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내 자식처럼 책임지겠다”던 ‘그놈’…알고보니 동물 연쇄 킬러였다
“호순이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면서요? 허피스(고양이 독감)가 심해 죽을 뻔했다면서요? 제가 내 자식처럼 책임지고 싶어요.”
지난 2월 동물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A씨(47)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A씨가 동물 입양 플랫폼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한 남성은 “병을 극복한 사연을 보니 호순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미심쩍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일단 약속을 잡았다.
신분증 보여주며 접근…집에는 동물 이동장·사료 종류별로 있었다
앳되고 연약해 보이는 젊은 남자. A씨의 눈에 비친 그의 첫인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분증을 내보였다. 이름은 안○○, 26살이었다. 웹디자이너로 일하며 충분히 번다며 호순이를 책임질 수 있다고 했다. 안씨의 적극적인 모습에 A씨는 의심을 거두고 호순이를 보여 주러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A씨의 집에 도착한 안씨는 정작 호순이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경계심 많은 호순이가 그의 손을 거부하고 고양이 ‘곰돌이’가 그에게 안기자 안씨는 돌연 “곰돌이를 당장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A씨는 말을 바꾸는 안씨를 보고 다시 의심을 품었다. A씨는 안씨에게 곰돌이를 입양할 준비가 돼 있는지 그의 집에 가서 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안씨의 집은 10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그런데 수상했다. 웹디자이너라고 했는데 집에 컴퓨터가 보이지 않았다. 불쾌한 냄새가 풍겼고, 고양이 이동장과 동물사료가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그 순간 안씨 팔에 가득한 동물 발톱에 긁힌 듯한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동물이 여길 거쳐 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A씨는 곰돌이를 데리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며칠 뒤 A씨는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글을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파주에서 26세 남성이 강아지 ‘소망이’를 입양 당일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사진 속 죽은 소망이 밑에 깔려 있는 이불은 A씨가 안씨의 집에서 봤던 것과 같았다. 소망이가 죽은 날은 A씨가 안씨의 집을 찾았던 다음 날이었다.
소망이 구조자는 안씨와의 통화 당시 ‘깨갱’ 거리는 강아지 소리가 들려 안씨를 의심했다고 한다. 안씨를 찾아간 구조자는 소망이의 상태를 집요하게 추궁했고, 안씨는 “소망이를 목욕시키던 중 소망이가 손을 물어서 죽였다”고 시인했다. 이 글이 퍼지면서 “안씨에게 입양을 보낸 뒤 연락이 두절됐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입양 공고 올리자마자 “빨리 입양하고 싶다”…죽인 뒤엔 “잃어버렸다”
“고양이 용품은 다 있어요. 빨리 데려가고 싶습니다.”
지난 2월 윤모씨(35)도 안씨의 연락을 받았다.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 입양 공지를 올린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입양 수요가 많은 새끼 고양이가 아닌 다 큰 고양이의 입양처를 찾는 글이었었는데, 올리자마자 문의가 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의심이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파주’ ‘20대 남성’과 관련된 글이 있는지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엿새 전 소망이를 죽인 사람이었다.
윤씨는 소셜미디어에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그를 추적했다. 안씨 집 근처에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는다’는 벽보가 여러 장 붙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씨에게 고양이를 입양보낸 구조자들이 붙인 것이었다. 안씨가 그들에게 “입양한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고 둘러댔기 때문이었다. 윤씨가 그들에게 연락해 안씨의 실체를 알리자 구조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다고 한다.
윤씨의 추적으로 안씨가 중고거래 플랫폼, 동물 입양 플랫폼 등에서 데려온 강아지 5마리와 고양이 6마리를 죽인 사실이 밝혀졌다. 안씨는 이후 재판에서 ‘여자친구와 다툰 뒤 화가나서’ ‘고양이가 자신을 경계해 화가나서’ ‘시끄럽게 해서’ 등의 이유로 동물들을 죽였다고 밝혔다.
반성문에 죽인 동물에 대한 사과는 없는데…재판 결과는 ‘집행유예’
“피고인을 징역 1년 6개월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부터 3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지난달 24일 안씨는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재판을 방청하던 윤씨는 충격에 바닥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황당함에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구조자들도 “11마리나 죽여도 고작 집행유예냐”며 탄식했다고 한다.
안씨는 재판 과정에서 “동물학대가 중한 범죄인지 몰랐다”며 반성문, 재범근절 서약서 등을 15건 넘게 제출했다. 그러나 정작 반성문에는 그가 죽인 동물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고 한다. 재판부는 안씨가 초범이고 반성하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안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서 그에게 입양됐된 고양이 ‘츄르’는 살아남았다. 고양이 ‘장미’도 안씨로부터 도망쳐 살았다. 그러나 츄르는 구조 당시 숨을 헐떡이며 트라우마 증상을 보였고, 장미는 4개월가량 길에서 떠돌아야 했다. 윤씨는 “츄르와 장미가 워낙 착한 아이들이라 지금도 사람을 반기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며 “이 사건이 집행유예에 그치면 다른 사람들도 동물 범죄를 가벼이 여길까 두렵다”고 했다. 의정부지검은 지난달 25일 1심 판결에 대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04205?type=journalists
이예슬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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