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AI 시대, 국가재정법 38조 개정이 필요한 까닭
예산 낭비 막는 역할 해와
퀀텀기술 등 게임체인저
예타 방식으로 평가 못 해
집단지성 그대로 살리면서
사업 속도 높일 고민 해야
이해성 테크&사이언스부 차장
대규모 공공 사업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라는 행정 절차를 거친다. 수천억~수조원 규모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예타는 국가재정법 38조에 규정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과학기술 연구개발(R&D)에 한해 예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대규모 재정을 적시에 신속하게 투입해야 하는데 예타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R&D 사업은 총사업비 500억원이 넘으면 예타를 받아야 한다.
예타는 계층화 분석 절차(AHP)를 밟는다. 과학기술적 타당성, 정책 타당성, 비용·편익(B/C) 분석 등 경제성을 지수화한 다음 가중치를 부여해 합산하는 방식이다. AHP는 1에 가까울수록 사업성이 높고 0.5를 넘으면 사업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공학 계열 논문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많은 수학적 도구를 쓴다. 예타 결과 보고서는 보통 수백 페이지에 달한다.
각계 전문가들이 예타에 참여해 사업을 할지 말지 정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와 기상청이 추진한 K-UAM(도심항공교통) 안전 운용 체계 기술 개발 사업은 AHP가 0.657이 나왔다. 대학 교수는 물론 포스코, UAM 관련 스타트업, 컨설팅 업체, 서울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주관 부처가 작성한 사업계획서 초안은 기술 목표가 불분명하고 경제성이 부족했지만 이들이 보완해 예타의 대안을 마련했다.
그간 예타는 세금 낭비를 막는 안전판 역할을 그럭저럭 해왔다. 작년 각 부처는 네 차례에 걸쳐 총 56개 사업에서 30조1462억원어치 예타를 요청했다. 예타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은 이 중 약 20%인 12개다. 다음에는 본선을 넘어야 한다. 부처별로 R&D 자금을 배분하는 과기정통부 3차관실(과학기술혁신본부)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본선에서 환경부의 1800억원짜리 온실가스 감축량 평가 기술 개발 사업과 중소벤처기업부의 1조5000억원짜리 지역 특화 산업 R&D는 탈락했다. 본선을 넘은 사업도 대부분 예산이 삭감됐다. 과기정통부의 인공지능(AI) 반도체 기반 K클라우드 개발 사업은 9405억원을 써냈지만 지난달 말 4032억원으로 절반이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반도체 패키징 선도 기술 개발 사업도 5569억원에서 2744억원으로 반 토막 났다.
드물지만 증액된 경우도 있다. 과기정통부와 기상청이 추진한 정지궤도 위성(천리안5호) 개발 사업은 당초 4172억원보다 44% 증가한 6008억원으로 최근 예타를 통과했다. 급격히 커지고 있는 우주 산업의 중요성을 감안해서다.
예타의 한계는 양자(퀀텀) 기술 같은 세상에 없던 도전적 기술 평가에서 자명해진다. 양자 기술은 반도체, 수소 등 에너지, 모빌리티 등 모든 산업뿐만 아니라 전쟁 판도를 바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AI를 완성시킬 끝판왕’으로도 불린다. 몇 년 전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에서 양자 기술 개발에 한창 속도를 낼 때 한국도 이 기술에 대한 예타에 착수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AHP가 0.01 이하로 나와 사업 추진에 급제동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한국의 양자 기술 경쟁력은 한참 뒤처졌다. 양자 기술 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현재 95%에 달한다. 지난해 시작된 약 1조원 규모의 양자 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 예타 결과가 주목되는 이유다. 오는 9~10월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과기정통부는 앞으로 1000억원 이상 R&D 사업은 각계 전문가의 단계별 심도 있는 검토를 거쳐 예산을 최대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양자 기술 같은 산업 게임체인저는 탈락시키는 데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사업 완성도를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사업 적절성 검토라는 집단지성을 살리면서도 국민을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을 빨리 일궈야 한다는 절박함에서다.
예타 폐지는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물거품이 된다. 국제 정치와 외교의 헤게모니가 첨단 과학기술로 결정되는 시대다. 최근 산업계와 학계 관계자 가운데 대한민국 국운이 다한 것 같다는 우려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극단적인 좌우 대립 정치 등으로 사회 곳곳에서 비효율이 커지고 기업의 성장동력이 소멸되고 있다는 것이다. 제22대 국회는 이런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미래 산업을 개척할 법 개정만은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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