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내 님은 어디 있나요… 19세 청춘도 절로 간다

김병권 기자 2024. 7. 6.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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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대학생 만남스테이 가보니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린 대학생 만남 템플스테이 ‘대학생도 절로’에 참가한 남녀 대학생이 경내 대형 향로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비는 미션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김병권 기자

“칠월 칠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좋은 인연을 만나고 싶습니다.”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 연두색 조끼 법복 위에 ‘견우’ 명찰을 단 남학생이 다른 남녀 대학생 17명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봉은사 주최 남녀 만남 템플 스테이 ‘대학생도 절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금욕(禁慾)의 공간인 사찰이 저출생 시대 20대 대학생들을 위한 ‘커플 명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2030 미혼 남녀의 만남을 위해 마련한 ‘나는 절로’ 템플스테이가 호응을 얻자 봉은사는 Z세대(2000~2005년생) 대학생들만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 ‘대학생도 절로’ 프로그램을 최근 개설했다. 봉은사(794년 창건) 1230년 역사상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오전 10시,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내용의 찬불가 ‘삼귀의’를 다 같이 부르며 행사가 시작됐다. 처음엔 엄숙,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남녀 각 9명 간에 7분씩 인사 나누기, 인증샷 찍기, 짝꿍끼리 팀 이뤄 퀴즈 풀기 등 순서가 이어지면서 이내 화기애애해졌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향한 탐문도 이어졌다. “전공은 뭐예요” “MBTI가 뭐냐” 같은 질문이 오가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이성의 이름 두 명을 종이 쪽지에 적어 진행자에게 제출하자 커플 성사의 긴장감이 달아올랐다. 1차 커플이 매칭되자 한 남학생은 짝꿍 여학생에게 “오늘 너무 긴장을 해서 식은땀이 나서 머리 세팅이 다 망가졌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활동을 한 후엔 한 차례 짝꿍을 바꿨다. 두 번째 방식은 단체 미팅의 고전적인 방법인 ‘소지품 찾기’. 머리끈, 틴트, 열쇠고리, 볼펜 등 여학생들이 내놓은 각종 소지품을 골라 2차 커플이 성사됐다.

미소(20)씨는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이성과 대화를 돌아가면서 해봤는데 상대를 잘 알아갈 수 있어서 일반 소개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며 “절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도 있어서 굉장히 좋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 화학과 여학생 이모(23)씨는 “코로나 때문에 친구 사귈 기회가 적었고,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다 보니 깊은 관계 형성이 어려웠는데 이렇게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니까 즐겁다”고 했다. 중앙대 식품공학과에 다니는 남학생 전모(24)씨도 “친구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나왔는데 편안한 분위기 덕에 만남이 더 즐거웠다”고 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 봉은사대학생법회 지도법사 비구니 명진 스님이 피천득 수필 ‘인연’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좋은 연을 맺길 기원하자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진 스님은 “설령 이어지지 않더라도 이 경험을 통해 나중에 타인을 만날 때 남을 어떻게 배려하면서 본인을 드러낼지 배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6시간에 걸친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침내 최종 선택 시간. 서로를 선택한 한 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한양대 컴퓨터소프트웨어학과 남학생 A(21)씨는 “이렇게 매칭이 될 거라곤 기대를 안 하고 왔는데, 상대방과 대화가 잘 통하고 재밌어서 선택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번 행사 참가자들은 이른바 ‘코로나 학번’ 대학생들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입시에만 열중하다가 대입 후 코로나로 ‘비대면 학업’을 수년 동안 지속해야 했다. 그런 탓에 사람 사귀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연애 등 타인과의 관계 형성이 다른 세대보다 서툴다는 평가가 많다. 혼인·출생 감소와 온라인상 젠더 갈등 고질화에도 ‘실물 인간을 만나기 어려워하는’ 세대 특성이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봉은사 관계자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는 것에서 사회적 위기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며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위기 상황에 항상 힘을 보태온 불교계였던만큼, 한 사찰인 봉은사도 국가적 대의(大義)에 발맞추고 탈종교 시대의 포교를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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