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북한은 러시아의 신데렐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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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러시아에 외면 받던 북한
러·우 전쟁 후 신데렐라로 변신
한국 ‘우크라 지원’ 지렛대 삼아
러시아와 외교적 해법 모색해야
」
푸틴 대통령은 최근 평양에서 북·러 정상회담을 개최해 우리 정부를 곤경에 빠트렸다. 양국 군사동맹이 부활하고, 푸틴 대통령은 그간 은폐해온 북한에 대한 군사기술이전을 시사했다. 그 결과로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불가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하자, 우리와 러시아 간에 날선 외교적 공방이 진행 중이다. 냉전시기 북한은 러시아에게 공산주의 이념을 함께 하는 중요한 동지였으나, 냉전이 종료된 후에는 모든 것이 변했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버린 러시아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4년간 북한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포격전 중심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북한의 포탄이다.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 모두에게 외면 받던 재투성이 아가씨 북한을 주목받는 현대판 신데렐라로 만들어 주었다. 전쟁이 수년간 더 진행된다면, 북한은 러시아의 포탄생산기지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발발 전 미국은 두 가지 전략적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서 러시아를 패배시키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토와 러시아 간의 직접 무력충돌을 피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 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무기의 종류, 수량, 지원시기 등을 검토하는 협의체를 만들었고, 예상되는 러시아의 반응까지 고려하면서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도록 했다. 미국에게는 러시아를 패배시키는 것보다 러시아와 3차 대전을 피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국익이므로 지금까지도 무기를 지원할 때는 신중하게 계산하며 하고 있다.
9~10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이 예상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변수가 된 북·러 군사협력도 토의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무기지원문제도 거론될 것이다. 러시아에게 가장 아픈 우리의 대응조치는 우크라이나에 가장 절실한 살상무기인 포탄을 직접 지원하는 것이다. 이 경우 러시아는 외교관계의 격하 또는 우리 기업에 대한 제재 등으로 보복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포탄 등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무기 생산능력도 크다. 그러나 남북 간의 대치상황 등을 고려할 때 미국처럼 대규모 무기 지원을 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므로 북·러 간의 군사협력 추진상황을 지켜보되 무기지원이 불가피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우선은 공격용 무기보다는 비살상 또는 방어용 무기를 지원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무기지원은 중국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북·중·러 구도에서 거리를 두게 하는 압박효과도 있다.
러시아는 강대국이라는 자부심이 아주 높은 나라다. 우리의 대응조치는 러시아의 보복을 불러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대로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부가 러시아와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어두운 마법이 만들어낸 신데렐라이다. 이 동화의 현실적 결말은 전쟁이 끝나면 알게 될 것이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 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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