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든 89세 조각가 김윤신 "갈라지며 하나인 게 삶"

2024. 7. 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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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중인 조각가 김윤신

“별 생각 없었어요. 오로지 저 나무들(한국에 없는 아르헨티나의 크고 단단한 나무들)로 조각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요. 닥치면 다 할 수 있어요. 말이 안 통해도 손짓발짓 하면 되거든.”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젊은 여성조차 버거워할 전기톱을 휘두르며 작업하는 조각가 김윤신(89)은 40년 전에 오로지 ‘조각하기에 좋은 나무가 많다’는 이유로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교수직도 뒤로 하고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었다. “쉰 가까운 나이에 외국에 가서 사는 것은 큰 모험이었을 텐데 두렵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그는 나이를 초월한 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위와 같이 대답했다.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시작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전기톱으로 작업을 하는 조각가 김윤신. 2023년 강원도 양구 박수근 레지던시에서의 모습. [사진 김윤신 작가]

김 작가는 지금 가장 바쁘고 주목 받는 한국 미술가 중 한 명이다. 구십 평생에 처음으로 세계 최대 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비엔날레 디 베네치아) 본전시에 초청되어 11월 말까지 전시 중이다. 또한 지난 주에는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개인전 ‘김윤신-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를 시작했다. 지난 4월에는 서울 국제갤러리 개인전을 마무리했는데, 이 전시는 젊은 세대에게도 인기가 많아 인스타그램에 관람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특히 작품 옆에 트렌치코트나 블루진 재킷을 걸치고 자연스러운 멋을 풍기며 서 있는 작가의 모습은 젊은 여성들의 닮고 싶은 미래로 떠올랐다.

다시 찾아온 폭발적인 관심에 도취될 만도 하건만 김 작가는 “조각할 시간이 모자라서 걱정”이라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올해 초 영구 귀국해서 작품을 아르헨티나로부터 한국으로 옮기고, 경기도 파주 작업실을 정리하는 중이라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작업을 해야 건강을 추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조각 작업은 그에게 생의 원동력이자 따로 운동을 하지 않는 그에게 운동이기도 한 셈이다. “작업할 때는 다리가 아픈 걸 모릅니다. 하루 종일 작업을 해도 집중을 해서 그런지 다리 아픈 걸 몰라요. 그런데 요즘처럼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다리가 굉장히 아프다고 느끼게 되죠.”

지난 24일 대전 서구 이응노미술관에서 시작한 '김윤신 아르헨티나에서 온 편지' 특별기획전. 조각가 김윤신은 1964년 이응노와 파리에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영감이 됐다. 올해는 김윤신과 이응노가 파리에서 만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자, 1984년 김윤신이 아르헨티나에 정착해 자신만의 창작에 매진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사진 연합뉴스]
이렇게 말하는 김 작가는 한 마디로 오로지 작업을 위해 사는 천생 예술가다. ‘미술가들의 명예’로 여겨지는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참가에 대해서도 “이렇게 크고 중요한 전시에 초대돼서 ‘이제부터다. 더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그런데 또 나는 작업만 하던 사람이니까 비엔날레 참가하고 그러는 데 그렇게 신경은 안 썼어요. 이 두 가지 마음이 다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예술가의 작품에는 작가가 살아온 시공간적 맥락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 시공간적 맥락에 단단히 뿌리를 두되 그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작품은 은은하고도 깊은 울림을 지니는 반면, 맥락에서 동떨어진 작품은 설령 아름답더라도 힘이 없다. 김윤신의 작품은 전자에 속한다.

나무라는 재료에 대한 애착은 작가가 금강산 근처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나고 근처 시골 안변에서 자라며 나무와 자연을 친구처럼 여겼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안변은 봄에는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과수원 나무가 많은 곳이었다. 또한 쌓아올린 돌멩이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목조각 연작 ‘기원쌓기’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위해 사라진 11살 터울 오빠를 위해 돌무더기에 촛불을 켜 놓고 빌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의 오빠는 광복회 회장을 지낸 군인 김국주(1924~2021)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열리고 있는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설치된 조각가 김윤신의 작품. [사진 국제겔러리]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된 조각가 김윤신이 지난 4월 베니스 자르디니 공원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 옆에 서있다. [사진 국제갤러리]
“우리 집이 딸 다섯에 아들 하나인데, 언니 넷을 낳고 오빠를 낳고 또 나를 낳았어요. 그러니 아들 귀한 집에서 난 뭐 사람도 아닌 거지. (웃음) 그 시절엔 다 그랬어요. 오빠는 엄마에게 하늘이었어요. 오빠가 (독립운동을 위해) 갑자기 없어졌을 때 엄마가 새벽마다 산 밑에서 물을 길어와서 떠 놓고 돌무더기 위에 초를 놓고 불을 켜고 이삼십분씩 빌곤 했어요. 그때 나도 따라다니며 돌을 주워다 거기에 보태곤 했죠. 그런데 내가 대학(홍익대 조소과)에 들어와서 작업을 하면서 뭔가를 자꾸 쌓고 그게 흘러내리고 다시 쌓고 이런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엄마의 그 간절한 기원, 그 정신성을 형상으로 나타낸 게 그거였던 거예요. (오빠만 편애하는) 엄마에게 설움도 많았지만 또 은연중에 영향도 받은 거죠.”

그리고 “살아남은 투박한 것”을 표현하는 조각의 거친 질감에는 김 작가가 한국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어린 나이에 사선을 넘나든 기억이 스며 있다. 작가는 열 살 때 한의사인 아버지가 있는 만주로 갔다가 해방 후 한반도로 귀향하고 다시 분단 후 월남하면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모든 고통과 설움이 훗날 라틴아메리카에서 만난 광활한 대자연에 대한 기쁨과 어우러져 생명력 넘치는 분기(分岐)·증식·상승의 형태로 구현된다.

기자는 서울과 베니스에서 김윤신 작가를 여러 차례 만났다. 작가의 오랜 제자이자 수양딸인 김란 전 김윤신미술관 관장이 대화를 도왔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에서 열리고 있는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설치된 조각가 김윤신의 작품. [사진 국제겔러리]

Q : 작품을 오래 남기고 싶은 것이 예술가의 욕심일 텐데, 나무는 돌이나 브론즈보다 오래 가지 못한다는 염려는 없으신지요?
A : “대학교 때 교수님이 늘 그러셨죠. ‘조각은 산꼭대기에서 내던져져서 굴러도 깨지지 않을 재료로 해야 한다’고. 그 말씀이 내게 늘 박혀 있어서 저도 초기에는 철 조각도 해보고 화강암 조각도 해봤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연이 내 친구이고 자연과 이야기를 하는 게 내 삶이었기 때문에 자연으로서 숨을 쉬는 것 같은 나무라는 재료에 끌린 것 같아요. (여기서 김란 관장은 김윤신 작가가 실제로 아르헨티나에서 늘 화초와 대화하며 물을 주고 또 동물과 대화하며 밥을 주곤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다가 (1984년에) 아르헨티나에 조카를 보러 갔는데, 나무가 돌처럼 무겁고 단단한 거예요. 한국 나무는 톱을 쓰면 그냥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나라 나무는 잘못하면 톱이 튀어요. 그 정도로 단단하고 그러니 오래 보존할 수 있고 그만큼 생명력이 굉장히 강한 거예요. 하늘과 땅이 맞닿은 그 넓은 땅에 이런 나무들이 많이 있으니 거기에 그냥 빠져버린 거예요. 대학으로 돌아오는 것조차 포기하고 (당시 상명여대 교수였다.), 거기서 또 전시를 해주고 인정을 해주니 눌러앉게 된 것이죠.”

“아르헨티나 나무는 돌처럼 무겁고 단단”

Q : 한국에서는 나무가 부드러워서 불편하지 않으세요?
A : “너무 쉬워서 탈이긴 해요. 아르헨티나 나무는 (전기톱을) 힘을 줘서 눌러야 들어가는데 한국 건 그냥 들어가요. 그러면 톱이 들어갈 때의 감정이 조각에 반영이 안 돼요. 단단한 나무는 톱이 들어갈 때 조각가의 힘과 나무의 힘이 선과 볼륨으로 드러납니다. (전기톱으로) 자를 때의 감정과 나무의 변화와 그 소리와 모든 것이 하나가 돼서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무른 나무는 톱이 들어가면 어느 새 (나무가 썰려서) 나가 있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채색 작업이나 나무의 결을 살리는 브론즈 캐스팅 작업 같은 것을 더 실험해 볼 생각입니다.”
지난 4월까지 진행된 국제갤러리의 김윤신 개인전에 나온 채색 조각. [사진 국제갤러리]

Q : 아르헨티나에 가시기 전인 1970년대 중반부터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이자 모든 작품의 공통적인 제목으로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을 제시해 오셨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A : “노자를 읽으면서 합(合)과 분(分)이라는 글자 자체가 재미있었고 ‘이걸 붙였다 뗐다 하면 뭐가 될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게 갈라져 있었어요. 가족들도 다 갈라져 있고, 일제 강점기에는 학교에서 일본어만 가르쳐서 일상에서 하는 말과 분리되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38선이 생겨서 나라도 남북으로 갈라졌어요. 우주는 광대하고 하나인데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인지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죠. 어릴 땐 우주를 몰랐지만 그걸 막연히 느끼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작품으로 말하면, 나무를 놓고 보면 나무일 뿐인데, 내가 작품으로 만들면 내 생각과 이 재료가 하나가 돼서(合) 또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거예요. (갈라져 나오는 것 分). 이게 삶이 아니겠는가. 이게 우주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내가 살아온 그 흔적들이 하나로 되기를 원한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도 생각합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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