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압승, 14년 만에 정권 교체

임주리.백일현 2024. 7. 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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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 찰스 3세(오른쪽)가 5일(현지시간) 런던 버킹엄 궁에서 총선 승리로 차기 총리에 취임할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지난 4일 치러진 총선에서 스타머 대표가 이끄는 노동당은 하원 650석 중 412석을 차지해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다. [AP=연합뉴스]
영국의 민심이 집권 보수당을 심판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제 1야당인 노동당이 4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다.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는 사퇴했고,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는 신임 총리에 올랐다.

영국 BBC방송 등은 5일 650개 선거구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노동당이 412석을 차지하면서 승리했다고 전했다. 이는 5년 전 총선에 비해 211석을 늘린 것으로 과반인 326석을 훌쩍 넘긴 수치다. 스타머 총리는 이날 “변화는 간단하지 않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변화를 위한 작업은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기 총선 승부수를 던졌던 수낵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막판까지 안간힘을 썼지만, 경제 위기와 난민 이슈 등 불만 누적으로 폭발한 ‘무능한 보수 심판론’을 피하지 못했다. 그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121석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 기존보다 250석을 잃은 것으로, 1834년 창당 이후 190년 만에 최악의 성적이다. 수낵은 이날 “영국 국민은 냉철한 판정을 내렸고, 나는 패배의 책임을 지겠다”고 참패를 인정했다.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71석을 확보해 제3당이 됐다. 지난 총선보다 63석을 더 얻었다.

영국 언론들은 “보수당의 참패는 예견된 일”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보수당은 2010년 총선 승리 후 줄곧 정권을 쥐고 있었지만, 2020년 1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현실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치며 경제가 흔들리자 위기를 맞았다.

이런 와중에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팬데믹 기간 방역 지침을 어기며 논란이 된 ‘파티 게이트’가 큰 실망감을 안겼고, 설상가상으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인플레이션이 가팔라지자 지지층이 등을 돌렸다.

경제 위기·난민 이슈 불만 누적…영국, 무능한 보수에 등 돌렸다

그해 9월 취임한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했으나 무리한 감세 정책을 펼친 탓에 ‘역사상 최단 기간 총리’로 퇴진했다. 보수당에 대한 지지율은 더욱 하락했다.

2022년 10월 수낵 전 총리가 취임한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외려 급증하는 난민, 무너져 내린 공공 의료·교통 서비스 등으로 불만은 축적됐다. 수낵은 난민을 르완다로 보내는 ‘망명의 외주화’ 정책까지 내세웠지만 도리어 인권 탄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수낵은 급등했던 물가가 다소 안정된 지난 5월 조기 총선 카드를 던졌지만, 민심은 꿈쩍하지 않았다. 선거 직전 보수당의 지지율은 20%로 노동당의 절반 수준이었고, 보수층의 일부 표심은 극우 정당으로 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총선 결과는 노동당이 잘해서 승리했다기보다는 보수당이 실정으로 대패한 것”이라며 “노동당의 승리는 유럽과 프랑스 총선, 미국 대선 등에서 득세하는 극우파들의 국제적 흐름을 뒤흔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9년 총선에서 ‘브렉시트 완수’를 약속한 보수당에 표를 준 유권자들의 민심이 극적으로 돌아섰다”며 “누적된 좌절과 분노가 한꺼번에 분출됐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를 간파한 노동당은 ‘변화’라는 단순한 슬로건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법인세를 올리지 않겠다는 등 중도적 성향의 공약도 적극적으로 내밀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영국 총선 결과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물가 급등 등으로 삶의 질이 악화한 데 분노한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심판한 최근 국제사회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노동당은 14년 만에 집권하게 됐지만, 그 앞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고, 난민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루며 의료 등 붕괴한 공공 서비스를 되살리는 일이 큰 숙제다. 이 과정에서 증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여러 전문가를 인용해 “노동당의 공약은 증세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보수당이 물러나며 유럽연합(EU)과의 연대는 보다 강화될 것이란 게 주요 외신의 예측이다. 노동당은 인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보수당의 르완다로의 난민 이송 정책도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은 약점으로 꼽혔던 안보 공약도 강화했다. 정책공약집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영국의 핵 억지력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이란 구절을 넣었다.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가능한 빨리 끌어올리겠다고도 공약했다.

우크라이나 지원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해 진보 세력에게 비판받았다. 하지만 공약집엔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넣었다.

미국과의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 가능성과 맞물려 여전히 불확실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영국 노동당 외교정책 책임자인 데이비드 래미는 민주당 버락 오바마와 친분이 깊다”며 이를 스타머 정부의 대미 관계에서 불확실성 요소로 꼽았다.

임주리·백일현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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