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쓰는 공간을 '나 혼자' 독점… 노매너·이기심에 공공장소는 '몸살'
차박성지 장기주차, 낚시꾼 해변 오염도
소수 이기심 이어지면 결국 규제만 신설
"엘리베이터를 붙잡지 말아주세요!"
서울 한강변 동작대교 남단 둔치에서 다리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엔 최근 이런 안내문이 붙었다. 한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치 맛집'으로 소문난 이곳엔 왜 이렇게 '당연한 안내문'이 일곱 장이나 빽빽하게 게시돼 있는 걸까.
웨딩사진 성지가 된 동작대교
안내문이 붙은 건 일부 결혼(웨딩)사진 촬영족의 '엘리베이터 남용' 행태 때문이다. 이 근처는 한강을 따라 지는 노을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어 웨딩 사진의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본보가 찾은 4일 오후에도, 무더운 날씨였지만 전문 작가를 대동해 사진을 찍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웨딩 촬영을 하는 일부 팀이 엘리베이터를 잡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열림 버튼을 계속 누른 채 촬영을 하면서, 이용에 불편을 겪는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인근에서 만난 시민 이상희(58)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용산 쪽으로 건너가려 했는데 한참 동안 내려오지 않아 고장이 난 줄 알았다"며 "다 같이 쓰는 시설인데 자기들만 좋자고 쓰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동작대교 위에서 영업 중인 카페 측도 불만이 크다. 카페 관계자는 "스냅샷 촬영 때문에 불편해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면 이곳에는 올라오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안내문을 부착한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관계자도 "계단으로 가면 아파트 7, 8층 높이라, 위에서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밑에선 무슨 일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며 "최대한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정상적으로 촬영하는 작가·연인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기도 한다. 최근 자신을 웨딩 스냅 사진작가라고 소개한 A씨는 온라인에 "개인 이기심 때문에 동작대교 촬영이 제한됐다"는 글을 올렸다. A씨는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잡고 촬영한 적이 없었는데, 촬영을 시작하자마자 시민들에게 '엘리베이터 좀 잡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인데, 몇몇 이기적인 사람들이 생긴 것 같다"며 "공공시설을 촬영 스튜디오처럼 쓰면 모든 곳이 촬영 금지 장소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로 한복판, 공영 주차장, 낚시꾼까지
나의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 남의 불편과 안전을 아랑곳하지 않는 장소는 또 있다. 올해 초 강남구 도산대로 한복판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차량 적색 신호를 틈타 횡단보도에서 촬영하는 모습 옆으로 차량들이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제보자는 "횡단보도 위에 차는 없었지만, 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위험해 보였다"고 말했다.
다 함께 쓰기로 약속한 공공장소를 장기간 독점하는 사례도 많다. 강원 양양군은 5월 해변 인근 공영주차장 내에서 캠핑과 취사를 금지하고 이를 단속하도록 하는 조례안을 의결했다. 캠핑과 차박의 성지로 떠오른 양양에선 공영주차장에 장기간 주차하거나, 취사·빨래·오물투기 등으로 피해를 주는 사례가 잇따랐다고 한다. 경북 영덕군도 2022년부터 장사리 문산호 일대 야영과 취사를 전면 금지했다.
일부 낚시꾼들이 바닷가 환경을 훼손하는 사례도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2022년 전남 여수시 거문도 일대 외부 낚시꾼 출입을 1년 동안 금지했다. 낚시꾼들이 갯바위에 구멍을 내거나 생활 쓰레기를 버리고 그대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돼, 주민 피해가 막심했던 탓이다.
함께 나눠야 하는 공유물과 내가 전적으로 쓸 수 있는 사유물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 중 하나는 사적·공적인 것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자기 편함만 생각해 공공의식을 망각한다면 결국엔 불필요한 규제가 늘어나 전체적으로 자유가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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