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로 혼탁한 세상… 진짜 이야기 찾아 나는 걷는다”
[조유미 기자의 깨발랄]
인류 발자취 따라 2만5000여㎞
퓰리처상 2회 수상 기자 폴 살로펙
이 남자는 12년째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세계를 2만5000여km나 걷고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는 그야말로 ‘노바디(nobody)’. 그런데 왜 만났냐고? 누구든 오래, 많이 걷기만 하면 다 만나주는 그런 쉬운(?) ‘아무튼, 주말’이냐고? 1분만 시간을 들여 아래 두 문단만 읽어 보시라.
폴 살로펙(62). 그는 미국 기자이자 작가다. 1998년과 2001년, 아프리카의 정치적 분쟁·질병 등의 보도와 인간 게놈 프로젝트 관련 보도로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기자로서는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상이다. 몰라봤다, ‘하늘 같은 선배’를.
미국을 횡단하던 중인 1985년, 뉴멕시코주에서 오토바이가 고장났다. 수리비를 벌려고 지역 신문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전에는 정육점·도넛 가게에서도 일하고, 멕시코만에 있는 ‘새우잡이 배’를 타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기자의 매력에 빠졌다. 그는 기자에 대해 “합법적으로 마음껏 호기심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표현했다.
18년 전에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스파이(간첩) 활동 등의 혐의로 친정부군에 체포됐다. 시카고트리뷴지에서 종군 기자로 일하던 시절, 대량 학살이 벌어지던 지역에서였다. 그를 위해 수단의 행정부 등과 협의한 사람이 당시 미국 유일의 흑인 상원 의원이던 버락 오바마라고.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
◇커피 한 잔, 그 뒤 공복으로 걷는다
폴 살로펙이 최근 방한했다. 묻고 싶었다. “왜 한국에 온 거냐”고. 그래서 만났다.
-사실 K팝 팬인 거죠?
“하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뭐죠?
“2013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출발해 실크로드와 인도·중국 등 세계를 시속 5km 정도로걷고 있어요. 최종 목적지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티에라델푸에고(Tierra del Fuego).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의 발자취를 더듬는 거죠. 그 과정에 한국이 있었어요. 배를 타고 중국에서 인천으로 들어왔죠.”
그의 여정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NGS)가 후원하는 ‘아웃 오브 에덴 워크(Out of Eden Walk)’ 프로젝트의 하나다. 1888년 설립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는 디즈니의 핵심 브랜드 중 하나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운영하는 비영리 기구. 현재 세계 140국 탐험가 6000여 명을 지원하고 있다. 동물학자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등이 대표적이다.
폴은 ‘연결(connect)’과 ‘사람(people)’을 총 15차례 언급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요약하고 싶다면 이 두 단어를 기억하시길. 뜬금없이 고대 인류의 이동 경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 이유도 ‘인류를 연결하기 위해서’란다. “인류는 과거 아프리카에서 지평선을 향해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중동·유럽·아시아 등 다른 대륙을 거쳐 지금의 미주에 이르게 됐어요. 그런 점에서 석기시대부터 뻗어 나간 여정의 경험이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행주산성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에 방문한 지 6일째, 전날까지는 DMZ(비무장지대) 접경 지역을 걸었다. 하루 평균 20~30km. ‘어딜 걸을지’는 그때그때 정한다. 행주산성 방문도 불과 12시간 전 최종 결정. 정해진 숙소도 없다. 그는 휴대전화 속 ‘숙박 앱’ 서너 개를 보여주며 “오늘은 서울에서 잘 텐데, 어디에서 잘지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했다.
-밥은 먹고 걷나요?
“걷기 시작하면 그날은 일정이 끝날 때까지 뭘 잘 안 먹어요. 오늘은 숙소에서 주는 샌드위치 하나 먹었어요.”
-초코바 같은 것도?
“하하, 가끔. 마실 수 있는 상황이라면 커피를 좋아해요. 오늘은 네 잔째.”
그에게 ‘커피를 왜 좋아하는지’ 묻자 “기자는 술을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둘 중 하나다. 술보다 커피가 건강에 좋다”고 했다. 만국 공통의 진리인가?
폴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숙소에서 나왔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에서 시작해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까지 20여km를 6시간가량 걸었다. 전날에는 30km쯤. 기록을 정리하느라 새벽 4시쯤 잤다. 그리고 오전 7시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고.
-정리는 어떻게 해요?
“펜. 영상을 찍기도 하고 녹음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수첩에 펜으로 글을 써요.”
그가 둘러멘 15kg 무게의 가방에는 파란 표지를 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취재 노트가 들어 있었다. 이동 경로를 기록하기 위한 GPS 장치·녹음기·외장 하드 등도 담았다. 곳에 따라 등산 장비를 갖고 다니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여벌의 옷과 의약품, 그리고 장마를 대비한 방수 커버와 우산 등을 가지고 다닌다고.
그는 방문하는 국가마다 현지의 작가나 과학자, 교육자 등을 ‘워킹 파트너’로 섭외해 함께 걷는다. 통역을 돕기도 하고,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준석(43)씨가 그 역할을 맡았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이씨에게 “폴이 진짜로 밥을 잘 안 먹냐?” 물었다. 몰래 밤양갱 같은 걸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니. 이씨는 “아침을 먹으면 다행이다. 보통 커피 한 잔 마시고 오후 3~4시까지 진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걷기를 마치면 주로 편의점에 간다. 샌드위치나 과자, 바나나를 사 숙소에서 먹는다.
◇DMZ와 된장찌개집 사장님
-DMZ 접경 지역을 다녀왔다고요?
“아직 어떤 이야기를 쓸지 결정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생각해 둔 건 있어요. 어쩌면 DMZ 접경 지역에서 오랫동안 장을 발효시켜 온 된장찌개집 사장님 이야기.”
갑분된(갑자기 분위기 된장)? 미국식 유머인가 했는데, 그가 오래 관심을 기울여 질문을 던진 사람은 정말 찌개집 사장님이었단다. “사장님과 사랑에 빠졌다(fall in love)”고 표현했다.
-왜죠? 너무 맛있었나요?
“맛있기도 했는데요(웃음), 그분의 인생을 한 그릇에 담아 전달해 준 것 같았어요. 언제부터 이곳에서 장을 담가 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 등을 물었죠. 저는 이 프로젝트가 ‘작은 것들의 생명력’을 다룬다고 생각해요. 작아 보이지만, 사실 아주 보편적인 생명력을 담고 있는.”
-그게 뭘까요?
“사람. 일반적이고 아주 평범하지만, 그 속에 세계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누군가 여정의 목적지를 물으면, 목적지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대답해요. 그래서 ‘걷기’ 방식을 택하기도 했고요.”
걷기와 DMZ 접경 지역과 된장찌개집 사장님의 관계는 아리송했다. 다시 물었다.
-사람을 위해 걷는 건가요.
“저는 오랫동안 종군 기자이자 해외 특파원으로 아프리카·중동·동부 유럽·중앙아시아 등지를 취재했어요. 주로 비행기를 탔고요. 해당 국가에 도착한 뒤에는 공항에서부터 차를 탔고요. 이런 취재 방식을 비판하는 건 전혀 아니에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행운인 거예요.”
-맞아요.
“잘 들으세요. 이렇게 이동하는 과정에서 A 이야기와 B 이야기 사이, 그 간극에 있는 이야기를 제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비행기 아래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 말이에요. 특종도 좋지만, 특종과 특종 사이에 있는 많은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종과 특종 사이 무언가
-특종과 특종 사이?
“네. 이 프로젝트는 그러니까 ‘간극에 있는 이야기(stories in between)’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저는 이번 여정을 통해 이들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건네고,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어요. 그래서 걸으며 그들을 만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는 인도에서 3900km를 걸은 뒤 이런 방식으로 ‘물’에 대한 기사(’어디에나 있는 물, 아무 데나 없는 식수’)를 썼다. 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역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도 라자스탄주의 사막지대 우물에서 물을 길으려 안간힘을 쓰는 여인들의 모습, 비료·살충제에 오염된 물에 노출돼 관절이 비틀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목수…. 순례자와 관광객이 갠지스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에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인부, 또 그들의 낮은 임금과 퇴거하는 구도심 주민들에 대한 보상금까지.
-복잡한데요.
“그렇죠. 간혹 기자들은 정치·환경·전쟁 등 특정한 틀 안에 이야기를 가두곤 해요. 하지만 삶은 절대 틀 안에 가둘 수 없어요.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환경과 정치, 공중 보건으로 연결됩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틀을 무너뜨리고 모든 이야기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데 있어요.”
-DMZ 접경 지역도 그럴 수 있겠네요.
“네. DMZ는 얼핏 정치적인 이야기로 비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환경이나 문화,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죠. 그렇지 않은가요? 저는 이 중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요, 걷기는 제가 이런 결정을 천천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측면을 아우를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자전거 도로 많아… 걸어보시길
-그래서 한국에 온 소감이라면?
“자전거 도로가 많아요(웃음). 터벅터벅 걷고 있는 외국인이 이상해 보일 수 있는데, 다들 친절했고요. 해안과 농지, DMZ 접경 지역을 따라 걸을 때는 행인이 우리밖에 없었어요. 미지의 땅에 발을 디딘 듯한 ‘발견의 감각(sense of discovery)’이 배가 되는 것 같았어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경험을 추천하고 싶었답니다.”
그는 “한마디로 한국은 편안했다.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인터뷰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폴의 한국 여정을 함께하는 워킹 파트너 이준석씨에 따르면, 하루에 걸을 양을 정해두고 경쟁하는 것처럼 걷지 않아 ‘걷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단다. 대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무작정 인터뷰를 시도하는 취재 과정에서 체력이 소모된다고. 폴은 숙소에 도착한 뒤 그렇게 걸으며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 밤 시간을 쓴다.
-혹시 ‘기레기’라는 말을 들어 봤나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단어 자체는 처음 들어봤지만. 가짜 뉴스(fake news)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은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혼란스러워해요. 이 와중에 기술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고요. 인공지능(AI) 합성이라거나…. 저는 나름대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가짜 뉴스에 대응하고 있어요. 좀 더 진실한 것, 제 발로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집중하는 거예요.”
◇강화도 우물터 85세 할머니
다른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지난 12년간의 여정과 종군 기자 시절을 물었다. 죽을 뻔한 적은 없는지, 가장 두려웠던 곳은 어디였는지, ‘무용담’ 같은 것들을. 하지만 폴은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질문을 바꿔가며 세 번째 물었다. 그러자 그가 “저는 백인 남성이고, 미국인이고, 기자”라고 했다.
-그건 아는데, 무슨 소리죠?
“저는 강력한 국가의 여권을 가지고 있고, 돈도 있어요. 거기다 남성이죠.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큰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평생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분쟁 지역을 다닐 때 제가 여자였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가 지나온 날 중 99.9%의 날은 위험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몇 가지만.
“글쎄요, 굳이 듣고 싶다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과 튀르키예인 사이에 분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민병대가 저를 덮친 적이 있어요. 당나귀를 타고 가는 제가 적군인 줄 알았던 거예요. 파키스탄에서는 도둑 떼의 습격을 받았던 적도 있고.”
-충분히 위험한데요.
“저는 특권을 받은 상태로 걷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도 제가 자원해서 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의지에 반해서 고통을 겪고 있을 수 있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두고 위험 운운하는 것이 웃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는 “여성과 아동, 난민은 저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있다. 그 누구도 이들에게 ‘위험한 상황에 있느냐’고 묻지 않고, 그런 상황인데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재차 말했다.
-퓰리처상 받은 비결은?
“상을 타는 비결은 상을 타려고 글을 쓰지 않는 거예요. 제가 생각할 때 기자들은 서로에게 상을 주는 것 같아요. 아무도 기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하하.”
“앞으로 어딜 걸을 생각이냐”고 묻자, 역시나 “며칠간 서울에서 취재를 하고, 이후에는 부산을 향해 남동쪽으로 걸어갈 예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구체적일 수 없는 여정이었다.
“강화도 북쪽에 있는 한 마을에서 집 안 우물터에 앉아 빨래를 하는 할머니를 만났어요. 85세라고 하더군요. 저를 그늘 아래로 초대해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투쟁하며 살아온 본인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고단한 삶이었지만 한마디의 불평도 없었어요. 할머니의 강인하고 단단한 삶의 의지는 저희에게까지 전해졌죠.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궁금했다. 강화도 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의 손에서 어떤 형태로 탄생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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