐의에 대해 형량을 50% 가중하는 원칙이다. 똑같이 10년형짜리 범죄를 10~20번 저지르더라도 15년형이 최대다.
또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상 주가조작 등에 대한 양형기준도 낮다. 현행법상 불공정거래로 얻거나 회피한 손실액이 50억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300억원 이상의 주가조작도 15년형을 초과할 수 없다. 간혹 시세조종에 관여한 인물이 징역 20년을 선고받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과거 같은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고 횡령, 사기 등 다른 범죄 형량이 가중된 영향이다.
이와 함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주가조작범에게 천문학적인 벌금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법상 벌금액수는 ‘부당이득액’의 3~5배인데, 검찰과 금융당국이 산정한 부당이득액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올해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형사처벌과 별개로 불공정거래로 검찰 수사가 끝난 사람에게 부당이득의 최대 2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부당이득이 없거나 산정하기 어려우면 최대 40억원 내에서 결정할 수 있다. 그동안 판례로만 존재했던 부당이득 산정방식(총수입-총비용)은 법률에 정식으로 명시됐다. 또 시세조종 기간 외부요인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면, 외부요인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부당이익을 계산한다는 내용도 법에 들어갔다.
검사 출신인 한 법조인은 “주가조작 등은 다수 시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경제적 피해를 입히는 중범죄”라며 “이들에 대한 징역형, 벌금형 등의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李 ‘대권가도’ 최대 위기… 434억 반환시 黨도 존립 기로
- 정부효율부 구인 나선 머스크 “주 80시간 근무에 무보수, 초고지능이어야”
- TSMC, 美 공장 ‘미국인 차별’로 고소 당해… 가동 전부터 파열음
- [절세의神] 판례 바뀌어 ‘경정청구’했더니… 양도세 1.6억 돌려받았다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5년 전 알테오젠이 맺은 계약 가치 알아봤다면… 지금 증권가는 바이오 공부 삼매경
- 반도체 업계, 트럼프 재집권에 中 ‘엑소더스’ 가속… 베트남에는 투자 러시
- [단독] 中企 수수료 더 받아 시정명령… 불복한 홈앤쇼핑, 과기부에 행정訴 패소
- 고려아연이 꺼낸 ‘소수주주 과반결의제’, 영풍·MBK 견제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