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이 맥을 못 추는 그곳
전수진 2024. 7. 6. 02:18
매튜 라이스 지음
정상희 옮김
한스미디어
구글맵이 맥을 못 추는 여행지, 이탈리아 베니스다. 동서양을 잇는 무역업으로 1500년 이상 번성한 이곳은 물의 도시. 위성이 가늠할 수 없는 수로와 통로가 빼곡하다. 그게 베니스의 진짜 매력이라고, 영국인 디자이너인 저자는 역설한다. 그는 베니스를 수차례 방문한 경험을 특기인 수채화 일러스트와 글로 풍성하고 다정하게 풀어낸다.
1870년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도시국가를 넘어 작은 제국으로 이 지역을 호령했던 베니스의 매력을 탐구하는 데 이 책은 출발점으로 제격이다. 그 역사와 건축 양식을 비롯해 도시에 대한 애정과 경험으로 포착한 생생함이 두드러진다. 물총새·뿔논병아리 같은 조류, 시장의 여러 생선, 베니스 특유의 원형 깔때기 굴뚝 모양까지, 글로만 접했다면 지루했을 수 있는 설명이 작가의 붓끝으로 펄떡인다. 그 생명력은 편집의 미덕으로 완성된다. 흔히 접하는 단행본 판형에서 벗어나, 가로를 길게 해 그림의 가독성을 높인 점이 돋보인다.
책을 펼치는 순간, 베니스 특유의 물그림자가 아른거리고, 산마르코 대성당 새벽 미사 소리가 들리며, 도르소두로 문화지구 카페에 앉아 수백 년 이어온 젤라토를 맛보는 기분이 든다. 베니스에 가지 않고도 베니스를 즐기게 하는 책.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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