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361] 반복되는 모든 것

백영옥 소설가 2024. 7. 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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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남편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데이트한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서로 궁금한 게 있냐며 지겹지도 않냐는 말을 하며 다른 친구가 웃었다. 빨래를 개다가, 이를 닦다가, 원고를 쓰다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삶인가 싶어 허무할 때가 있는데 그 기저의 감정은 지겨움이다. 하지만 반대로 반복되는 걸 잘 다루는 것만큼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없다. 반복이 모든 친밀한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유독 관계가 좋은 부부나 친구들을 관찰하면 공통점이 있는데, 같은 얘길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잘 듣는다는 것이다.

‘일상다반사’라는 말을 좋아한다. 소박하게 밥 먹고 차 마시는 보통 날의 반복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핵심이 반복된 ‘지겨움’일지 모른단 생각을 종종 한다. 사실 매일 보는 사람을 새롭게 느끼는 능력은 결국 서로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다. 영어 단어 Responsibility(책임)는 response(응답)와 ability(능력)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보고 싶지 않아도 보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듣고, 응답하기 싫어도 끝내 응답하는 것이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임감을 사랑이 아니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평범한 남편과 아내가 비범해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사랑받는 순간뿐이다.

반복된 일상에서 시간의 희미한 발자국을 찾는 건 사랑 없이 불가능하다. 매일 보던 남편과 아내의 얼굴에서 흰머리와 주름살을 찾아내며 측은지심을 느끼고, 정신없이 반복되는 출근길에서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꽃과 붉게 물든 단풍잎 하나를 발견하며 계절의 매듭을 느끼는 일. 사랑이 특정한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자 응답인 이유다.

지겨움은 어떻게 친밀함으로 변화하는가. 비밀은 평범한 일상의 반복에서 작은 차이를 ‘발견’하고 때로 ‘발굴’하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다. 우리가 지겹게 하는 매일의 일, 매일 만나는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또한 나를 매 순간 사랑하는 방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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