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엔 양상문 감독-김경문 코치 될 뻔했는데…마침내 한화에서 뭉친 투 문(Moon) 효과는[이헌재의 B급 야구]
프로야구 한화는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인 5일 양상문 전 LG 감독(63)과 양승관 전 NC 코치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9일부터 시작되는 후반기부터 양상문 전 감독은 투수코치를, 양승관 전 코치는 수석코치를 맡게 됩니다. 두 사람의 한화 합류는 김경문 감독(66)의 요청에 따라 이뤄졌습니다.
두 명의 양 코치 모두 김 감독과는 인연이 깊습니다. 양승관 수석코치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NC에서 타격코치와 수석코치로 김 감독을 보좌했습니다.
양상문 코치는 김 감독과는 50년 인연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부산 동성중을 나왔고, 고려대 선후배 사이이기도 합니다. 김 감독이 공주고로 진학했고, 양 코치는 부산고로 가면서 고교 시절 잠시 길이 엇갈렸으나 두 사람의 교류는 이후에도 줄곧 이어졌습니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입니다,
OB(현 두산)의 프랜차이즈 포수였던 김 감독과 롯데에서 왼손 투수로 활약했던 양 코치는 프로야구 선수 시절에도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20년 전 두 사람은 감독과 코치로 같은 유니폼을 입을 뻔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 2003년까지 김 감독은 두산에서 배터리 코치로 일했고. 양 코치는 롯데의 투수코치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막역한 사이인데다 야구에서도 통하는 점이 많았던 두 사람은 사석에서 한 가지 약속을 하게 됩니다. “누가 먼저 감독이 되건 감독이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코치로 영입해 함께 야구를 해보자”고 한 것이지요.
두 사람 중 먼저 감독 자리에 오른 건 후배 양 코치였습니다. 양 코치는 2003시즌 종료 후 백인천 감독 후임으로 롯데 감독이 됐습니다. 당시 42세에 감독 자리에 올랐으니 상당히 이른 나이에 감독이 됐지요.
감독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는 김 감독에게 오퍼를 했습니다. 일전에 한 약속대로 수석코치를 맡아 함께 멋진 야구를 해 보자는 것이었지요. 원래대로라면 양상문 감독-김경문 수석코치 체제가 2004년 시작될 뻔했습니다.
그런데 김 감독 신상에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2003시즌 종료 후 무려 9년간이나 두산을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이 깜작 사퇴를 한 것이지요. 당시 새 두산 감독으로는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유력하게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선 감독이 은사인 김응용 감독을 따라 삼성 수석코치로 가 버리자 두산은 의외의 카드였던 ‘김경문 감독’을 선택하게 됩니다. 당시만 해도 지도자로는 무명에 가까웠던 김 감독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감독 자리에 앉게 된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양상문 롯데 감독-김경문 수석코치는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끝났고, 양상문 롯데 감독-김경문 두산 감독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김 감독은 이후 누구나 알듯이 감독으로서 성공시대를 열어젖혔습니다. 두산을 포스트시즌 단골 손님으로 만들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9전 전승으로 금메달 신화를 썼습니다. 2011시즌 중반 두산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신생팀 NC의 창단 감독이 돼 2018년까지 공룡 군단을 지휘했습니다. NC는 김 감독의 지휘 아래 빠른 시간 내에 신흥 명문으로 도약했습니다.
양 코치 역시 화려한 약력을 자랑합니다. 처음 롯데 감독을 맡아서는 2시즌 동안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이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LG 감독이 되어서는 팀을 여러 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습니다. 2018년에는 LG 단장으로 일했고, 2019년에는 다시 롯데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이후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난해에는 여자 야구대표팀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NC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뒤 야인으로 지내던 김경문 감독은 올 시즌 초반 한화 재건이라는 특명을 받고 6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초 기존 코칭스태프를 그대로 가져가려 했던 김 감독은 하지만 자신의 야구를 제대로 펼쳐 보이기 위해 가장 믿을 수 있는 코치진을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평생의 야구 동료이자 ‘영혼의 친구’인 양상문 코치인 것입니다.
양 코치는 화려한 경력만큼 투수 조련 및 관리에는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화에는 문동주와 김서현, 황준서 등 갈고 닦으면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젊은 선수들이 많습니다.
감독, 단장, 여자 야구 대표팀 감독, 방송해설위원을 거쳐 다시 투수코치로 돌아온 양 코치는 “야구인은 유니폼을 입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특히 김경문 감독님과 함께하게 돼 더욱 영광”이라며 “한화에는 한국 야구를 대표할 만큼 잠재력이 큰 젊은 선수들이 많다. 선수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서 기술적이든, 정신적이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뭔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년 전에 이루지 못한 같은 팀이라는 꿈을 이루게 된 김경문 감독과 양상문 코치가 한화에 어떤 새 바람을 불러올지 기대됩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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