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지만 안 했다’…노조파괴 혐의 SPC 허영인 회장의 이상한 변론

장현은 기자 2024. 7. 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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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허영인(가운데) SPC그룹 회장이 2024년 2월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허 회장은 현재 노조파괴 혐의로 법정구속돼 재판 받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의 노조 탈퇴를 지시·강요한 혐의로 구속된 허영인 에스피씨(SPC)그룹 회장의 재판이 지난달부터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은 허 회장을 비롯해 에스피씨그룹 임직원 19명에 달합니다. 피고인이 많다 보니 지난달 16일 1차 공판에선 피고인의 이름과 주소 등을 물어 본인 확인을 하는 인정신문에만 20여분이 걸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2일 열린 2차 공판에선 허 회장 쪽과 검찰이 조직적 노조 탈퇴 강요 혐의를 놓고 공방을 벌였는데요. 허 회장 쪽은 3시간이 넘는 의견진술을 통해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허 회장은 ①한국노총 소속 노조인 피비파트너즈 노조 설립은 강요가 아닌 제안이었고, ②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가 회사 이미지를 훼손해 어쩔 수 없이 ③피비파트너즈 노조를 지원했을 뿐이지 부당노동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죠. 허 회장 쪽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이날 진술로 되레 에스피씨가 그간 노조를 어떻게 관리해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① 노조에 지원·제안 했지만 ‘강요’는 안했으니 부당 개입 아니다?

허 회장이 받고 있는 혐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입니다 . 검찰은 2017년12월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 노조 설립과 2019년7월부터 이어진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 노조 탈퇴 강요에 그룹 전반 차원의 개입이 있다고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비노조를 과반수 노조로 만들기 위해 사내 여러 정보를 제공하고, 8개 사업부장들을 동원해 피비노조 조합원 모집작업을 진행했으며 이 모든 과정을 허 회장 등이 보고받았다는 것입니다.

허 회장쪽은 ‘지시’가 아닌 ‘협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허 회장 변호인은 “노조가 과반수 노조가 되기 위해 조합원을 모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며 “몇몇 도움을 준 것을 문제 삼고 있는데, 그 정도의 자료 제공가지고 근로자의 권익이 침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회사에서 ‘제안’, ‘부탁’은 했지만 노조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지 ‘지시’를 통한 복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허 회장쪽은 검찰이 피비노조를 ‘어용노조’라고 삼고 있는 전제가 잘못됐다며 건전한 협력 관계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에스피씨그룹의 지원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사용자의 노조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 자체가 기수에 이르는 것이지, 사측의 지배개입 행위에 피비노조가 어떻게 협조했는지는 범죄 성립과 무관하다”며 “단순히 제안했고, 피비노조가 협력했다라는 입장이지만 회사의 그 지원 등 행위 자체가 지배개입에 해당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란 설명입니다.

② “브랜드 가치 훼손 극에 달해”…탈퇴 관리는 어쩔 수 없었다?

‘지시사항 내려왔다. 민주노총 기사 만나서 탈퇴시켜라.’ ‘빨간 명단에 들어있어 눈 밖에 난다.’ ‘지원기사 되려면 민주노총 하면 힘들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허 회장은 황재복 에스피씨 대표로부터 탈퇴 종용작업이 시작됐다는 보고를 받고, 지속적으로 탈퇴 실적을 보고 받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탈퇴 속도가 느리다며 종용 작업을 독촉하기도 했다는 겁니다. 8개 사업 부장들은 위와 같은 지시를 통해 소속 제조장들이 제빵기사에 접근해 노조 탈퇴하게 하고 실적을 서로 공유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허 회장쪽은 이날 탈퇴 경과를 챙긴 것에 대해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면서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노조의 불법 시위에 대응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날 허 회장 쪽은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파리바게뜨 지회의 집회 사진들을 법정 모니터를 통해 현출하며 집회의 불법성을 강조했습니다. “가맹점 앞 불법 시위 등으로 갈등을 유발하거나 주소지에서 멀리 떨어진 가맹점 근무를 거부하거나 대체근무를 거부하는 등으로 희생정신, 솔선수범, 주인의식 부족을 보여주는 경우가 다수 있었습니다.”

민주노총 조합원에 대해 인사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이들이 유독 희생정신, 주인의식 등이 부족해 당연히 낮은 점수가 나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집회의 불법성이 부당노동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파바지회 집회가 일부 위법적인 측면 있다는 이유로 탈퇴 종용 부당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는) 사용자의 또 다른 위법행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이어 “‘오래 다니려면 한노(한국노총)가 진급 빠르다’ 등 협박을 받았다는 진술도 있다”며 불이익 조치에 관해 향후 입증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노조 대신 ‘허위 인터뷰’ 써줬지만…“지원에 불과한 행위”

에스피씨는 언론·국회에 대응하면서 한국노총 피비노조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위원장이 하지 않은 인터뷰를 가짜로 써서 전달하거나, 한국노총의 입장문이란 이름으로 회사 입장을 밝히며 ‘노노갈등’ 프레임 방침을 세우고 적극 활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공동대응이 본질이다”라는 게 허 회장쪽 입장입니다. “‘이렇게 인터뷰 해달라’는 것을 지시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피비노조 위원장의 발언 등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인터뷰 대본을 써서 주고, 입장문도 대신 써줬지만 “자신의 이익에 부합해서 한 것이지 회사 지시로 억지로 한 것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검찰은 “사쪽 입장을 피력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있었고 좋은 관계를 구축해 온 언론사를 통해 사측에 우호적인 칼럼 기사를 보도해왔다. 그럼에도 (별도로) 사측 멘트를 피비노조 이름으로 언론사에 보도하게 한 것은 노노갈등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전형적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부당개입 혐의 전반에 걸쳐 허 회장쪽은 “애꿎은 가맹점주들이 피해 입는 상황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브랜드 가치를 위해 했다는 일련의 행위가 불러온 ‘오너 리스크’로 에스피씨는 현재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검찰은 향후 공판을 통해 피고인들의 구체적 공모관계나 주장에 관해 입증하겠다고 밝힌 상황입니다. 3차 공판은 오는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립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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