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수출하는 K타로…"페미니즘 타로냐고요?"

유주현 2024. 7. 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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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타로카드’ 글로벌 인기, 바나 작가
한국 타로카드를 그린 바나 작가. 그의 타로카드는 국내외 펀딩에서 누적 5억원을 달성했다. 최기웅 기자
디지털 세상이 될수록 신비주의가 득세한다. ‘핸섬가이즈’ 같은 병맛 코미디도 오컬트와 만나 히트하고, 천만 영화 ‘파묘’ 덕에 한국의 무당과 굿이 해외에서도 환영받는 K컬처가 됐다. ‘K타로’까지 인기다. 서양 오컬트인 타로카드를 바나(김수진) 작가가 한국 문화로 재해석한 ‘한국 타로’는 국내외 크라우드 펀딩에서 누적 5억원을 모았을 정도로 핫하다. 올해 출간한 해설서 『바나의 한국 타로』(북레시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판권이 팔렸고, 미국과 대만에서도 관심이 높다.

메이저 카드 22장, 마이너 카드 56장으로 이뤄진 유니버설 타로카드는 역사가 깊다. 문양도 14세기 이탈리아 귀족의 생활상과 세계관을 표현했다는 게 정설이다. 고대 이집트 신화를 모티브 삼고 플라톤의 4주덕, 기독교 사상까지 포괄하고 있는 서양 신비주의의 집합체를 한국 문화로 번역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싶은데, 해설서를 보면 다른 각도로 보게 된다. 남사당패 같은 민속예능부터 바리데기 같은 무속신화, 한복과 장신구 등 복식문화까지, 한국의 전통과 상징을 입체적으로 소개한 백과사전에 가깝다. 오방정색의 화려한 그림체도 마성의 매력으로 잡아당긴다.

바나 작가는 타로 마스터는 아니다. 영화 ‘인사이드아웃2’의 한복 포스터, 오리온 꼬북칩의 거북이 캐릭터 등을 그린 컨셉트 아티스트다. “본격 타로카드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어요. 아트워크 개념으로 메이저 카드 22장만 그리려고 했죠. 그림 작가로서 의미와 상징이 담긴 그림에 관심이 많고, 그게 타로카드에 잔뜩 있잖아요. 타로를 테마로 작품을 하려고 펀딩을 했는데, 의외로 타로 마스터들이 78장을 다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1년여 제대로 공부해서 풀세트를 만들었죠.”

바나의 한국 타로카드들. 5번 ‘교황’ 카드엔 한복 입은 성모를, 13번 '죽음' 카드엔 제주 차사본풀이 설화의 검물덕여인을 그렸다. [사진 북레시피]
그의 재해석은 주술을 떠나 철저히 시각적인 관점에서 이뤄졌다. 해설집에도 타로를 보는 방법이 아니라 도상들의 역사와 문화를 담백하게 소개했다. “예컨대 ‘교황’ 카드는 원래 근엄한 교황을 대머리 수도사 두 명이 받들고 있는 그림이고, 영적인 지지를 뜻하죠. 의미는 좋은데 할아버지 교황이 아니라 나를 토닥여줄 수 있는 영적인 존재면 어떨까 싶어서 한복 입은 성모로 바꿨어요. 수도승 대신 기도하는 손을 그리고, 장미와 백합은 그대로 가져왔죠. 배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전의 의미를 살려 절에 있는 꽃살문으로 대체했고요.”

타로 업계도 독특하고 그림이 예쁜 카드를 찾는 추세라지만, 한국 상징으로 외국인의 점괘가 나올까. “저도 궁금한데, 외국인들은 동양적인 신비에 더 끌리나 봐요. 근데 구도는 원본과 다르지 않거든요. K컬처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해설집을 재밌게 공부하면서 자기만의 카드로 만드는 것 같아요.”

교황을 성모 마리아로 바꾸는 등, 바나의 타로엔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아니, 좋은 건 다 여성이다. 심지어 3번 여제와 4번 황제는 순서를 바꿨다. 다양한 버전의 타로가 있지만 순서를 건드린 건 최초란다.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타로를 그리며 화가 났던 게 여자는 순종, 풍요와 다산밖에 없고, 동적인 건 모두 남성이란 거였죠. 제 카드에 여자가 많은 건 단순히 예쁜 그림을 위해서인데, 황제·여제만큼은 의미 자체를 양보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3번에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효종을, 4번을 야망과 성공을 꿈꾸는 선덕여왕을 그렸죠. 하지만 성별을 걷어내면 카드의 의미는 같아요. 호불호는 있지만, 오랜 마스터들은 다 이해하시고 오히려 더 좋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페미니즘 타로’는 아니다. 중성적인 느낌을 추구했을 뿐이다. “제 카드는 예뻐야 되는 게 무조건이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많아졌을 뿐이에요. 다양한 연령과 인상을 그리지 못한 아쉬움은 나중에 생겼죠. 그래서 새 작업은 할머니나 중년 남성 같이 다양한 인물을 넣고 있는데, 그들도 예쁘게 그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사실 타로 종류는 엄청 많다. 중국·일본·베트남 타로도 있고, 무속인들이 쓰는 만신타로도 있다. 테마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담기지만, 바나 타로는 한국 역사와 민속에 대해 각주까지 단 해설서 덕에 해석의 결이 풍부해졌다. “원래 한국사 덕후거든요. 실록 읽기도 좋아하고, 궁궐이나 박물관도 엄청 다녔어요. 컨셉트 아트를 하다 보니 한국적 전통이나 한복을 많이 그리게 돼서 꽤 긴 시간 자료수집을 했었고요.”

타로 점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다. 다만 각종 상징들에 담긴 중용·절제·정의·인내 같은 덕목을 거울삼아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스리는 도구로 삼을 뿐이다. 그가 꼼꼼한 해설서를 만들면서도 고증에 집착하지 않은 이유다. “도서관에 발품 팔고 민속자료 사이트를 뒤지면서 셀프 검증한 정도죠. 이렇게 관심 받을 줄 몰랐고, 세계에 알리겠다가 아니라 그저 재밌는 아트워크로 작업했으니까요. 고증이 필요한 역사보다는 재미있는 전래동화 위주로 풀었고, 그래서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타로카드 이후엔 한국의 24절기를 담은 오라클 카드를 완성했고, 지금은 타로보다 직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36장짜리 레노먼드 카드 작업에 돌입했다. 카드 제작비의 원천은 크라우드 펀딩이다. 17일 오픈하는 펀딩은 넷플릭스 드라마화 예정인 소설 『탄금』의 로맨틱 삽화 버전 『홍랑』판 24절기 카드로, 국내외에서 벌써 8번째 펀딩이란다. “글로벌 펀딩은 대행업체에서 콜라보 제안을 받아 시작했어요. 미국 킥스타터엔 우리나라 아이디어 제품이 많이 올라오거든요. 우리 같은 창작자들에겐 펀딩 플랫폼이 굉장히 요긴해요. 업체가 아니면 재고 감당하기도 힘든데, 펀딩은 금액이 달성되면 거기 맞춰서 제작하면 되니까요. 펀딩이 창작의 원동력이죠.”

그는 이제 펀딩의 달인이 됐다. 오픈하자마자 1등을 찍을 정도라 최근엔 펀딩 성공비법 강연도 했다. “초기엔 시행착오도 겪었어요. 타로가 아닌 한국적 굿즈는 실적이 저조했죠. 첫 타로 펀딩은 그렇게까지 잘될 줄 몰라서 당황했고요. 100명만 들어왔으면 했는데 1900명이 들어와 6400만원을 달성하니 혼자 감당하기 힘들더군요. 비법은 따로 없어요. 무조건 하라, 안 돼도 하고 보라는 것밖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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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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