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영세기업이면 안전 소홀해도 괜찮아?

신다은 기자 2024. 7. 5.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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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관리 의무 완화한 까닭에 산업재해 빈번하게 발생하는 50명 미만 사업장… “의무도 지원도 많아야”
소방청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이 2024년 6월25일 공개한 경기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의 화재 진행 상황이 담긴 내부 CCTV 화면. 10시30분40초께 직원들이 초기 소화 중 배터리가 다수 폭발하고 있다. 중앙긴급구조통제단 제공

“50명 미만 기업에 가보면 사무실 직원 1명이 안전관리를 겸임해요. 그것도 안전 쪽 서류 챙겨놓는 것밖에 없고 실무는 전혀 모르고요. 저희가 현장 갔다가 ‘어 위험한데, 사고 날 것 같은데’ 싶어서 담당자를 찾잖아요? 전달할 사람이 없어요. 안전관리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영세기업 안전관리에 대한 공유정옥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의 진단이다. 그는 5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를 일상적으로 만나며 실태를 목격했다. 이런 사업장에는 체계적 안전관리는 물론, 이를 전담할 인원조차 없었다. 2024년 6월24일 리튬 1차전지(배터리) 화재 참사로 사상자 31명이 발생한 ‘아리셀’이 대표적이다. (관련기사 : 위험물과 노동자를 한자리에…아리셀, 예견된 참사)

기업에 편법, 탈법을 부추기는 제도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60%가 50명 미만 사업장(건설업 50억원 이하. 2023년 기준)에서 발생한다. 역량이 모자라서만은 아니다. 법과 제도가 이들 기업에 인력 투자를 요구하지 않고, 정부는 위험 정보를 안내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셀 참사는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너무 속상해요.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 규모가 작다고 의무를 면제하면 안 되거든요. 일단 모두가 지키게 하고 역량이 안 되는 기업에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데, 의무 자체를 완화해놓으니까 엉망진창이죠. 사실은 제도가 (탈법을) 안내하는 거예요.”( 공유정옥 부센터장)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보호하는 법이다. 크든 작든 노동자를 사용하는 기업이라면 이 법을 모두 적용받아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일단 상시근로자 50명 미만 사업장이면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다. 공정 위험과 화학물질 유해성을 관리하는 직원이 따로 없어도 된다는 뜻이다. 또한 50명 미만 사업장은 공장에 상주하는 의사인 산업보건의를 선임할 의무가 없고, 위험에 관한 노사 공동 회의기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만들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50명 미만 사업장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도 2022년부터 2년간 적용을 유예받았다 .

규제에서 비켜난 50명 미만 사업장

아리셀도 예외가 아니다.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가 파악한 아리셀의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43명. 위험물(리튬 1차전지)과 유해물질(염화티오닐)을 다루는 사업장임에도 안전관리자 및 보건관리자 선임 의무 등을 면제받았다. 아리셀은 그 대신 정부가 50명 미만 사업장에 제공하는 안전공단의 안전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무상으로 받았다.

그런데 화재 참사로 아리셀의 편법이 드러났다. 배터리 포장 쪽 직원들이 이 숫자에서 빠져 있었다. 아리셀은 형식적으론 ‘메이셀’이라는 하청업체에 공정을 외주화한 것처럼 하고, 실제론 메이셀 노동자들을 아리셀 공장에 데려다 썼다. 불법파견이다. 사고가 난 날도 근무 인원 103명 중 51명을 하청이 공급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리셀처럼 사업장 규모가 커져도 서류상 인원을 적게 유지하면 규제 사각지대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산안법이 상시 근로자 수를 사업체마다 따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자라도 원청 노동자로는 집계가 안 된다.

2024년 7월1일 경기 화성시청에서 열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시민 추모제에서 유족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파견·용역 등 탈법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직접 고용된 직원 수만 가지고 영세 사업장 여부를 판단하는 건 현실과 전혀 안 맞다. 산안법처럼 노동자 생명을 지키는 법은 원칙적으로 전면 적용하고 역량이 부족한 기업에 대해 정부가 법 준수를 돕는 식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기업의 쪼개기 관행을 오랫동안 다뤄온 하은성 노무사(샛별 노무사사무소)가 말했다.

아리셀 역시 제도의 틈새를 잘 알았던 듯하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2021~2023년 아리셀의 위험성 평가 인정심사 결과서를 보면, 아리셀의 직원 수는 3년 내내 41명이었다. 이 기간 매출이 5배나 성장(8억원→47억원)했는데 직원 수는 단 한 명도 늘지 않았다고 쓴 것이다. 노동부는 아리셀이 고용보험 가입자 수를 고의로 축소했을 가능성을 포함해 수사하고 있다.

폭발 위험 방치했지만 ‘위험성 평가 우수’

법부터 소규모 기업에 안전 전문성을 요구하지 않고, 그 결과 기업도 관련 역량을 기르지 않는다. 결국 요식행위만 늘고 사고 위험은 방치된다.

아리셀은 2021~2023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심사를 거쳐 ‘위험성 평가 우수 사업장’으로 인정받았다. 사업주가 자기 사업장의 위험요인을 스스로 찾고 관리하는 절차(위험성 평가)를 잘 이행했다는 평가다. 일터의 숨은 위험을 발굴·관리하는 건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다. 아리셀엔 안전관리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었다. 더구나 위험물인 리튬 배터리와 노동자를 한 공간에 방치했다. 그런 아리셀이 어떻게 위험성 평가 우수 사업장이 됐을까.

점수표를 살펴보니, 대부분의 평가 기준이 위험성 평가 절차와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사업주 의지가 담긴 지침을 만들었는지, 공정별로 유해·위험요인을 도출했는지 등이다. 사업주가 파악한 위험 요인이 현실과 동떨어졌어도 절차만 지키면 문제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결과서를 본 박미진 원진재단 부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아리셀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이 뭐고 회사가 그걸 어떻게 관리했는지가 이 보고서엔 없어요. 그냥 위험성 평가 제도의 형식을 잘 지켰다는 것뿐이죠. 굳이 따지자면 ‘위험성 평가를 평가’한 거라고 봐야겠죠.”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시 1차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불이 나 소방 관계자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일터의 위험을 그대로 둔 채 서류만 갖추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정부 역할도 ‘시스템 만들기’가 아니라 ‘위험정보 전달하기’에 맞춰야 한다고 박 위원은 본다. “리튬 배터리 취급 기업은 불량품 폭발과 화재를 조심해야 한다고 노동부가 미리 업계에 알려줬으면 어땠을까요? 배터리 보관 장소를 따로 마련하고 대피요령도 알기 쉽게 벽에 붙여놓게 했다면요? 정부가 위험 정보를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복잡한 절차보다 중요한 게 산업별, 유해·위험 요인을 기업에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거예요.”

쪼개진 일자리, 누가 안전 책임지나

파편화된 일터도 영세기업 노동자를 사각지대로 내몬다. 아리셀 폭발 사고 희생자 23명 가운데 20명이 메이셀 소속 하청 노동자였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었고 대피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결국 희생자 대부분이 대피로를 찾지 못해 밀폐된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성수기만 지나면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정기 안전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박현철 화성외국인노동센터 부소장은 쪼개진 일터의 한계를 지적한다. “ 한국 제조업은 공정을 전부 잘게 쪼개서 외주화하는 것으로 인건비를 낮춘 지 오래됐어요. 자본이 그렇게 대처하는 걸 정부가 방치한 거죠 . 아침에 출근할 때 보면 여기저기 사람 태우고 가는 거 다 보여요. 그래도 중소기업 인력난이라고 (정부가) 눈감는 거죠. ” 박 부소장은 지방자치단체와 노동부가 작은 것부터 시도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큰 공장이 많은 울산, 여수와 달리 경기도 화성은 다양한 업종의 영세기업이 밀집해 있거든요. 아무런 사고 대책이 없는 데가 많아요. 지자체가 지금이라도 한 달에 한 번씩 대피 훈련을 하면 좋겠죠. 기업 스스로도 대피 경로가 어딨는지 확인하게 하고요. 그렇게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해요. 지금은 어이없는 죽음이 너무 많아요.”

대피 못해 숨진 참사 또 있다

화성에서 발생한 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10월에도 화성 향남제약단지 내 화일약품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아세톤 유증기가 유출됐는데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고 위급상황을 알릴 사내 방송설비도 없었다. 2021년 8월에도 화성의 한 제조공장에서 스리랑카 출신 30대 이주노동자가 주말 밤샘 근무 중 좁은 기계에 머리가 끼여 숨졌다.

사회가 머뭇대는 사이 죽음의 행렬은 계속된다. “6월26일 대구에서도 고장 난 기계를 고쳐야 하는데 사업주가 빨리빨리 일하라고 시켜서 사망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살아서 (고향)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도 사람이고 모든 노동자가 사람입니다. 우리가 더는 이런 요구를 하지 않을 날을 기다립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2024년 7월2일 아리셀참사 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외쳤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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